1994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그는 병석에서도 창작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았다. 지난 98년에는 투병 중에 쓴 시와 잠언을 모아 시집 〈절벽〉을 묶었다. 거기서 시인은 소멸의 운명과 맞서 있는 단독자의 고독과 결의를 아득한 슬픔에 버무려 이렇게 노래했다. 그것은 초기시 〈낙화〉의 승화이자 완성과도 같았다.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말라/높게/날카롭게/완강하게 버텨 서 있는 것//아스라한 그 정수리에선/몸을 던질밖에 다른 길이 없는/거기 그렇게 고립해 있고나/아아 절벽!”(〈절벽〉 전문) 같은 시집에 실린 시 〈이름 한번 불러보자 박재삼〉에서 “이름 한번 불러보자/아아 박재삼!/이왕 갔으니/내 자리도 네 가까이 하나 봐다오”라 했던 시인은 이제 비로소 먼저 간 동무 옆으로 떠나갔다. 시인은 〈서울신문〉 〈대한일보〉 〈국제신문〉에서 기자와 논설위원,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모교인 동국대 교수로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 한국문학가협회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대한민국문학상, 예술원상, 은관문화훈장, 서울시문화상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은숙씨와 딸 이여경씨, 사위 김태윤(한국와이어스 대리)씨가 있다. 장례식은 4일 오전 9시 서울 도봉구 방학동 성당에서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02)929-4099.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궂긴소식 |
시인 이형기씨 별세 |
1994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그는 병석에서도 창작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았다. 지난 98년에는 투병 중에 쓴 시와 잠언을 모아 시집 〈절벽〉을 묶었다. 거기서 시인은 소멸의 운명과 맞서 있는 단독자의 고독과 결의를 아득한 슬픔에 버무려 이렇게 노래했다. 그것은 초기시 〈낙화〉의 승화이자 완성과도 같았다.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말라/높게/날카롭게/완강하게 버텨 서 있는 것//아스라한 그 정수리에선/몸을 던질밖에 다른 길이 없는/거기 그렇게 고립해 있고나/아아 절벽!”(〈절벽〉 전문) 같은 시집에 실린 시 〈이름 한번 불러보자 박재삼〉에서 “이름 한번 불러보자/아아 박재삼!/이왕 갔으니/내 자리도 네 가까이 하나 봐다오”라 했던 시인은 이제 비로소 먼저 간 동무 옆으로 떠나갔다. 시인은 〈서울신문〉 〈대한일보〉 〈국제신문〉에서 기자와 논설위원,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모교인 동국대 교수로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 한국문학가협회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대한민국문학상, 예술원상, 은관문화훈장, 서울시문화상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은숙씨와 딸 이여경씨, 사위 김태윤(한국와이어스 대리)씨가 있다. 장례식은 4일 오전 9시 서울 도봉구 방학동 성당에서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02)929-4099.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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