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01 05:00
수정 : 2019.07.01 09:52
남은 해고자 48명 모두 회사로
길고 잔인했던 투쟁 함께 했던
‘건치’ 치과 치료버스 마지막 진료
해고자·가족 30명 잃었던 싸움
국가 손배가압류까지 아직 남아
“복직 기쁨보단 힘든 마음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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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부터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을 치료해온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건치)가 30일 쌍용차 마지막 정리해고자 48명의 복직 전날 마지막 진료를 했다. 이날 오후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왼쪽부터), 권지영 와락 대표, 홍수연 건치 공동대표, 정성훈 전 공동대표가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지부 사무실에서 복직 축하 떡을 자르고 있다. 평택/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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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자세로 치과용 진료의자에 누운 김수경(57)씨의 오른쪽 윗잇몸에 치과의사 권혁용씨가 마취주사를 놓기 무섭게 고름을 빨아내기 시작했다. 이어 바로 옆 송곳니 팬 곳이 치과용 레진으로 메워졌다. 30일 오전 스케일링까지 끝난 뒤에야 김씨는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 근처에 있는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앞 이동식 치과진료 버스에서 내렸다. 입사 20년차이던 2009년 6월 다른 동료 980여명과 함께 쌍용자동차에서 정리해고된 뒤 노사 합의에 의해 2017년 4월 복직한 김씨는 지부 사무실 앞에서 <한겨레>와 만나 “복직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했다. 해고 이후 8년 동안 각종 건설 현장과 버섯 공장 등에서 일했으나 마이너스 통장은 한도가 꽉 차고, 살던 아파트는 경매에 넘어갈 상황에 이르렀던 그는 복직과 함께 생활의 안정을 찾았다고 했다.
이날 그는 자신보다 늦게 복직하는 쌍용차 동료들을 만나기 위해 지부 사무실을 찾았다. 김득중 지부장을 비롯해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48명은 7월1일부로 복직한다. 지난해 9월 남은 정리해고자 119명의 순차 복직을 약속한 노사 합의 결과물이다. 앞서 71명은 올해 1월1일부로 다시 쌍용차 직원이 됐다. 이로써 경찰특공대의 옥쇄파업 폭력 진압과 함께 이뤄진 쌍용차 정리해고 복직 투쟁은 꼭 10년 만에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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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회원들이 30일 오후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지부 앞에서 조합원에게 치료를 하고 있다. 평택/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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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지부에선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2012년 7월부터 한달에 한번씩 이동식 치과진료 버스를 몰고 와 해고자와 그 가족들을 치료해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건치) 소속 의사들 쪽에 해고자들이 감사의 뜻을 전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버스는 지난 7년간 쌍용차 해고노동자 심리치유센터 ‘와락’은 물론 지부 사무실, 고공 농성장, 서울 대한문 농성장 등 해고의 고통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연대의 치료’를 해왔다. 이날 이뤄진 마지막 진료까지 연인원 1523명의 해고자와 가족이 버스를 찾아 임플란트와 교정을 뺀 모든 치과 치료를 받았다.
복직을 앞둔 김득중 지부장은 “우리 투쟁을 빨리 끝내고 건치 선생님들의 발걸음이 투쟁하는 다른 노동자한테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 보내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기현 건치 공동대표는 “우리가 쌍용차 노동자에게서 치유를 받은 게 아닌가 싶다. 결과가 좋아 이렇게 웃는 모습으로 정리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저마다 입을 열 때마다 울컥한 마음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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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김득중 지부장(맨 오른쪽)과 권지영 와락 대표(맨 왼쪽)가 30일 오후 경기 평택시 칠괴동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사무실에서 치료를 마친 건치 홍수연(오른쪽 둘째), 김기현 공동대표에게 각각 판화와 김치를 선물하고 있다. 평택/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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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에 걸친 쌍용차 정리해고자 복직 투쟁은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로 집약될 만큼 힘든 기간이었다. 세차례에 걸친 고공농성과 단식이 이어졌고, 30명의 해고자와 가족들이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일이 잇따랐다. 해고자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비율은 이라크 전쟁 때 포로로 잡혀간 쿠웨이트 군인들보다 더 높다는 김승섭 고려대 교수팀의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1일 복직으로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뒤 복직 투쟁은 마무리된다. 그럼에도 마지막 복직자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다. 우선 정리해고 투쟁을 벌인 노동자 103명한테 제기된 11억여원짜리 손해배상 소송과 4억여원 가압류 소송은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해 8월 “공권력의 과잉 행사에 대해 사과하고 관련 손해배상 청구소송 취하, 사과 및 명예회복과 치유 방안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하지만 경찰청장은 사과하지 않았고, 소송도 취하하지 않았다.
2009년 파업 당시 경찰 진압으로 왼쪽 귀가 찢기는 부상을 입고 구속됐다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풀려난 강환주(47) 쌍용차지부 조직실장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복직의 기쁨보단 힘든 마음이 더 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지금의 이 분노가 언제 폭발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이번 복직자 48명은 올해 말까지 무급 휴직을 한 뒤 내년 초 배치명령을 받는다. 그때까지 직원 신분을 유지하며 4대 보험엔 가입되지만 월급은 받을 수 없다. 한 복직자는 “앞으로 여섯달 동안 편의점이건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내년 초에 회사 사정이 좋지 않으면 또 배치명령이 미뤄질지도 모른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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