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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26 15:13 수정 : 2019.04.26 21:49

직장인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는 <문화방송>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베테랑 근로감독관 김승래·김태령
“근로계약서·월급명세서 꼭 챙겨야”

직장인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는 <문화방송>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상습적으로 월급을 떼어먹고, 현금승차비 3100원을 ‘횡령’했다며 해고의 칼날을 휘두르고, 운전기사들을 잠시도 쉴 틈 없이 ‘뺑뺑이’ 돌려 졸음운전에 교통사고까지 낼 뻔하게 만든 버스회사 상도여객에 ‘해결사’가 나타난다. 이 남자, 조진갑의 직업은 근로감독관. 고용노동부 구원고용노동지청 소속의 어엿한 공무원이자, 엄연한 특별사법경찰이다. 조진갑의 종횡무진 좌충우돌 활약으로 해고자는 복직되고 상도여객은 운행정지 명령을 받는다. 그러자 상도여객의 진짜 사장인 구대길은 위장폐업을 하고 외국 밀항을 시도하는데, 이 역시 조진갑에게 덜미를 잡혀 실패하고 만다. <문화방송>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속 이야기다.

시청률 자체가 크게 높진 않지만, <조장풍>은 20~40대 사이에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하는 등 화제가 되고 있다.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월급 받아 사는 사람이 다수라 그런지, 우리의 노동 현실이 처참해서 그런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댓글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글 등을 통해 확인되는 반응 두 가지는 확실하다. “현실에 저런 근로감독관이 어딨어?” 그리고 “근로감독관이 뭐하는 사람이야?”

현실에 저런 근로감독관은 없다 이 질문에 답을 찾고 싶어 지난 23일 현실의 근로감독관 두 명을 만났다. 김승래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근로개선지도2과장, 김태령 서울동부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과 서울 장교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마주앉았다. 1985년 노동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김승래 과장은 올해로 근로감독관 경력이 14년, 1995년 봉직하자마자 근로감독관을 주로 해온 김태령 과장은 20년으로 두 사람 모두 베테랑들이다.

2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사무실에서 김태령 서울동부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왼쪽)과 김승래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근로개선지도2과장이 ‘문화방송’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 바탕해 드라마 같은 현실, 현실과 다른 드라마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인터뷰 준비차 이들도 드라마를 보고 왔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수첩 몇 페이지에 걸쳐 빼곡히 적어온 김승래 과장이 ‘사실관계’를 먼저 밝혀줬다. “갑질을 너무 많이 당하고, 억울한 사람도 많은 현실을 풍자한 드라마라 통쾌하고 시원한 부분도 있다. 그런데 근로감독관은 근로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함께 움직이는 유기체라서, 감독 업무도 팀으로 움직이지 조진갑처럼 혼자 할 수가 없다. 압수수색영장도 검찰 지휘 받아서 여러 명이 가서 집행해야 하고.

조진갑이 버스 운행중지 명령 내리는 거 보니까, 2012년 서울 시내버스 파업 때가 생각나더라. 파업 예고일 며칠 전부터 근로감독관들 10여명이 버스 노조도 찾아가고, 사용자들도 찾아가 설득하고 조율하느라 계속 날밤을 샜다. 그때 첫차가 새벽 5시 출발인데, 5시40분에 협상이 타결됐다. 딱 40분 파업하고 정상운행을 시작하자마자 눈앞에서 버스 한 대가 쌩 하고 지나가는데, 오만가지 감정이 다 들었다. 이 버스 한 대가 달리게 하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써야 했는지. 근로감독관 혼자 가서 버스 바퀴 빼고 운행중지 명령 내리고 하는 건 판타지다.”

김태령 과장은 서운함을 털어놨다. “임금 체불한 사업주가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아서, 진정을 낸 노동자의 요청으로 그 집에 같이 간 적이 있다. 그런데 집 앞에서 진정인이 이러더라. ‘사업주는 회사 문 닫고 시골로 도망가 연락이 끊겼다. 아내는 몸져 누워있고, 고등학생인 아들이 엄마 병간호하면서 둘이 지내는데 나는 도저히 안쓰러워서 못 들어가겠으니 당신이 혼자 들어가서 월급 좀 받아달라.’ 현실은 이렇게 명확한 선악 구도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무조건 사업주에게 강한 철퇴를 내리지 않으면 일을 잘 못하는 것으로 호도되는 경우가 많다.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근로감독관이 ‘해결사’가 돼주길 기대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우리는 노동법 관련만 다룰 수 있다. 절차와 요건도 법에 정해진 대로 다 따져봐야 한다. 드라마에선 배달대행업체 사장한테 주인공이 ‘식품위생관리법 위반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고하겠다’고 해 체불한 임금을 받아내던데, 통쾌하긴 하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하면 권한남용이다. 정부부처에 각각의 권한이 분산돼 있기 때문에, 그걸 넘어서면 공무원이 공갈·협박했다고 역공 당한다. 사업주와 근로감독관이 유착된 관계로도 나오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현실이 하도 답답하니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사이다’를 제공하려는 시도가 드라마니까 실제의 절차나 규정과 어긋나는 내용은 ‘드라마적 허용’일 수 있다. 극적 재미 때문에 자극적인 요소는 더 부각되기 마련이니, 일부의 잘못이 그 직업 모두의 잘못으로 오해받는 일도 피하기 어렵다. 그러니 드라마에서 검사는 언제나 악의 축이고, 기자는 받아치기만 하며, 의사는 권력다툼만 하지 않는가. 하지만 현실의 다수는 거대 재벌의 비리는 뿌리 뽑지 못해도, 세상을 뒤집는 특종은 못해도, 죽은 사람을 살려내진 못해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만큼씩은 공익에 기여한다. 근로감독관이라고 다를 바 있을까.

2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사무실에서 김승래 근로개선지도2과장이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근로감독관은 뭐하는 사람인가 대체 근로감독관의 직무가 무엇이길래, 조진갑은 악덕 사업주를 잡아들이고 체불임금을 받아줄 수 있는 걸까? 김태령 과장은 근로감독관을 “노동경찰”이라고 소개했다. “노동법을 위반한 사람을 감독하고 처벌한다. 공무원이 근로감독 관련 부서에 배치되면 자동으로 특별경찰로서의 의무와 권한이 생긴다.” 일반경찰의 전문성을 보완하고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철도, 세무 같은 특정 분야의 행정공무원도 해당 분야에서 경찰처럼 수사, 영장신청 등을 할 수 있게 한 제도가 특별사법경찰이다.

‘노동경찰’인 근로감독관은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같은 노동관계법을 사업주가 잘 지키고 있는지 감독하고 진정이나 고소·고발이 들어오면 수사를 한다. 담당 사업장의 노사 분쟁을 조율하거나, 근로계약서는 제대로 쓰는지, 법정 근로시간은 잘 지켜지는지를 수시로 점검하고 시정 지시를 하는 것도 이들의 일이다. 시정 지시를 어기면 입건하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도록 한다. 김승래 과장은 “노동법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법이지만, 실제 감독이나 수사를 할 땐 팩트를 정확히 조사해야 한다. 노동자든 사업주든 어느 한 쪽 편을 들면 양쪽 모두로부터 신뢰를 잃기 때문에 균형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는 일이 참 많다. 지난해 근로감독관은 1311명이고 한 사람이 맡은 사업장 수는 1539개, 처리 사건은 한달 평균 25건이 넘었다. “예전엔 근로감독관을 ‘셔터맨’이라고 불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전 8시에 출근해 보통 밤 11시30분은 돼야 퇴근하니까 청사 문을 열고 닫는 사람이 근로감독관이었다. 빨리 퇴근하고 싶어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김승래)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방고용노동청에 접수된 진정·인허가 사건의 17%, 고소·고발 사건의 41%가 기한(각각 25일, 두 달)을 넘겨 늑장처리됐다”고 지적한 이면에는, 이런 현실도 존재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근로감독관을 800명 가까이 증원했지만, 여전히 인력은 부족하다. “일이 많고 힘드니까 과로사하는 경우도 있다. 비근로감독 부서나 아예 다른 부처로 옮겨가는 사람도 많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청년들이 제일 기피하는 부처 중 하나가 노동부라더라. 여기 오면 십중팔구 근로감독관이 되니까.”(김태령)

2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사무실에서 김태령 서울동부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근로감독관 활용법 근로감독의 달인들에게, 억울한 일을 당한 노동자가 조금이라도 빨리 권리를 구제받을 방법이 없는지 물었다. 이들은 근로계약서와 월급명세서 챙기기를 첫 손에 꼽았다. “근로계약 상대방의 인적사항과 연락처를 확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근로계약서에 들어있는 내용인데 계약서 자체가 없어서) 인적사항 등을 찾아내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허비된다. 도급, 파견, 자회사 등 회사 형태도 복잡해서 법적으로 누가 내 고용주인지, 누가 임금을 줘야 할 의무가 있는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신고해야 사건 처리가 빠르다. 답답한 사람들 입장에선 말로 신고만 하면 근로감독관이 회사 뒤지고 서류 찾아내서 금방 다 해결해 주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압수수색영장 받으려면 범죄를 소명할 증거가 있어야 한다. 서류든 녹취든 증인이든, 자기 권리를 입증할 자료는 꼭 챙겨야 한다.”(김태령)

자신에게 닥친 일이 노동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아닌지를 미리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 노동부 콜센터(1350)에 문의하면 웬만한 궁금증은 풀 수 있다고 한다. “출장비나 회사 경비를 개인 돈으로 썼다, 이런 건 근로감독관한테 신고해도 노동법으로 안 된다. 법적으로 해결돼야 할 문제도 많다. 특수고용직이 법에서 노동자로 인정이 돼야 근로감독관이 나설 수가 있는데 참 답답하다.”(김승래) 이들은 특수고용직처럼 도와주고 싶지만 법적, 법적, 제도적 한계 때문에 도와줄 수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청을 끝도 없이 자유롭게 줄 수 있는 구조, 차명으로 사업하면서 뒤에서 나쁜 짓을 하는 경우 같은 건 노동법으로 구제할 수가 없다. 근로감독관이 일을 열심히 안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게 아니라, 제도적인 한계”(김태령)라는 것이다.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상 이들의 직무는 모두 12가지다. 하지만 실제 업무의 90% 이상은 체불임금을 받아내는 것이고, 그나마도 대부분이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이라 다 받아주기도 어렵다. “근로감독관이 평소 사업장에 자주 나가서 지도감독을 계속 하면 부당노동행위도 덜 생긴다. 그런데 현실은 노사관계가 극단으로 치달아서 파업이 발생하거나 노조 쪽이 회사를 고소·고발해야 조사를 시작한다. 체불임금 관련 업무가 너무 많아서, 채권추심원 역할을 하느라 다른 일은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거다.

체당금(회사에서 받지 못한 임금이나 퇴직금을 정부가 대신 지급하는 제도)이 있지만 3개월치 임금, 3년치 퇴직금 안에서만 가능하고 그나마도 사업주가 도산한 경우 등으로 운용이 매우 제한적이다. 이 체당금을 크게 확대하면 업무 쏠림이 좀 나아질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임금체불 사건을 근로감독관이 안 맡고, 노동법원에서 해결한다. 사회적 비용은 들지만, 장기적으로는 노동법원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김승래)

이들은 경찰이나 소방공무원처럼 근로감독관도 별도 직렬로 선발하는 게 근로감독관과 노동자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김승래 과장은 “새로 사람이 들어와도 못 견디고 금세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무원 되려는 이유가 대부분 안정적이고 정시 퇴근을 할 수 있어서인데, 그런 사람한테 근로감독관 일을 맡겨서는 프로의식이 생길 수가 없다”며 “노동자의 권익과 노사관계 안정을 위해 일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김태령 과장도 “보통 감정노동은 노동자와 상대방의 1대1 관계로 하는 건데 근로감독관은 1대2, 그것도 이해가 상반되는 2명의 고객을 동시에 응대해야 해 그만큼 스트레스가 심하다. 감독관이 결정을 잘못해서 피해를 봤다며 법적으로 시비를 가리자는 경우도 많다”며 “사명감이 없으면 이런 일에 적응할 수가 없다”고 맞장구를 쳤다. 취업 자체가 목표고, 월급이 출근의 이유인 시절에 ‘사명감’이라는 낯선 단어를 가슴에 품은 이들이 문득, 새롭게 보였다.

직장인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는 <문화방송>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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