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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3 18:45 수정 : 2019.04.03 21:43

4445일째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콜텍 김경봉 조합원의 생일인 3일 오후 서울 강서구 등촌동 콜텍 본사에서 ‘길 위의 환갑잔치’가 열리고 있다. 김씨와 조합원들은 사옥 옥상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최장기 복직투쟁 김경봉씨의 생일

정년 대신 콜텍 본사 앞 옥상농성
공대위 소박한 환갑잔치 열었지만
정작 본인은 옥상에서 잔칫상 지켜봐

4445일째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콜텍 김경봉 조합원의 생일인 3일 오후 서울 강서구 등촌동 콜텍 본사에서 ‘길 위의 환갑잔치’가 열리고 있다. 김씨와 조합원들은 사옥 옥상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봄의 상징 같은 벚꽃축제를 코앞에 둔 3일 오후. 해가 구름에 가려지면 아직 쌀쌀한 날씨인데, 검은색 경량 패딩에 흰 모자를 쓴 초로의 사내 하나가 서울 등촌동 3층짜리 건물 옥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 앞에 모여든 수십명을 내려다보는 그는 패딩 위에 ‘정리해고 13년 박영호가 해결하라’고 적힌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경봉. 1959년 4월3일생, 정확히 이날로 환갑을 맞은 그의 다른 이름은 ‘대한민국 최장기 투쟁사업장 콜텍의 해고노동자’다.

‘정상적으로’ 회사를 다녔다면 김씨는 올해 정년을 맞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정년 대신 맞이한 건 ‘옥상 농성’이었다. 하루 전인 2일 오후, 박영호 콜텍 사장에게 지금까지보다 진전된 안으로 직접 교섭에 나서라고 요구하려고,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지회장 등과 함께 회사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두달 넘게 될 듯 말 듯 하며 8차례 이어진 노사 교섭이 성과 없이 끝나자, 김씨 등 13년 복직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해고노동자 3명은 지난달 9일부터 농성장을 광화문에서 등촌동 콜텍 본사 앞으로 옮겼다.

사흘 뒤인 12일부터는 이들 가운데 한명인 임재춘씨가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이 원하는 건 △정리해고 사과 △정년이 되기 전 명예복직 △해고기간 보상이다. 그렇게 단식 20여일이 흐르는데도 회사 쪽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급기야 김씨 등이 옥상 농성에까지 나서게 된 것이다.

2007년, 7년 일한 회사가 갑자기 외국으로 이전해 정리해고당하고 13년을 길 위에서 보내게 될지, 환갑 생일을 찬 바람 부는 옥상에서 맞이하게 될지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세계 속의 기타를 만들어 명예를 얻겠다’는 박영호 사장의 이야기에 나도 명품 기타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느꼈는데, 노조 만들었다고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하니 너무 억울했다. 처음엔 내 억울함을 풀고 싶어 복직 투쟁을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사업장의 문제도 알게 되고, 이게 나 개인이 아니라 사회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꼭 해결해야겠다는 의무감과 책임감도 느끼게 됐다. 더구나 콜텍 정리해고는 고등법원에서 ‘당시 경영상 어려움이 없었다’고 판결했는데도 대법원에서 뒤집혔는데, 그게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나.” 휴대전화를 통해 전해지는 김경봉씨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이날 ‘콜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는 회사 앞에서 소박한 환갑잔치를 열었다. 백기완 선생의 손편지를 담은 액자, 문정현 신부의 서각, 오랫동안 그와 동료들의 사진을 찍어온 사진작가 노순택·정택용의 사진앨범 등을 선물로 마련했고, 공연과 사진전 같은 이벤트도 준비했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김씨는 ‘잔칫상’ 앞에 앉지 못한 채 옥상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밧줄을 타고 옥상으로 전해진 온기는 노순택 등의 사진앨범, 옷가지 두벌뿐이었다. 그는 그저 “너무 고맙고 소중한 선물을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런 걸 받을 만큼 내가 뭘 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해고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막내아들은 군대를 제대하고 올봄 대학 3학년에 복학했다. 그동안 복직의 길을 찾아 대전, 인천, 서울을 떠돌아야 했던 그는 아이가 청년으로 자라가는 모습을 제대로 지켜볼 수 없었다. 둘째 딸이 대학에 입학한 해엔 등록금을 마련하기 어려워 대학생이었던 큰딸이 휴학했고, 사회 진출도 그만큼 늦어졌다. 그렇게 아버지로서 “애들한테 제때 해주지 못한 것들”이 그는 아프다. “당신이 하는 일이니까 내버려두지만 집에 와선 얘기하지 말라”는 아내는 사실, 투덜대는 아이들에게 “이건 엄마와 아빠의 일이니까 아무 소리 말라”고 타일러준 고마운 사람이다.

7일은 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그가 함께 생일잔치를 하기로 약속한 날이다. 그날, 김씨는 식구들과 함께 따뜻한 밥상 앞에 둘러앉아 “이제 다 끝났어.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가 이렇게 말했다. “사장이 진전된 안으로 직접 교섭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내려갈 수가 없다. 사업하는 사람한테만 명예라는 게 있는 게 아니다. 이 회사에 몸담고 일했던 우리한테도 명예는 있고, 한달이든 두달이든 복직이 돼야 그걸 지킬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와 관련해 콜텍 쪽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노조 관련 문제를 전담하는 상무가 지금 인도네시아 출장 중이라 말씀드릴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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