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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12 17:56 수정 : 2019.02.12 19:47

박창진 지부장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그가 낸 책은 ‘갑질로 어긋난 삶의 궤도를 바로잡다’란 부제를 달고 있다. 사진 메디치미디어 제공

박창진 대한항공 직원연대노조 지부장
승무원 20여년 경험 ‘플라이 백’ 출간
“직원연대 300명 소수지만 희망 본다
사주 일가 전문적 경영 능력 따져야
찌라시 옮기는 언론 보도로 큰 고통”

박창진 지부장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그가 낸 책은 ‘갑질로 어긋난 삶의 궤도를 바로잡다’란 부제를 달고 있다. 사진 메디치미디어 제공

‘플라이 백’(FLY BACK). ‘회항’을 뜻하는 항공용어다. 박창진 대한항공 직원연대노조 지부장이 최근 낸 책 제목이기도 하다.

“하와이에서 어제 오후 8시 서울에 도착했어요.” 12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 19층에서 출간기념 기자간담회를 연 박 지부장의 말이다.

2014년 ‘땅콩 회항’ 당시만 해도 그는 객실 전체를 책임지는 팀장이었지만 지금은 팀원이다. “이코노미석을 맡고 있어요. 너무 많은 분이 알아보시죠.” 5년 사이 바뀐 게 더 있다. 지난해 7월 민주노총 산하 직원연대 노조를 결성해 초대 지부장을 맡고 있다. “한때 조합원이 500명까지 됐지만 회사 쪽 와해 공작 등의 영향으로 지금은 300명 정도로 줄었어요. 회사가 공포심을 심어주고 있어요. 하지만 직원연대 노조 설립 전후로 회사에 생긴 집약적 변화 때문에 사원들이 직원연대 노조에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어요. 희망적입니다.” 그 변화를 물었더니 이런 말을 했다. “승무원 휴게실에 비즈니스석에서 제공되는 두툼한 담요가 비치됐죠.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고 다녀선 안 된다는 규정도 없어졌어요.”

<플라이 백> 표지.

노조이지만 회사 안에 사무실이 없어 회의는 아시아나항공 객실승무원 노조 사무실에서 한다고 했다. 전임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있단다. “회사가 노조 전임 총량제 규정을 들어 난색을 보이더군요.” 그는 “최근 일반노조(한국노총 소속 대한항공 노조)가 홈페이지에 직원연대 노조 조합원 명단을 무단 공개했다.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도 했다.

그는 책에서 대한항공에 입사한 1996년 이후 승무원으로 일하며 겪고 들은 일들을 또박또박 적었다. 입사 뒤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일은 사주 일가와 그들을 둘러싼 충성파 임직원들의 행태였다. 사주 일가를 만나는 행사에 갈 때는 늘 예상 대화 내용을 연극 대본처럼 연습해야 했단다. 불똥이 어떻게 튈지 몰라서다. 그 역시 조현아 당시 부사장이 참석하는 신년회에 초대받았을 때 마음의 부담 때문에 겨울 양복을 새로 맞춰 입었다고 했다. 2010년엔 조양호 회장이 1등석의 창가 자리를 고집하며 탑승을 미루자 이 자리에 앉아 있던 외국인 고객에게 “한 손님이 스트레스 질환이 있어 창가 자리를 원한다”고 양해를 구해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단다. “자리를 양보한 승객에게 차마 ‘우리 회사 회장님이다’고 말을 못하겠더군요. 그냥 ‘당신은 내가 만나본 퍼스트클래스 승객 중에서 가장 관대한 사람’이라고 해주었죠.”

그는 왜 책을 썼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저에게 폭행을 저지르는 순간에도 저는 ‘죄송하다, 미안하다’를 연발했죠. (땅콩 회항 사건) 이전까지 제가 살아온 삶은 애완견과 다르지 않았어요. 주인에게 귀여움을 떨지 않으면 먹이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신세였죠. 하지만 지난 4~5년 동안 한 인간으로서 존엄성, 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자각하게 되었어요. 이 책은 그 결과입니다.”

그는 작년 초 뒤통수에 생긴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단다.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것인가’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복직 때 포기하려는 유혹이 컸어요. 하지만 현장을 벗어난다고 트라우마가 사라질 것 같지 않더라고요. 회사와 맞섰던 대한항공 선후배들이 많이 포기하고 떠났죠. 저는 다른 선례를 남기고 싶었어요.”

지난해 초 조현민 전 전무 갑질 사건 이후 회사 동료들이 침묵을 깨기 시작한 것도 자극이 되었단다. “땅콩 회항 때만 해도 직원들 누구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땅콩 회항이) 목소리를 내도록 용기를 준 측면도 있을 겁니다. 그 (동료들의) 용기를 저버리고 제가 회사를 떠나는 것은 책임 회피란 생각이 들어요. 동료들의 용기에 힘을 실어줘야죠. 그 소명을 다할 때까지 회사를 다닐 겁니다. 지금 씨앗을 보았어요. 발아시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요.”

무책임한 언론 보도로 겪은 고통도 털어놓았다. “땅콩 회항 사건 당시 제가 인터뷰를 4~5번 정도 했어요. 나머지 기사는 다 복사해서 붙이기 수준이었죠. ‘박창진 허걱’ ‘박창진 또 쓰러져’와 같은 클릭 수를 노리는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도 많았고요. 찌라시를 인용해 쓴 기사도 상당수 있었죠. 그런 가짜 뉴스를 본 사람들에게 직접 가해를 받기도 했죠.”

간담회를 마무리하며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 직원들은 엄연히 시험을 봐 입사했어요. 재벌 3세들이 그런 시험을 통과했는지 묻고 싶어요. 재벌 후손들의 경영권을 너무나 당연히 인정하는 현실이 문제입니다. 전문경영인이 오거나 그렇지 않다면 지금 사주 일가 경영진이 전문경영인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따져야 합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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