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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1 14:31 수정 : 2019.11.21 20:10

가입자들 청구 불편함 맞지만
편의성 올리면 실손보험 확대↑
결국 건강보험 확대에 걸림돌
“비급여의 급여화 서둘러야”

실손보험 보험금 청구 간소화 방안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이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었으나 논의 순서가 뒤로 밀려 아예 논의되지 못했다. 임시국회 등에서 논의될 여지가 있지만, 이번 국회에서는 이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개정안의 취지는, 실손보험 가입자가 의료기관에서 진찰을 받은 뒤 보험사에 청구해야 할 보험금이 100만원이 넘으면 보험사를 직접 찾아 청구해야 하는 불편함을 해결하는 데 있다. 현재처럼 보험 소비자가 청구 서류를 따로 준비하지 않고 대신 보험 가입자가 요청하면 병원이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전산을 통해 중개기관 등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 중개기관은 다시 보험사로 자료를 보내 이를 바탕으로 보험사를 보험금을 가입자에게 지급하게 된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와 소비자단체들은 찬성 입장을, 의료계와 보건의료 분야 시민단체들은 반대 입장을 보였다. 소비자단체들은 소비자의 편의성을 찬성의 이유로 들고 있고, 보건의료 시민단체들은 환자들의 질병 정보가 누출될 수 있으며 ‘청구 간소화’라는 편의성으로 민간보험이 확대되면서 장기적으로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개정안에 대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쟁점들은 무엇이 있고, 어떤 점에서 의견이 다른지 정리했다.

게티이미지뱅크

■ 실손보험 가입자들 편리해질 것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소비자단체들은 이번 개정안이 꼭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들이 찬성하는 이유는 우선 실손보험에 가입한 소비자들의 편의성이다. 우리 국민 약 3400만명이 가입한 것으로 알려진 실손보험은 진료비 가운데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부분 이외에 환자가 병원에 내는 돈을 보상해 준다. 현재는 가입자가 보험금을 받기 위해서는 진료비 내역 등 각종 서류를 챙겨 보험사에 직접 청구를 해야 한다. 서류 구비 등이 귀찮고 받아야 할 보험금이 소액일 경우 청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금융소비자연맹,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이 이달 초 낸 성명서를 보면 실손보험에 가입하고도 여러 증빙서류를 챙기기 어려워 병원비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통원 치료의 경우 10명 가운데 7명 가량은 청구를 하지 않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들 단체들은 실손보험이 생긴 뒤 지난 10년 동안 실손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병원이 제출하도록 하는 안을 주장해 왔다. 이들 단체들은 “환자의 요청에 따라 병원에서 서류를 보내는 안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소비자의 편익이 증진된다”고 주장했다.

과거 보험업계는 청구 간소화 안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최근에는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다. 가입자들에게 보험금을 더 많이 돌려줘야 하지만, 그동안 환자들이 낸 서류를 수기로 입력해야 하는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건의료 시민단체에서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찬성 배경으로 보험사가 가입자들의 보험금을 더 쉽게 돌려준다고 선전하면서 민간보험사의 위상을 높이고 이를 통해 민간보험이 확대될 수 있다고 본다.

■ 민감한 의료정보 누출 가능성은?

의료계와 보건의료 시민단체의 반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의료기관이 전자문서를 통해 진료정보를 보내다 보면 자칫 환자 본인의 민감한 개인정보까지 보험사에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가 낸 성명을 보면 “전산화된 자료가 민간보험사가 넘어가면 환자의 새로운 보험 가입과 기존 계약 갱신을 거부할 수 있다”며 “결국 민간보험사의 보험료 지급률을 떨어뜨리려는 목적”이라고 비판했다. 전산자료를 통해 환자의 민감한 질병 정보 등을 민간보험사가 현재보다 쉽게 갖게 되면 각종 질병이 많아 병원을 자주 이용해 보험금을 많이 받게 되는 환자 등은 보험 가입을 못하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 및 소비자 쪽은 현재도 가입자가 보험금 청구를 위해 각종 진료기록 및 영수증 등을 제출하고 있고 이를 다시 전산으로 입력하기 때문에, 병원이 전산화된 자료를 보낸다고 해서 정보 누출이 더 많이 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소비자단체 쪽은 “몇몇 대형병원에서 시범 사업 중인 전자문서 정보 수령으로 다수의 의료 소비자가 편리하게 됐다”며 “보험사에 ‘종이 문서’로 의료정보를 전달해야만 보험사의 꼼수를 막을 수 있다는 의사협회의 논리는 이해불가”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산자료에서는 환자들의 더 많은 정보가 담길 수 있다는 비판은 보건의료 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제기된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종이문서로 보낼 경우 진단명과 환자가 내는 본인부담 총액 정도만 전해지지만 전산 자료를 보내면 이보다 자세한 질병 정보를 포함해 민간보험사가 받을 필요가 없는 정보도 넘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전산자료의 경우 해킹이나 상업적인 목적으로 고의적인 유출 가능성도 크다는 지적도 있다.

의료정보 누출과 관련해 병원이 전산으로 보내는 경우에도 종이 서류와 마찬가지로 보험금 수령을 위해 필요한 정보로 한정하면 논란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민간보험 확대 및 건강보험 축소로 이어지나?

의료계와 보건의료 시민단체들은 청구 간소화 방안이 보험 가입자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민간보험사의 확장과 이익을 높이는 쪽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현재는 소액 진료비의 경우 청구를 하지 않아 실손보험으로부터 보험금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실손보험에 가입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건강보험 가입자의 경우 평소 건강해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 보험료를 내거나 인상될 때 반발이 심하다”며 “실손보험에서 청구 간소화로 보험금을 소액이라도 받게 되면 재가입율이 높아지는 등 그만큼 가입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를 민간보험이 계속 보장해 주면서 비급여가 더 양산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비급여의 경우 환자가 100% 내야 해 비용 부담이 큰데, 실손보험에서 이에 대해 보장해 주면 그만큼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낮아지기 때문에 의사들이 비급여 치료를 환자들에게 쉽게 권유한다는 것이다. 실손보험회사들은 의료계에서의 비급여 치료 권고로 적자를 크게 본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환자들이 비급여에 대한 부담이 줄어 의사의 권고대로 이런 치료를 많이 받게 돼 비급여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환자들은 실손보험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게 된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 비급여 치료는 많아지고 결국 실손보험 규모도 그만큼 커지면서 결국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영역이 상대적으로 작아지는 문제가 생긴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2017년 8월 발표한 보장성 강화 방안(문재인 케어)에서 2022년 건강보험 보장율이 70%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이마저도 달성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보장 비율이 62~63%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치인 80%에 견줘 크게 낮기 때문에 환자들이 병원비 부담을 크게 느껴 실손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 비급여의 급여화 서둘러야

소비자단체들은 의료계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방안에 대해 반대하는 데에는 비급여 자료를 모두 드러내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지적한다. 환자 요청에 따라 병원이 전자문서로 된 서류를 보내게 되면 소액의 비급여 진료도 모두 보상을 하기 때문에 비급여 진료 현황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문제는 비급여 진료 자료를 병원이 모두 보낸다고 해도 비급여가 줄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비급여가 많아질수록 이를 보상하는 실손보험의 필요성은 커지기 때문이다. 정형준 사무처장은 “비급여와 민간보험은 악어와 악어새 관계라고 볼 수 있다”며 “비급여 시장의 확대가 민간보험이 존재하는 이유인만큼 실손보험이 확대되면 문케어 속도가 지체된다”고 지적했다. 정 처장은 또 “게다가 민간보험사가 건강보험보다 먼저 비급여 정보를 모아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아닌 다른 민간보험 시장에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며 “결국 비급여를 전면 급여화하겠다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빠르게 정착시켜 실손보험과 비급여의 동반 성장이라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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