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21 07:55
수정 : 2018.03.21 07:55
김인곤의 먹기살기/음식오행학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春分)이다. 봄기운이 완연하지만 음력으로는 이제 2월의 초입이다. 농가월령가 이월령에 보면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요 소로장이 물쑥이라. 달래김치 냉잇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본초를 상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라.” 여기서 ‘비위를 깨친다’함은 겨우내 움츠려 있던 소화기관을 깨어나게 한다는 뜻. 비록 동면은 하지 않지만 묵은나물 밑반찬에 의존하여 겨울을 난 우리몸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것은 봄의 시작을 상징하는 입춘에 다섯가지 향이 강한 오신채를 먹어 오장(五臟)을 깨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냉이는 들이나 밭에서 흔하게 자라서 국이나 나물로 즐겨먹는 이월의 대표절식으로 나생이·나숭게라고도 불린다. 이른 봄부터 캐서 겉절이나 국 또는 전으로 먹고 4~5월이 되어 30~40센티미터로 자라 흰꽃이 피면 화전에 장식으로 사용한다. 또 다 자란 냉이줄기를 말려 가루를 내면 국수 반죽을 할 때나 양념장에 첨가하는 천연조미료가 된다. 밥과 김치가 주식인 우리민족에게 냉이는 배추로 담근 김장김치로 겨울을 난 뒤끝을 이어주는 같은 배추과 식물.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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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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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전통의학에서는 냉이의 뿌리를 포함한 모든 부분을 제채(薺菜)라 하여 약재로 쓰는데, 꽃이 필 때 채취하여 생즙을 짜서 먹거나 온전히 햇볕에 말려 쓴다. 약효는 비장(脾臟)을 실하게 하며, 이뇨·지혈·해독 등의 효능이 있어 비위허약·당뇨병·소변불리·코피·산후출혈·안질 등에 처방한다. 특히 눈이 나쁘거나 간이 좋지 않으면 말린 냉이를 뿌리째 차로 끓여 마시면 도움이 된다고 전한다.
그런데 세시(歲時)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절기 즉 입춘(2월4일) -설날(2월16일)-정월대보름(3월2일)-춘분(3월21일)의 절식(節食)들을 큰 그림으로 들여다보면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입춘절식으로 오신채를 먹고 이어지는 설날에는 떡국·꿩만두와 더불어 갖가지 세찬과 세주 등 상다리가 부러진다. 그리고 다음은 오곡밥과 묵은나물·복쌈을 먹는 정월대보름. 묵은나물은 호박고지·무고지·가지오가리·버섯·고사리·박고지 등 9가지를 여름에 말려 두었다가 오곡밥의 반찬으로 풍성하게 먹는다. 반드시 이렇게 먹어야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현대식으로 해석하면 다양한 영양섭취다.
그런데 춘분이 되면 다시 냉이나 달래·쑥 등 향이 강한 음식으로 몸을 깨치도록 한다. 이 순서를 따르면 우리의 몸이 받는 자극은 ‘깨우고 영양보충하고 영양보충하고 또 깨우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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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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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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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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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채셨는지? 바로 우리민족이 가진 전통적인 리듬인 강·약·약 3박자 리듬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얼어붙은 대지만 깨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 땅에 사는 우리의 몸도 깨어난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건강에 좋은 것처럼 리듬을 가지고 서서히 변화에 적응토록 하는 것이다. 우리민족 고유의 리듬 세박자로 말이다.
우리 선조들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절기에 따른 제철음식을 먹도록 한 것은 우리의 몸을 또 마음을 자연의 리듬에 맞추는 상생의 삶을 살라는 가르침 그 자체다.
김인곤(수람기문 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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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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