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129 영상 콜센터의 수화 상담사 조정순(오른쪽)씨가 6월27일 정부과천청사 콜센터에서 청각장애인(화면 안)과 상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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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디지털] 장애인에게 디지털기기란
고등학교 2학년 신나라양은 스마트폰을 쓴 지 올해로 3년째다. 신양에게 카카오톡은 친구와 연락하는 통로이고, 페이스북은 온라인 친구를 만나는 광장이다. 여느 고등학생과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신양이 시각장애를 지녔다는 점이다. 청각장애를 지닌 손우호(36)씨는 스마트폰이 국내 처음 도입된 2009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비장애인이 휴대전화를 쓰며 느낀 편리함을 손씨는 그때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전에는 주변에 수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을 거쳐 3자 통화만 할 수 있었죠. 직접 이야기하니 얼마나 좋던지요.” 그는 손말로 기쁨을 표현했다. 성별·나이는 물론 장애에도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은 인터넷 공동체가 초창기 꿈꿨던 이상이었다. 정보통신(IT) 기술의 발전은 장애인에게 새로운 눈과 귀 노릇을 하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 미디어의 광범한 보급과 빠른 기술혁신은 이를 적극 수용해 능숙하게 활용하는 집단과 그렇게 하기 어려운 집단 간에 소통의 기회를 늘린 것과 함께 우려도 만들고 있다. 두 집단 사이의 정보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6월27일 서울 한빛맹학교에서 만난 신나라양은 스마트폰 이후의 가장 큰 변화로 ‘뉴스 습득’을 꼽았다. “전에는 공부하고 집에 가서 텔레비전 뉴스를 듣는 게 다였어요. 씻고 하다 보면 듣기 쉽지도 않았죠.” 지금은 스마트폰에서 내용을 읽어주는 기능(아이폰의 보이스오버, 갤럭시의 토크백 등)으로 원하는 때에 뉴스를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알고 친구들에게 새 소식을 전해줄 때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같은 학교의 이재석(중1)군은 정보기술 블로그를 운영했을 정도로 이 분야에 관심이 많다. 그가 꼽은 장점은 인터넷 다이어리 기능이다. “어머니와 함께 다이어리 앱을 쓰는데 서로 말하지 않았던 속마음도 알 수 있어 좋아요. 얼마 전 비바람이 몰아칠 때 어머니가 무서웠다는 글을 쓰셨는데, 밖에서 알고 위로해 드릴 수 있었죠.” 신양도 메신저가 서로의 감정을 알려주는 게 좋다고 말한다. “보이스오버가 이모티콘도 읽어주거든요. 친구의 마음을 듣는 거 같아요.”
한빛맹학교 학생들이 각자 스마트폰을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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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나이·장애 불문 누구나 소통하는
인터넷공동체 꿈 한발 더 가까이 정보화 지수는 비장애인 절반 ‘뚝’
모바일시대 열리며 다시 벌어져
활용법 교육 확대 등 기반 닦아야 장애인은 작은 차이 때문에 비장애인이 생각지 못한 큰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129 콜센터’에서 일하는 수화 상담사 조정순씨가 들려준 사례다. “재작년 성남의 한 50대 농아인 남자분이 통화상담을 해왔어요. 부인이 암 진단을 받아 긴급의료비 지원을 신청하려는데, 병원에 상담을 해줄 적절한 사람이 없었던 거죠. 어쩔 수 없어 영상전화를 걸려고 집까지 택시 타고 혼자 왔대요. 아내를 둔 채 말이죠.” 당시만 해도 수화 영상상담을 하려면 ‘시토크’라는 이름의 전용 집전화기를 써야 했다. 복지부는 지난 5월 모바일 영상상담서비스를 도입해, 지금은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상담할 수 있다. 하지만 예로 든 사례들은 전체 현황에서 보면 예외에 가깝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 3월 발표한 ‘2013 장애인 정보격차 실태조사’를 보면 유무선 융합 환경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정보 격차는 더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조사에 처음 도입된 ‘스마트 정보화 지수’에서 장애인의 점수는 49.2점이었다. 비장애인의 경우를 100으로 놓았을 때 비교 점수다. 개인용컴퓨터(PC) 기반에서 장애인의 정보화 지수가 83.8점에 이르는 것에 비하면 한참 낮은 수치다. 기존 피시 환경에서 격차가 많이 좁혀지고 있었으나 모바일 시대가 열리며 격차가 다시 크게 벌어지는 양상인 셈이다. 주된 원인은 장애인은 새 기술의 존재나 장점을 인지하는 것 자체가 비장애인에 비해 어렵다는 데 있다. 한빛맹학교의 김해동 교사(교육정보부장)는 “콘텐츠 부족도 문제지만 새로운 기술의 장점 자체를 알기 쉽지 않은 환경이 문제”라고 말했다. 정보화진흥원 조사에서도 장애인이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구입비 부담’(31.1%)이었지만, ‘용도 모름’도 28.5%로 비슷하게 높았다. 김 교사는 “현행 교과과정에는 정보 활용 방법에 대한 교육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장애인에게는 온라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에 대한 주의를 비롯한 안전 교육이 특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예전 장애인 학생이 학습 교재를 구하면서 겪었던 애로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서울맹학교 강민영(고3) 학생은 “비장애인은 서점에서 여러 참고서들을 보다 하나 고르지만, 우리는 원하는 교재를 꼽아 장애인용 대체 교재 제작을 의뢰해야 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국립특수교육원의 임정윤 연구사는 “차별금지법은 모든 장애인들이 정보 습득과 교육 기회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건 그런 기반을 마련하도록 노력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정부와 기업 등 사회 전반을 구성하고 있는 비장애인의 관심이 필요한 일이다. 시각장애인이면서, 장애인용 소프트웨어 기술기업인 ‘엑스비전테크놀로지’ 이사인 김정호씨는 “어떤 기술이 얼마나 좋은 기술인지는 얼마나 많은 이들을 끌어안느냐에 달렸다고 봅니다. 좋은 사회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글·사진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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