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02 20:45
수정 : 2014.04.03 21:40
허재호 전 회장 vs 박경석 장애인연대 대표
중증 장애인은 노역장에서 화장실도 못 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하루 노역으로 벌금 5억원을 탕감받는 한편에선 중증장애인이 일당 5만원의 노역을 자청하고 있다. 허 전 회장은 출소할 때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하는 특별대우를 받았지만, 중증장애인은 노역장에서 화장실도 제대로 갈 수 없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지난달 29일 벌금 200만원을 낼 수 없다며 대신 노역을 하겠다고 경기도 의왕의
서울구치소에 들어갔다. 박 대표는 닷새 만인 2일 낮 12시께 건강악화로 출소했다. 닷새 노역으로 25만원의 벌금을 탕감받은 박 대표는 시민이 모아준 돈으로 남은 벌금 175만원을 냈다. 박 대표는 2012년 10월 화재로 집안에서 숨진 장애인 김주영씨 노제에서 장애인 지원 확대를 촉구하다 교통을 방해했다며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척수장애가 있는 박 대표는 휠체어 없이는 아무 데도 가지 못한다. 박 대표는 교도관한테 사정을 밝히고 씻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박 대표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교도관이 ‘벌금을 내면 되지 여기가 개인 집이냐’며 핀잔하듯 말했다”고 전했다. 박 대표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겠다며 관련 서류를 달라고 하자 구치소 쪽은 “주말엔 접수받지 않는다. 월요일 근무시간이 돼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엔 “시설수용자가 위원회에 진정하려고 하면 즉시 진정서 작성에 필요한 시간과 장소 및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박 대표가 씻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거듭 요구하자 구치소 쪽은 “의사의 판정이 있어야 한다”며 “사소한 걸로 꼬투리 잡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박 대표를 면회한 전장연 관계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31일 인권위에 긴급구제를 신청했고, 1일 오전 인권위 조사관이 현장조사에 나섰다. 그때서야 구치소 쪽은 샤워를 할 수 있도록 조처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교정기관에 장애인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장애인은 노역을 선택할 권리조차 없다”고 짚었다.
서울구치소 관계자는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은 주변 수용자나 직원이 돕는다. 별도의 지원 규정은 없다. 박씨가 수치스럽다며 외부 활동보조인을 원했지만 들어줄 수 없는 요구라고 답했다”고 해명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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