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제주도의 한 장애인복지시설에서 발달장애인들이 성을 주제로 한 인형극을 하고 있다. 한국발달장애인 가족연구소에서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제공
|
[토요판] 커버스토리 지적장애인의 성
비장애인보다 인지능력 낮지만 성적 성숙·욕구는 차이 없지만
성범죄 피해 심각한 탓에
성적 자기결정권 제약이 크다 “성교육의 핵심은 자기표현 훈련
상대의 영역 침범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는 법 배우는 것”
미국에선 전문가가 일대일로
장기간 관계 맺으며 성 지식 교육 지적장애인의 삶을 보면 가장 내밀한 문제는 성의 문제다. 오랫동안 지적장애인의 성은 금기였다. 지적장애인은 성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성적 욕구가 없는 무성적 존재이거나 성범죄 피해자 또는 가해자로만 존재했다. 지적장애는 발달기(~18살) 동안 나타나 성인기까지 이어진다. 적응행동에서 결함이 있고 지능지수가 70 이하인 경우를 말한다. 보통 자폐성 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을 묶어 발달장애인으로 부른다. 지적장애인은 비장애인에 견줘 논리력·판단력 등 인지능력이 낮을 뿐 성적 성숙이나 성적 욕구와 충동, 이성교제, 결혼에 대한 생각 등은 차이가 없다. 장애인도 성에 대한 욕망이 있다는 인식이 널리 알려졌지만, 여전히 장애인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기에는 현실적 제한이 많다. 장애인의 성을 수동적인 것으로 바라보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알려진 대로 성범죄 피해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 피해는 물론 지적장애인 피해자의 경우 또다른 문제가 끼어든다. 자신의 성적 느낌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성폭행이나 성추행의 폭력을 학습할 우려가 있다. 지적장애인들이 함께 거주하는 복지시설인 강화마을 유찬호 신부가 말했다. “한 여성 지적장애인이 지나치게 폭력적 성향을 보이는 거예요. 상담을 해보니 동네 남성들과 성관계를 강요받아왔던 거죠. 그런데 스스로 성의 즐거움을 알게 되자 가해 남성들을 계속 만나온 거예요. 부모가 경계성 장애라 경찰의 도움을 빌렸는데, 여성이 제 발로 찾아갔으니 처벌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전문가들은 장애인의 성을 무조건 부정적인 것, 말할 수 없는 것이라 덮어두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바른 성교육을 통해 지적장애인들이 성에 대한 지식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 지적장애인이 성에 대한 권리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25일 서울 강남의 한 스터디카페에 지적장애인 4명이 성교육 수업을 듣기 위해 모였다. 해냄복지회 굿잡(good job)자립생활센터에서 준비한 성교육 ‘나는 소중해요’의 두번째 수업시간이었다.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성장교실 김혜경(42) 강사가 준비한 영상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짧은 사진 모음이었다. 김씨는 배꼽 밑이 간질간질한 장면이 있으면 이야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남녀가 손을 잡거나 포옹하고 키스하는 등 ‘야한’ 장면이 이어졌다. 29살 남성은 “너무 야하다”며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는 성추행, 성폭력이 나쁜 행위이며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김씨는 계속 질문을 던지며 그의 생각을 이끌어냈다. “남자가 여자 엉덩이에 손 넣은 건 성추행이에요.”(장애인 남성) “여자친구가 허락을 했는데도 안 해요?”(강사) “안 해요. 결혼해서만 할 거예요.”(장애인 남성) “여자친구가 하고 싶다고 하면요?”(강사) 그는 슬쩍 밖에 나가서 뽀뽀하고 온다고 했다. 대신 사람들, 특히 아버지가 보지 않는 곳에서 해야 한다고 답했다. 수업이 끝난 뒤 김 강사는 성인 지적장애인들 상당수가 성을 성폭력과 동일시 여기고 있고 성은 자신의 삶과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강사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말했다. “부모로부터 안 된다는 말만 들은 거예요. 최근에는 연애와 결혼까지는 허락한다는 부모님들이 많아졌는데 여전히 출산은 안 된다고도 하죠. 건강하고 긍정적으로 성을 바라보도록 부모부터 자녀가 성적 존재임을 인정해야 해요.” 전문가들은 지적장애인의 성에 대해 가정과 공공의 영역에서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현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성이 단순히 섹스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에 함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적장애인 성폭력 예방과 성교육의 핵심은 자기표현 훈련이에요. 내 몸이 싫고 좋은 반응에서부터 출발하는 거죠. 사람마다 영역이 있으니 내가 상대의 영역을 침범해선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또 반대로 침범당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배우는 거죠. 사회화 교육이자 인성교육도 돼요. 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삶의 질과 연관되는 거죠.” 지적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성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진옥 서울 중구장애인복지관장은 사회가 지적장애인이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장애인 청소년들은 운동하고 놀 데도 많은데 우리 애들은 그러지 못해요. 지적장애가 있는 성인들도 작업장 말고는 할 일이 없고요. 같은 지적장애인이라도 인지능력의 차이가 많이 나는데, 나와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활동반경이 좁은 지적장애인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운동을 하거나 여가생활을 즐기거나 지적장애인도 비장애인만큼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성과 관련된 문제는 지금보다 많이 줄어들 거예요.” 전문가들은 장애 정도를 고려한 개별형 맞춤형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은 42개 주에서 지적장애 여성에 대한 가족계획 프로그램(DDSN·Department of Disabilities and special needs)을 실시하고 있다. 성 역할에서 문제를 갖고 있는 지적장애 여성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으로 지적장애인의 위생상태를 개선하고 필요한 성 지식을 개별적으로 일러주는 프로그램이다. 지적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높은 전문가가 참가자들과 장기간에 걸쳐 일대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현재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은 생애주기별로 담당 부처가 나뉘어 있다. 일반학교와 특수학교에 다니는 지적장애인은 교육부, 여성과 아동은 여성가족부, 성인 남성은 보건복지부에서 담당한다. 학생과 성폭력 피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과 권리 강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다. 성인 남녀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지적장애인의 성을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 ‘바보’라고 손가락질하고 거리를 두고 모른 척했던 지적장애인을 비장애인과 같은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길을 고민할 때다. 지적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똑같은 ‘성적 존재’로 받아들이고 개별적 맞춤교육과 관리를 확대하는 것도 그 시간을 앞당기는 길이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