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11.27 20:50 수정 : 2012.11.27 22:30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역 앞을 무심히 지나는 시민들을 향해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호소하며 99일째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고 김주영·박지우 분향소 곁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호소
부양의무제, 박근혜·문재인 “완화”
장애등급제, 박 “재정비” 문 “폐지”

서울 광화문 해치광장 아래 지하보도에는 사람들이 산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함께 몸부림친다. 이곳에는 24시간 장애인 활동지원을 받지 못해 불과 다섯 발짝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현관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화마에 숨진 장애인 활동가 김주영씨, 장애가 있는 동생을 지키려다 불이 난 집을 빠져나오지 못해 숨진 박지우양의 분향소가 있다. 그 곁에는 23년 동안 코빼기도 못 본 부모의 재산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을 거절당한 장애인, 살림 빠듯한 아들에게 짐을 지울 수 없어 노숙을 택한 노인, 장애인 아들에게 수급 자격을 달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 등의 한 맺힌 사연이 피켓에 적혀 있다.

이들을 마주 본 채 장애인·빈곤단체들은 24시간 ‘노숙농성’을 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22개 단체가 모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이 이곳을 지킨 지 28일로 꼭 100일째가 된다. 그동안 활동가 2000여명(연인원)이 참가했고, 시민 2만2000명이 서명을 했다. 빵이나 음료수를 건네면서 지지를 보내는 시민도 꽤 늘었다.

27일 오후 농성장에서 만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처음 농성장을 차린 날 10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했다. 휠체어 리프트가 멈추고, 엘리베이터도 못 타게 해 계단을 기어올라왔던 게 유난히 기억난다”고 했다. 그동안 가장 안타까웠던 일은 이곳에서 함께 농성하던 김주영 활동가가 농성 67일째인 지난달 26일 집에서 난 화재로 숨진 것이다.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농성에 참여해 “출석부라도 만들어줘야겠다”고 했는데 그는 이제 영정으로만 남았다. 그의 노제를 치르면서 또 수십명의 활동가가 경찰의 소환통보를 받거나 채증을 당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장애인·빈곤단체들은 반드시 장애등급제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확약받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유력 대선 후보 두 사람은 확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23일 민주통합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매니페스토본부는 ‘2012 대선 장애인연대’의 제안으로 정책협약식을 열었지만,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완화’로 바꿔 수용했다. 장애등급제 폐지 등 나머지 요구들은 받아들였다.

새누리당도 이한구 원내대표가 지난 19일 내년도 예산 계획을 발표하면서, 기초생활수급자의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직계 1촌 혈족의 배우자인 사위와 며느리는 부양의무자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내놓았을 뿐이다. 김정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새누리당으로부터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대해 어떤 대답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했다.

장애등급제는 장애인들의 몸을 의학적으로만 판단하고 낙인을 찍어 분류하는 인권침해적인 제도지만 각종 장애인 복지제도의 기준이 돼왔다. 1989년 일본에서 도입했지만, 일본은 장애인 등급을 서비스를 제한하는 데 쓰지 않는다. 유독 한국만 복지서비스 박탈에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부양의무제는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극빈층이라 하더라도 직계혈족 1촌과 그 배우자의 재산과 소득이 있으면 기초수급권자가 될 수 없도록 한 악법이다. 2011년 보건복지부가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에서 제외한 8만4908명 가운데 61%인 5만1820명이 실제론 극빈층인데도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탈락했다. 올해 말 기준 기초수급자는 139만명대로 떨어졌다. 정부는 이 제도를 폐지할 경우 국비 예산만 5조원대가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박경석 대표는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정책의 핵심 고리이면서 장애인들의 삶을 옥죄는 최대 장벽이다. 예산타령만 할 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빈곤율 1위, 공공사회지출 29위라는 점을 유념해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노숙농성 100일이 되는 28일, 이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 활동보조인 24시간 지원, 발달장애인법 제정,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등을 요구하는 1인시위와 행사를 연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