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없는 공간만들기 ‘쉼표는 없어요’

지체장애인편의시설지원센터 직원들이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객석 내 경사로의 기울기가 휠체어 이용에 적합하게 설계돼 있는지 측정하고 있다. 센터의 의견에 따라 2005년 정부과천청사 내 국제회의장에도 경사로가 마련됐다. 지체장애인편의시설지원센터 제공

빼빼로데이? 11월11일은 열번째 ‘지체장애인의 날’
장애인편의시설지원센터 전국 164곳 활동
경사로·화장실·점자블록 등 기술지원·자문
규정맞는 시설 56%…“예산 부족이 걸림돌”

11월11일은 ‘지체장애인의 날’이다. 1년 중에 ‘1’이 가장 많이 들어간 날로, 지체장애인들이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일어설 수 있는 복지사회의 열망을 담아 제정됐다. 올해로 10번째인 지체장애인의 날을 맞아 전국에서 유일하게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기술지원 및 자문을 하고 있는 지체장애인편의시설지원센터의 활동을 살펴봤다.

“이 정도 기울기면 거의 미끄럼틀이라고 보면 됩니다. 일반 휠체어로는 이동이 불가능합니다.”

지난달 20일, 아직 입주가 시작되지 않은 경기도 ㅅ아파트 단지를 찾은 지체장애인편의시설지원센터 홍현근 팀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파트 입구에서 각 동으로 연결되는 경사로의 각도를 재어 보니 12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편의증진법)은 휠체어나 유모차가 이동할 수 있는 적정 경사를 2도 정도로 규정하고 있는데, 기준을 6배나 초과한 것이다.

이 아파트의 입주는 지난 9월이었지만, 장애인 편의시설 미흡으로 지자체로부터 사용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입주예정자들의 민원에 시달리던 지자체는 결국 지난달 18일 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센터는 고민 끝에 아파트 지하주차장 벽을 뚫어 지상으로 오르는 수직형 리프트와 각 동 사이를 이동할 수 있는 사선형 리프트 설치를 제안했다. 홍 팀장은 “토목공사를 할 때 처음부터 땅을 평평하게 만들었다면 추가로 리프트를 설치하는 번거로움은 없었을 것”이라며 “차선책을 찾긴 했지만 지체장애인들은 여전히 아파트 안을 이동할 때 리프트를 두세 번 갈아타는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4년 1월 편의증진법에 근거해 설립된 지체장애인편의시설지원센터는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소속으로 전국에 164개 센터를 갖추고 있다. 센터에서는 장애인이 경사로나 화장실, 점자블록, 주차장, 승강기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하는 데 적절하게 설계돼 있는지를 검토한다. 홍 팀장은 “대부분의 지자체는 건축허가를 내주기 앞서 센터에 설계도면이 적합한지 의뢰하고 있다”며 “센터 설립 전에는 도면 검토도 없이 승인을 해주는 일이 많았는데, ㅅ아파트도 그 지역의 센터가 문을 열기 전인 2007년에 허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옛 건물의 보수 작업 때도 센터는 중요한 몫을 한다. 1982년 완공된 정부과천청사는 2005년 지하 1층 ‘국제회의장’ 보수작업을 했는데, 당시 센터는 계단뿐이던 국제회의장에 경사로와 리프트를 설치하고, 목발 사용자를 위한 손잡이 마련을 권고했다.

센터의 이런 ‘무장애 공간 만들기’ 활동에 발목을 잡는 것은 역시 예산부족이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관계자는 “정부 의뢰를 받아 매년 편의시설 개선을 위한 표본조사나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예산이 부족해 속도가 더디다”고 털어놨다. 센터가 2008~2009년 도로와 공원, 공공건물, 교통시설 등의 편의시설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관련 규정에 맞게 설치된 편의시설의 비율은 55.8%에 불과했다.

때론 지자체의 비협조도 이들을 힘들게 한다.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으면 지자체가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행강제금을 부과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이를 어기면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는 것이다. 호화청사로 눈총을 받았던 경기도 성남시청의 경우 ‘장애인 화장실 손잡이 간격’ 등을 지적받은 뒤 이를 즉각 시정하지 않았다고 센터는 지적했다.

황춘화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