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22 19:32
수정 : 2019.12.0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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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미세먼지와의 연관성을 부인해왔던 중국이 최근 처음으로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서울시가 오후 1시 기준으로 미세먼지 주의보를 발령한 지난 18일 오후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하늘이 뿌옇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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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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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미세먼지와의 연관성을 부인해왔던 중국이 최근 처음으로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서울시가 오후 1시 기준으로 미세먼지 주의보를 발령한 지난 18일 오후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하늘이 뿌옇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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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겨울입니다. 다시 미세먼지의 계절입니다. 하늘이 온통 뿌옇게 변했던 지난 1월과 3월의 악몽 같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이번엔 또 얼마나 갑갑하게 지내야 할지,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혀 옵니다. 안녕들 하신가요, 아니 올겨울 안녕들 하시길 바랍니다. 전국팀에서 환경을 담당하는 박기용 기자입니다.
다행히 올겨울 미세먼지 전망은 비교적 좋은 편입니다. ‘추운 겨울’이라 미세먼지 농도가 예년과 비슷하거나 낮을 것이라 합니다. 서울시 미세먼지연구소가 지난 12일 연 토론회에서 예상욱 한양대 교수(해양융합공학과)가 내놓은 전망입니다. 한반도 겨울 날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크게 세 가지인데요. ‘북극 얼음 면적’, ‘시베리아에 덮인 눈’, ‘열대 해수면 온도’입니다. 이를 분석했더니 올겨울은 날씨가 추울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이젠 미세먼지 때문에 겨울 추위를 반갑게 느껴야 할 참입니다.
겨울이 추우면 미세먼지가 없고 따뜻하면 미세먼지가 찾아옵니다. 겨울철 한반도가 따뜻해지는 건 남쪽 고기압의 영향권에 들면서 날이 맑아 기온이 오르기 때문입니다. 대신 하강 기류가 생긴 탓에 대기는 급격히 안정돼 순환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아 미세먼지가 쌓이면 농도가 올라갑니다. 반대로 남쪽 고기압이 물러가고 북쪽에서 한파가 내려오면 강풍이 불면서 대기가 순환하고 미세먼지가 흩어집니다. ‘삼한사온’(사흘은 춥고 나흘은 따뜻함)을 대신하는 ‘삼한사미’(사흘은 춥고 나흘은 미세먼지)란 말도 그래서 생겼습니다. 추우면 미세먼지가 줄어드니까요. 이제 겨울은 춥거나, 아니면 미세먼지입니다.
미세먼지와 관련해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그동안 한반도 미세먼지에 대한 자국 영향을 부인해왔던 중국이 처음으로 책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작은 진전이라고나 할까요. 동북아 세 나라 한국과 중국, 일본은 지난 2000년부터 ‘동북아 장거리이동 대기오염물질(LTP) 국제공동연구’라는 협력사업을 수행해 왔습니다. 각국에서 배출한 오염물질들이 상대 국가로도 흘러가는지, 간다면 얼마나 가는지 등을 함께 연구해온 것인데, 이 결과를 합의해 공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무려 19년 만에 말이죠.
이 공동연구사업의 사무국 구실을 하는 한국의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 20일 “한국 초미세먼지(PM2.5)의 32%가 중국에서 유입된 것”이라는 3개국 공동연구 결과를 공표했습니다. 이 결과는 연구진뿐 아니라 중국 당국도 검토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인정한 것이죠. 자국 내 대기질이 최근 수년간 눈에 띄게 좋아졌다며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부인하는 태도를 보였던 이전 모습과는 다소 달라진 셈입니다. 다만 이번에 공표한 것은 미세먼지가 없는 맑은 날까지를 포함한 연평균 수치뿐이라 고농도 때 기여율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발표 과정에 참여했던 이들은 “이 정도 합의도 쉽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겨우 한 걸음 내디딘 것이죠.
중국과의 협력은 앞으로도 쭉 이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과거 1980년대 유럽에서 맺은 ‘월경성 대기오염 물질 협약’(CLRTAP) 같은, 법적 구속력을 갖는 국제협약으로 발전시켜 가야 합니다. 당시 유럽의 협약 체결 과정을 보면 높은 국민적 관심과 여론이 무엇보다 큰 구실을 했습니다. 서독에선 산성비로 인한 산림 피해 소식이 전해지며 ‘녹색 운동’이 전개되고 ‘녹색당’이 창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열기가 협약 체결로 이어졌고 ‘가해자’ 영국이 이후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이는 정책을 펴면서 유럽의 공기가 지금처럼 맑아질 수 있었습니다.
결국 문제는 우리 모두의 관심입니다. 미세먼지 문제는 앞으로도 오래 골칫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세먼지를 부르는, 한반도의 대기정체 경향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국립기상과학원의 분석을 보면 지난 30년간 겨울철에 연간 평균 100회를 넘나들던 강풍(초속 14m 이상) 빈도는 최근 20회 미만으로 줄었습니다. 기후변화로 육지와 바다의 가열 차이가 줄면서 북서 계절풍이 약화된 탓입니다. 바람이 불지 않아 미세먼지가 쌓이는 ‘미세먼지 감옥’이 더 잦아지게 됩니다. 중국과의 협력도,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관심도 필요합니다. 다른 선진국들처럼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안도 함께 얘기해야 합니다. 마스크와 공기청정기를 챙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환경 문제가 늘 그렇듯, 미세먼지 문제는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공동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미세먼지의 계절이 다가옵니다.
박기용 전국2팀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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