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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2 09:22 수정 : 2019.09.02 10:12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 출전한 미국 단체시간경주(team time trial)팀의 사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최강의 약물의 유혹, 도핑의 과학]
17화 혈액 도핑 ② - 수혈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 출전한 미국 단체시간경주(team time trial)팀의 사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미국 자전거 대표팀은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1912년 이후 단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하던 기나긴 가뭄에 금메달 네 개를 포함해 총 아홉 개의 메달을 거두는 해갈의 단비를 내렸다. 뛰어난 성과 뒤에는 폴란드 출신의 감독 에디 보리세비치(Eddie Borysewicz)가 있었다(비록 선수들은 그의 성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보통 ‘에디 비(Eddie B)'라고 불렀지만).

1978년부터 대표팀을 이끌던 그는 유럽에서 선수와 지도자로서 겪었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선수들을 지도했다. 또 영국의 유명 회사 라레이(Raleigh)가 제작한 자전거와 공기역학 바퀴의 선구자 스티브 헤드(Steve Hed)의 바퀴를 사용하면서 하드웨어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아울러 홈 그라운드의 이점과 소련 및 동구권 국가의 불참이라는 유리한 상황도 누렸다. 올림픽이 끝난 뒤 그는 지도력을 인정받아 미국자전거연맹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 되는 영예를 얻었다.

그러나 다음해 대표팀이 수혈(輸血)로 경기력을 끌어올렸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메달을 딴 네 명을 포함해 총 일곱 명의 선수가 미리 뽑아 놓은 자신의 혈액 혹은 다른 사람의 혈액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렸다는 소식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은빛 바퀴를 힘차게 돌리며 결승선을 통과하던 감동적인 장면이 한 기사의 제목처럼 ‘피로 더럽혀진 승리(Triumph tainted with blood)>’[1]였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5천미터-1만미터 2연패한 라세 비렌의 비밀

멕시코 올림픽이 열렸던 1968년으로 돌아가보자. 고지대에서 온 선수들이 저지대에서 온 선수들을 압도한 결과는 경기력 향상을 위한 고지대 훈련을 탄생시켰다.[2] 핵심은 산소를 근육에 전달하는 적혈구였다.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관련 연구에 불이 붙기 시작했고, 1972년 스웨덴의 뵨 에크블롬(Björn Ekblom) 교수는 큰 진전을 이루었다.[3] 피를 뽑힌 참가자에게 4주 뒤에 800~1200밀리리터(ml)의 혈액을 다시 주입했더니 지구력이 약 16~25퍼센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 선수들이 언제부터 혈액 도핑을 시작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혈액 도핑의 초기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꼭 언급되는 선수가 한 명 있다. 바로 1972년 뮌헨 올림픽과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5000미터와 1만미터 달리기를 2연패한 핀란드의 라세 비렌(Lasse Viren)이다(올림픽에서 두 종목 2연패 기록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전까지 오직 그만 갖고 있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10,000미터 달리기에서 라세 비렌이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하는 장면. https://www.youtube.com/watch?v=mglwnEG86Xs
비렌이 도핑을 했다고 의심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올림픽을 제외하고는 성적이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평상시 그는 경찰관으로 일했다. 올림픽 때만 되면 정상에 오르는 실력에 대한 궁금증은 자연스럽게 도핑으로 이어졌다. 혈액과 경기력의 관계를 살피던 초기 연구가 스웨덴에서 시작했으니 옆동네인 핀란드에서 온 선수도 혈액 도핑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일견 말이 되었다. 아울러 그의 짧고 냉소적인 해명도 의심을 증폭시켰다. 1976년 기자 회견에서 그만의 비밀 무기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순록 우유를 많이 마셔요.”[4]

이듬해 한 잡지는 올림픽에서 그가 거둔 성공의 비결을 일주일에 240킬로미터를 달리는 훈련, 선천적으로 높은 적혈구의 양, 고지대 훈련 등으로 경기력의 극대화를 도운 코치라고 소개했다.[5] 하지만 1981년 팀 동료 카를로 마닌카(Kaarlo Maaninka)가 모스크바 올림픽 때 수혈했다고 고백한 것을 고려하면, 그에게서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기가 쉽지 않다. 각국 선수들 사이에서도 혈액 도핑을 둘러싸고 우려와 비난이 있었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IOC는 왜 팔짱만 끼고 있었을까? 일단 혈액은 약물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의 도핑 기준에 해당되지 않았다. 설령 도핑의 기준을 새로 정립해 수혈을 포함시키려 한들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당시에는 외부에서 주입한 혈액을 검출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IOC는 단백동화남성화 스테로이드(AAS)를 금지 목록에 올릴 때와 비슷하게 대처했다. 1960년대 후반에 선수들 사이에서 AAS가 이미 광범위하게 퍼졌지만, IOC는 검출 방법이 개발된 뒤인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때부터 본격적인 규제를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 자전거 대표팀은 혈액 도핑이 스포츠 정신과는 어긋나지만 공식적으로는 불법이 아닌 상황을 십분 활용했다. 감독이었던 에디 보리세비치는 선수들의 마음에 의심의 씨앗을 심었다. ‘수혈을 하지 않으면 메달을 따지 못할 것이다. 다른 선수들이 다 하니까 너도 해야 한다.'[1] 수혈에 동의한 선수들은 경주를 며칠 앞두고 훈련장이 아닌 호텔 방에 누워 빨간 피가 천천히 자신의 혈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봤다. 조금 으스스한 장면이지만, 뭐 어떤가. 좋은 성적을 거둘 수만 있다면 감내할 만했다.

물론 수혈은 엄연한 의료 행위이므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 자전거 대표팀에서 혈액 도핑을 한 일곱 명 중 세 명은 시간이 촉박해 주변 사람의 혈액을 사용했다. 그 중 가족의 혈액을 주입 받은 마이크 화이트헤드는 이틀 동안 39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렸고, 몸무게가 약 5킬로그램이나 빠졌다.[6] 하지만 몇 달 전에 자신의 피를 뽑아 놓은 뒤 경기를 앞두고 다시 주입하는 이른바 ‘자가 수혈(autologous transfusion)’을 시행하면 부작용이 크게 감소하기 때문에 선수들은 부담을 덜 수 있었다. 더욱이 자가 수혈은 검출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금상첨화였다.

제2의 타일러 헤밀턴을 막아라…선수생체여권 도입

혈액 도핑의 호시절(?)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IOC가 이전보다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도 이유였지만, 근본적으로는 보다 편하게 적혈구 생성을 유도하는 에리스로포이에틴(EPO)이 약물로 등장한 것이 컸다. 수혈을 하려고 주사 바늘을 꽂은 채 누워 있는 대신 정기적으로 EPO 주사를 맞는 쪽이 훨씬 편했다. 그러나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EPO 검사가 도입되자 상황이 다시 바뀌었다. 선수들이 수혈로 돌아가면서 혈액 도핑은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했다.

적혈구를 천천히 늘리는 EPO에 비해 수혈은 적혈구를 바로 늘려 효과가 즉시 나타난다. 미국의 자전거 선수 타일러 헤밀턴(Tyler Hamilton)은 수혈을 소개받던 장면을 이렇게 회상했다.

타일러 헤밀턴이 자신과 동료 자전거 선수들의 공공연한 도핑 실태를 고발한 책, <비밀의 경주(The Secret Race>. 아마존 제공

“수혈하면 적혈구용적(hematocrit; 전체 혈액 중 적혈구가 차지하는 비율) 수치가 약 3정도 오르는데, 이는 힘이 3퍼센트 증가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7]

그리고 수혈한 다음날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이전에 수천 번 넘어졌던 내 한계의 벽을 넘어섰고, 갑자기 그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8]

헤밀턴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인 시간경주(time trial)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얼마 뒤 수혈을 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여러 종류의 항혈청(면역혈청)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혈액을 주입한 흔적을 찾아내는 유세포분석(flow cytometry)에 양성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9] 가만? 다른 사람의 혈액? 주로 자신의 혈액을 사용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당시 그의 수혈 일체를 담당하던 스페인의 의사에게는 자전거 선수 고객이 많았다. 여러 명의 혈액을 다루는 중에 분류를 잘못했거나 혈액끼리 섞이는 바람에 헤밀턴이 도핑 검사에 걸린 것으로 훗날 추정되었다.

여하튼 헤밀턴은 재수가 없었을 뿐이고, 이후에도 자전거 선수들의 수혈 사랑은 계속되었다. 자가 수혈을 직접 확인하는 방법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수혈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도핑으로 팬들의 인기를 잃고, 이미지의 추락을 겪던 세계자전거연맹(UCI)은 상황을 타개하고자 세계반도핑기구(WADA)와 손을 잡고 2008년 시즌부터 선수생체여권(athlete biological passport; ABP)을 도입했다.

선수들은 초반에 ABP를 반기지 않았다. 자신들의 정보가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사생활 침해로 여겼다. 그러나 UCI와 WADA는 굽히지 않고 대회가 열릴 때와 대회 앞뒤로 각 선수마다 혈액 시료 열 개, 소변 시료 네 개를 채취하는 계획을 밀고 나갔다. 2009년 시즌이 끝날 때까지 848명의 선수들로부터 804개의 시료가 수집되었고, 이 생체 정보는 혈액 도핑을 적발하기 위한 기초 자료가 되었다. 특정 시점에서의 절대값이 아닌 상대적인 변동치를 살펴봄으로써 수혈이나 EPO 사용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10]

한 선수의 생체여권 정보. 파란 선은 실제 검사 결과를, 빨간 선은 정상적인 결과의 상하한치를 나타낸다. 여러 비정상적인 결과는 이 선수가 혈액 도핑을 했음을 시사한다. 임상화학지 제공

ABP 도입은 도핑 검사 패러다임의 이동을 의미한다. 이전에는 양성 반응이란 선수의 시료에서 불법으로 규정된 약물이 실제로 검출되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 결과의 복잡한 통계 처리를 통해 불법적인 무엇인가를 했을(구체적인 내용이나 방법은 모르지만)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바뀌었다. 도핑과의 싸움에서 번번이 패했던 직접 검사를 구원하기 위해 등판한 간접 검사는 구원 승점(세이브)을 추가할 수 있을까? 아니면 블론 세이브(blown save; 마무리 투수가 동점이나 역전을 허용해 구원 승점 기회를 날리는 것)를 기록할까? 도핑을 둘러싼 오랜 싸움의 새로운 관전 핵심(포인트)이다.

반도핑운동에 새로운 물꼬를 튼 ‘혈액 도핑’

2019년 3월 오스트리아 경찰은 자국에서 노르딕스키챔피언십이 열릴 때 크로스컨트리 선수인 막스 하우케(Max Hauke)의 숙소를 급습했다. 올해 초 혈액 도핑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한 독일과 오스트리아 경찰의 합동 작전의 일환이었다. 압수 수색 당시 하우케는 하필 수혈 중이었다. 혈액 도핑(?)의 인기가 시대와 종목을 가리지 않고 여전히 높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경찰의 압수 수색 당시 수혈 주사 바늘을 팔에 꽂은 채 발견된 막스 하우케. https://www.youtube.com/watch?v=DgAjrIApBAM
혈액 도핑은 도핑의 역사에서 여러 의미를 지닌다.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팀이 수혈을 했다는 것이 밝혀진 뒤 IOC는 도핑을 새롭게 정의했다. 기존의 ‘약물(drug)’이 ‘물질(substance)’로 바뀌면서 도핑의 근본적인 정의가 확대되었다. 또한 검출 방법이 없어도 일단 금지 목록에 포함시키는 ‘선금지 후검사(ban first, test later)’ 정책을 시행하면서 EPO나 성장 호르몬과 같은 새로운 물질도 금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선수생체여권의 도입으로 간접 검사가 본격화되면서 반도핑 운동의 새로운 물꼬가 트이게 되었다.

한편 미국 자전거 대표팀의 혈액 도핑을 주도했던 에디 보리세비치는 1987년 국가대표 감독 자리를 내려 놓았다. 이후 그는 유명 기업인 토마스 와이젤이 후원하는 스바루-몽고메리 팀을 이끌었다. 1996년 팀의 이름은 미국 우정국(US Postal Service)으로 바뀌었고, 그는 성적 부진을 이유로 1997년 부감독으로 강등되었다. 이듬해 전도유망 했으나 갑작스럽게 고환암을 진단받고 14개월의 투병 치료를 마친 선수가 이 팀에 입단했다. 그리고 1999년부터 7년 동안 ‘투르 드 프랑스(프랑스 도로일주 자전거 대회)’를 석권하며 ‘인간 승리의 표상’으로 칭송을 받았다. 그의 이름은 바로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 하지만 이제는 ‘도핑의 화신’으로 불리고 있다 (③부에서 계속).

최강/정신과의사·다사랑중앙병원 원장 ironchoi@hanmail.net

1. Sullivan, R., Triumphs Tainted With Blood Sports Illustrated 1985. Jan 21.

2. 최강, 적혈구를 늘리는 고지대 적응 훈련은 도핑일까? 한겨레, 2019.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901203.html.

3. Ekblom, B., A.N. Goldbarg, and B. Gullbring, Response to exercise after blood loss and reinfusion. J Appl Physiol, 1972. 33(2): p. 175-80.

4. Pears, T., The time machine (part two). The Guardian, 2007. http://www.theguardian.com/sport/2007/jul/29/athletics.features1.

5. Kenny, M., An Enigma Wrapped in Glory. Sports Illustrated, 1977. June 27.

6. Fouch?, R., Game Changer: The Technoscientific Revolution in Sports. 2017: p. 191.

7. Hamilton, T. and D. Coyle, The Secret Race: Inside the Hidden World of the Tour de France. 2012: p. 156.

8. Ibid., p. 169.

9. Jelkmann, W. and C. Lundby, Blood doping and its detection. Blood, 2011. 118(9): p. 2395-404.

10. Sottas, P.E., et al., The athlete biological passport. Clin Chem, 2011. 57(7): p. 96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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