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17 09:34
수정 : 2019.07.1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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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극지방에 실리카 에어로겔로 지구의 온실가스 효과를 본딴 대기를 만들어 생명체가 거주할 수 있는 구역을 만들 수 있다는 제안이 나왔다. 미국 하버드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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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영의 기상천외한 기후이야기]
지구 온난화 원인 온실가스 모사한 대기
실리카 에어로겔로 화성 극지방에 띄워
자외선은 차단하고 적외선으로 물 생성
영상온도 유지해 생존 가능한 구역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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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극지방에 실리카 에어로겔로 지구의 온실가스 효과를 본딴 대기를 만들어 생명체가 거주할 수 있는 구역을 만들 수 있다는 제안이 나왔다. 미국 하버드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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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 특수 물질로 지구와 같은 대기를 만들어 거주 가능 구역을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미국 하버드대와 나사 제트추진연구소(JPL), 영국 에딘버러대 공동연구팀은 15일(현지시각) <네이처 애스트로노미>에 게재한 논문에서 실리카 에어로겔로 화성의 극지방에 지구의 온실가스 효과를 본딴 대기를 만들어 자외선은 차단하고 적외선은 통과해 지구 수준의 온도를 유지하는 구역을 만들 수 있다고 제안했다.
화성에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대기 환경을 만드는 것은 인류의 오랜 꿈이다. 칼 세이건은 공상과학 소설이 아닌 경우로서는 처음으로 행성 개조(테라포밍)를 제안했다. 세이건은 1971년 논문에서 “화성 북극의 만년설을 증발시켜 대기를 채워 온실가스 효과를 통해 지구와 같은 높은 온도를 유지하고 액체 물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세이건의 논문은 다른 연구자들이나 미래학자들에게 영감을 줘 테라포밍을 꿈꾸게 했다. 핵심 쟁점은 과연 화성에 지구 정도의 대기압을 증가시킬 만한 온실가스와 물이 존재하는가이다. 2018년 미 항공우주국(나사)의 지원을 받아 꾸려진 미국 볼더 콜로라도대와 북아리조나대 공동연구팀은 화성에서 얻을 수 있는 어떤 물질로도 지구의 7%에 불과한 대기압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는 밝혀냈다. 이 정도로는 화성을 거주지로 만들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화성을 테라포밍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꿈인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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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카 에어로겔로 구축하는 화성 거주 가능 구역 개념도. ‘네이처 애스트로노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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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등 공동연구팀은 화성 전체를 개조하는 대신에 국지적 접근이라는 새로운 연구 방향을 찾았다. 연구팀은 지구 대기의 온실가스 효과를 본따 화성의 일부 지역을 실리카 에어로겔로 덮어 거주 가능 구역으로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연구팀은 컴퓨터 모델링과 실제 실험을 통해 2~3㎝ 두께의 실리카 에어로겔이 광합성을 할 수 있는 가시광선을 충분히 통과시키면서도 해로운 자외선은 막을 수 있으며, 어떤 별도의 열원 없이도 온도를 물 용해점 이상으로 영구히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로빈 워즈워스 하버드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화성의 특정 지역을 거주 가능 구역으로 만드는 작업은 화성 전체를 개조하는 것보다 훨씬 실현 가능성이 높다. 기존 아이디어들과 달리 이 작업은 우리가 이미 확보하고 있는 물질과 기술로 개발할 수 있고 체계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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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이 실험에 사용한 실리카 에어로겔 가루(왼쪽)와 조각. ‘네이처 애스트로노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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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케버 나사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도 “화성은 태양계에서 지구를 제외하고 가장 거주 가능성이 높은 행성이다. 하지만 생명이 살아가기에는 힘든 곳이다. 생존할 수 있는 작은 섬을 구축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하면 화성을 통제 가능한 방법으로 개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미 화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서 단서를 찾았다. 물이 얼어서 형성된 지구의 만년설과 달리 화성 극지방의 만년설은 물로 된 얼음과 이산화탄소 얼음이 섞여 있다. 가스 형태와 마찬가지로 이산화탄소 얼음은 열을 가두고 있는 상태에서 햇볕을 통과시킬 수 있다. 여름철에 이 고체 상태의 온실가스 효과로 얼음 아래에 따뜻한 주머니가 생긴다.
워즈워스는 “연구는 고체 상태 온실가스 효과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연구팀은 장래 화성에 거주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데 이 현상을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또 어떤 물질이 열전도를 최소화하면서도 빛은 통과시킬 수 있을지 찾아 나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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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 된 얼음과 이산화탄소 얼음으로 이뤄진 화성 극지방의 만년설. 연구팀은 실리카 에어로겔로 지붕을 만들면 얼음이 녹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물로 유지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미국 하버드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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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의 종착지는 실리카 에어로겔이다. 이 물질은 현재 가장 뛰어난 단열재 가운데 하나이다. 실리카 에어로겔은 97%가 공기주머니로 이뤄진 다공성 물질로, 빛은 쉽게 통과하지만 이산화규소 나노층이 촘촘해 적외선 통과가 어려워 열 전도는 아주 느리게 진행된다. 실리카 에어로겔은 이미 나사의 화성탐사로버 등 몇몇 우주기술에 적용되고 있다.
케버는 “실리카 에어로겔은 영향력이 적어 오히려 유망한 물질이다. 장기간에 걸쳐 한 지역의 온도를 유지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도 않고 유지보수도 거의 필요 없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모델링으로 화성 지표를 모사한 뒤 얇은 실리카 에어로겔 층이 화성의 중위도 평균 온도를 지구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시연해 보였다. 워즈워스는 “충분이 넓은 지역으로 확대하기 위해 다른 기술이나 이론이 필요하지 않다. 단지 실리카 에어로겔을 상하층에 넓게 깔면 영구적으로 액체 물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물질은 화성에 거주용 기지를 짓거나 자급자족 생물권(생명체가 살 수 있는 지표와 대기권)을 건설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연구팀은 후속 연구로 지구 상에 있는 화성 조건의 지형, 예를 들어 칠레나 남극의 건곡(건조한 계곡)에서 실리카 에어로겔을 실험할 계획이다.
워즈워스는 화성을 인간이나 지구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거주지로 만든다는 생각에는 행성 보호라는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화성에 생명체가 살 수 있게 할 수 있더라도 먼저 그곳에 생명체가 살고 있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는지, 만약 그곳에 생명체가 있다면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 논의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화성에 인간을 정착시키려면 피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라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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