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
12. 여당 정치인과 청와대
여당 의원과 청와대·정부 관계
끊임없이 고민하는 문제
상호 토론 거쳐 정책 결정이 최선
때로는 정부도 실수할 수 있어
부담 있어도 고언하는 것이 여당 몫
무조건 찬성, 더 큰 피해로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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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정책을 시행하기 전에는 당·정·청이 함께 참석하는 회의를 열고 미리 이견을 조정해야 한다. 사진은 지난해 11월16일 국회에서 열린 디지털 성범죄 근절 입법 당정협의.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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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와이에스(YS) 시절의 흑역사 한 자락. 문민정부의 기치를 높이 들고 출발한 김영삼 대통령은 정권 초기부터 금융실명제 실시, 하나회 척결, ‘역사 바로 세우기’ 등 개혁 조치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국민들은 환호했고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당연히 청와대에 근무하던 사람들의 사기도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그러던 중 1993년 7월9월 청와대 민정비서실은 국세청, 서울시청, 서울경찰청을 동원해서 유흥업소에 출입하는 ‘오렌지족’ 단속에 나선다. 보도에 따르면 “철저한 보안 유지와 엄정한 단속을 위해 행선지와 단속 목적을 알리지 않은 채 저녁 8시50분 서울경찰청 앞에 합동단속반 90여명을 모아 4대의 미니버스에 분승시킨 뒤 비서실 관계자가 1명씩 차에 타 직접 인솔, 지휘했다. 경찰은 권총은 물론 M16 소총으로 무장했고 마약감식장비를 휴대했는데 단속반은 물론 경찰 수뇌부까지 현장 도착 때까지 전혀 ‘작전’ 목적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합동단속반이 도착한 목적지는 당시 가장 인기 있던 강남의 나이트클럽 두 곳, ‘지프 나이트클럽’과 ‘사가 나이트클럽’이었다. M16까지 든 경찰이 들이닥쳤으니 손님들은 혼비백산할 수밖에. 단속반원들은 미성년자들을 포함한 손님들 130명을 연행했고 전원 마약복용 검사를 실시했다. 24명이 양성반응을 보였다. 고개를 숙인 채 줄줄이 끌려 나가던 젊은이들의 사진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YS 시절, 왜 엉터리 마약검사 결과 나왔을까
주요 일간지 전부가 1면이나 사회면 톱으로 이 단속을 다뤘다. 나이트클럽 두 곳에서 무작위 단속을 실시했는데 수십명의 마약 복용자가 적발되었으니 도대체 대한민국의 퇴폐풍조가 어디까지 이른 것인가. 언론은 일제히 사치, 향락을 일삼는 젊은이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기사 내용을 보면 단속 현장에는 “야한 옷차림의 오렌지족이 각각 150여명, 400여명씩 가득 테이블을 채운 채 양주를 마시며 낯 뜨거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고, “무스 머리 반바지의 남자, 짧은 치마와 등이 드러나는 윗도리 차림의 여자가 뒤섞인 이들은 테이블 기본 입장료 12만원을 내고 30만~50만원짜리 양주를 주문해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머리에 무스를 바르거나 반바지, 짧은 치마를 입은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중 수십명이 마약을 했다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마약 검사를 할 때 영장을 발부받았거나 혹은 당사자들의 동의를 얻었느냐고 따지는 보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국민들은 ‘부유 고위층 자녀들’의 범죄와 부도덕에 철퇴를 내려친 청와대의 조처에 찬사를 보냈다.
반전이 일어난 것은 그다음 날. 단속 현장에서 마약 복용 양성반응을 보인 24명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정밀검사를 실시했는데, 모두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죄도 없는 사람들을 잡아둘 수는 없는 법. 결국 경찰은 당시 20살이었던 이아무개씨 등 24명 전원에 대해 부모를 소환, 신원보증을 받은 뒤 귀가 조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미성년자도 아닌데 왜 부모를 불렀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 사건이 궁금했다. 마약 검사는 임신테스트기와 비슷한 모양의 기구를 이용해서 소변 검사를 하는 방법으로 실시한다. 단순한 방식이라 오류가 생길 위험이 낮고 정확도는 99% 이상이다. 다만 체내에 있는 마약 성분은 2주일 정도가 지나면 사라지기 때문에 그 기간 이후에는 모발 검사를 해야 한다. 머리카락에는 6개월간 마약 성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실제로 마약을 했는데도 시간이 지나서 소변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는 경우는 있을 수 있어도 마약을 복용하지도 않았는데 양성으로 나오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검사 시절 마약 수사를 꽤 하면서도 검사 결과가 잘못된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는데 한두명도 아니고 수십명이 마약을 하지도 않았는데 양성반응이 나왔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몇년이 지난 뒤 우연히 당시 청와대에서 이 ‘작전’을 주도했던 분과 만나서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경찰관으로서 청와대에 파견 근무를 했던 그는 일선 경찰서 서장이 되어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엉망진창인 마약 검사 결과가 나왔느냐고 물었다. 그분의 대답은 “나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양성반응을 확인했다고 보고를 받았는데, 마약 사범 수십명을 잡았다고 여기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는데, 어떻게 다음날 다 뒤집혔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했다.
공무원 생활과 정치인 생활을 해본 지금은 그 이유가 짐작이 간다. 청와대가 직접 단속에 나섰기 때문이다. 군사작전처럼 목적지를 비밀로 했다지만 민정비서실은 현장 사진을 수없이 찍어서 언론사에 제공했을 것이다. 아니라면 기사에 첨부된 사진이 설명이 안 된다. 다음날 사회면 톱을 미리 잡아놓았을 수도 있다. 당연히 대통령에게도 사전 보고를 했을 것이다. 언론에 알리고 국세청과 경찰 그리고 서울시까지 동원해서 퇴폐 오렌지족을 쳤는데 마약 사범 한명도 없이 빈손으로 돌아오는 망신을 당할 수는 없다. 졸지에 M16을 들고 나이트클럽에 출동한 경찰들은 청와대가 주도한 단속에 실적을 올려줘야 한다는 엄청난 부담과 스트레스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압력 속에서 가짜 마약 양성반응자 24명이 탄생한 것이다.
세월이 흘렀다. 세상이 바뀌었고 청와대도 변했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대통령 비서실에서 이런 정도의 어처구니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민간인들이 출입하는 나이트클럽을 단속하는 일에 청와대가 관여하지 않는다. (수사권이 없는 청와대 민정비서실이 직접 단속에 나서는 것은 완전한 불법이다. 마약을 했는지 보겠다고 영장도 없이 손님 수백명을 상대로 소변 검사를 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 같으면 최소한 민간인 사찰 시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직접 나서서 어떤 일을 할 때 결과가 왜곡될 위험성은 여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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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과 청와대·정부가 모든 문제를 사전에 의논하고 의견을 통일할 수는 없다. 특히 인사 문제는 성격상 보안이 요구되기 때문에 후보자가 결정된 뒤에야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지난 4월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당시 이 후보자에 대해 여당 안에서도 찬반 논란이 일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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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문제는 여당이 나서야
강력한 대통령제 헌법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여당 정치인은 청와대와의 관계 설정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헌법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이 입법부의 구성원이라는 면을 생각하면 대통령이 하는 일에 대해서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정부와 공동운명체로서 함께 국정을 책임진 집권세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야당에 소속된 의원과 입장이 같을 수는 없다. 교과서적으로 얘기한다면 자유로운 토론과 논박을 통해서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정부와 여당 사이에 이견이 드러나면 그 자체가 불안의 요인이 된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결정된 사항에 신뢰를 갖기 어렵다. 인터넷상에서 활동하는 적극적 지지자들이 많아진 요즘에는 청와대에서 추진하는 주요 정책을 반대하면 문자폭탄이나 댓글 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꼭 그런 이유에서는 아니지만 때로는 다른 의견이 있어도 접어야 할 때가 있다. 중요한 정책을 시행하기 전에 당·정·청이 함께 참석하는 회의를 열고 미리 이견을 조정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사전에 의논하고 의견을 통일할 수는 없다. 정책에 따라서는 정부가 발표 전에 여당 의원들과 폭넓게 공유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특히 인사 문제는 성격상 보안이 요구되기 때문에 후보자가 결정된 뒤에야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리 알았다고 하더라도 소신과 달라서 도저히 동의를 할 수 없는 때도 있다. 이런 경우에 여당 정치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실마리는 앞서 얘기한 와이에스 시절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청와대에서 결정해서 추진하는 일에 반대를 하거나 이견을 제시하는 관료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무리를 해서라도 성과를 만들어내고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하는 것이 보통이다. 직접 청와대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비서실이나 정책실에는 대통령과 ‘철학을 공유하는’ 분들이 일한다. 충성심도 대단하다. 사실 대통령이 원활하게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런 분들이 필요하다. 막강한 권한에도 불구하고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들에 대해서는 인사청문회도 하지 않고 대통령에게 전적인 인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 뛰어난 비서진이라고 하더라도 때로는 실수를 한다. 그럴 때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라도 고언을 해야 하는 것은 여당 정치인의 몫이다. 야당의 비판은 정쟁으로 치부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중요한 순간에는 집권당이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구실을 해야 한다. 아무도 그런 일에 나서지 않고 청와대가 원하는 발언만을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박근혜 정부가 충분히 보여줬다. 솔직히 그 시절 장관이나 여당 중진 정치인들을 보면 개인적인 능력에 상관없이 영혼이 없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전 인사청문회 대상이 되는 고위 공직 후보자 한명의 적격 여부를 놓고 청와대에서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분과 격론을 벌인 일이 있다. 전문성과 도덕성 미달을 지적하는 내 말에 반박을 하면서 그분은 못내 섭섭한 눈치가 역력했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후보자의 낙마는 그 자체로 정치적 타격이 되는데 여당 의원이 청와대의 판단을 믿고 지지해줬으면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격이 부족한 공직자가 임명을 받게 되면 우리 정부에 더 큰 피해가 온다. 어느 정부에서나 인사 문제에 흠이 없을 수 없는데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길이라는 생각에서 굽히지 않고 논쟁을 벌였다.
나의 판단이 맞았는지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분의 판단이 맞았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결국 임명된 그 공직자가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하는지 보고 나서야 최종적인 결론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문제가 있다고 보일 때 가감 없이 반론을 제기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인터넷에서 여당 의원은 무조건 청와대가 추진하는 정책이나 인사에 찬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접하게 되는데 받아들이기 어렵다. 청와대가 주도한 단속에서 엉터리 마약 양성반응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그런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성공에 도움이 된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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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 국회의원(서울 강서갑).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대변인을 지냈다. 검사 시절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한겨레>에 연재하다가 ‘윗선’의 반대로 좌절한 경험이 있다. 천직으로 여겼던 검사도 그만둬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할 말은 하고 산다”가 인생의 모토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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