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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30 20:09 수정 : 2019.05.01 00:19

뉴스분석
선거제·공수처·수사권조정 법안
패스트트랙 올라 330일이내 처리

한국당, 투쟁 통해 결집했지만
명분 없어 합리적 보수 등돌려
“장내 들어와 협상테이블 앉아야”

패스트트랙 지정, 악수하는 이상민 위원장과 표창원 의원. 연합뉴스
대한민국 정치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이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끌어내는 새로운 통로가 될 수 있을까?

국회선진화법에서 국회의장이 교섭단체와 합의 없이 법안을 본회의에 부의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다수의 횡포’를 막기 위한 장치다. 반면에 패스트트랙 지정은 ‘소수의 횡포’를 막기 위한 장치다. 지극히 정상적인 입법 절차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 이후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린 사례는 2016년 12월 ‘사회적 참사 특별법’, 2018년 12월 ‘유치원 3법’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사회적 참사 특별법’은 2017년 1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패스트트랙을 놓고 ‘1여 3야’와 자유한국당이 격렬하게 충돌한 것은 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 등 패스트트랙의 내용물이 워낙 민감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번 패스트트랙 지정의 의미가 작지 않다. 국회는 1988년 선거법 개정 이후 국민의 표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던 낡은 틀을 바꾸는 여정을 시작했다. 또 언제나 개혁 과제 1순위로 꼽혔던 ‘검찰 및 권력기관 개혁’의 첫 단추도 끼웠다. 패스트트랙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이번 패스트트랙 지정 논의의 시작과 충돌 과정, 그리고 결과에 이르기까지 전말을 긴 호흡으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패스트트랙이 ‘대화와 타협의 통로’가 될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생존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처지에 몰려 있었다. 지난 연말 손학규, 이정미 대표의 단식이 이런 처지를 상징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법 개정에 다소 미온적이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의석을 손해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고 자유한국당 지지도가 더불어민주당을 추격하면서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에 가장 필요한 것은 가시적인 국정개혁 성과였다.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검찰 개혁이었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 개혁의 핵심 과제였다. 양쪽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1여 3야’의 ‘빅딜’이 성사됐다.

4월29일 오후 선거제도 개혁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장 앞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선거제도 개혁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지정되자 허탈한 표정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자유한국당은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든 개헌이든 뭔가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궁박한 처지였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개헌이 포함된 5당 원내대표 합의문에 서명한 배경이다.

그러나 2월27일 황교안 대표 체제 출범으로 정당 지지도가 상승세를 타면서 소선거구제 중심의 현행 선거제도를 사수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 자유한국당 의원들 입에서 “현 선거제도로 치르면 내년 총선은 반드시 이긴다”는 말이 공공연히 흘러나왔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은 자유한국당이 처음부터 완강하게 반대했다. 양보할 수 없는 보수의 기본 가치에 관한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결국 자유한국당으로서는 이해관계와 보수의 가치 투쟁 두 가지 차원에서 ‘1여 3야’의 패스트트랙 빅딜안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1여 3야’와의 전면 투쟁은 오히려 자유한국당에 정치적 호재로 작용했다.

첫째, 전당대회 이후 당내 갈등 요인을 완전히 차단했다. 둘째, 다른 야당을 ‘여당의 2중대, 3중대’로 몰아 자유한국당의 선명성을 부각했다. 셋째, 태극기 부대를 흡수해 정치 지형을 2017년 대선 이전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당장 입에 맞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이 나빠진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자유한국당 해산을 요구하는 청원이 100만을 넘어섰다. 국민 사이에 자유한국당에 대한 거부감이 그만큼 두터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합리적 보수나 중도 보수를 흡수할 수 있을까? 정권을 잡을 수 있을까?

불법행위에 대한 대가도 치러야 한다. 국회 의안과 사무실을 점거하고 회의장을 물리적으로 막은 자유한국당의 행동은 명분도 없고 설명도 되지 않는다. 당 지도부의 전략전술 부재와 통제력 상실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당장 정국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여야 모두 분노한 지지층을 제어할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황교안 대표는 정치적 경험도 식견도 부족하다. 어떻게 할까?

자유한국당은 의원직 총사퇴를 하지 않을 것이다. 전면적인 장외투쟁도 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대화를 하게 될 것이다. 패스트트랙이 대화를 강제하는 효과를 지녔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화를 하기 싫어도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현실 정치에 일가견이 있는 강원택 서울대 교수에게 여야에 대한 충고를 들어봤다.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당분간 냉각기가 필요하겠지만, 집권당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정 최고지도자로서 여야가 입은 깊은 상처를 어루만져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충분히 의사 표현을 했고 지지층도 이 정도면 결집했다. 선거는 1년이나 남았다. 제도권 밖에서 투쟁할 것이 아니라 장내에서 과제를 제시하면서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해야 한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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