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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10 21:09 수정 : 2019.03.11 09:18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0일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경원, 의원 수 30석 감축안 발표
지역구 의석으로만 채우자는 개편안
5당 ‘선거제 개혁→개헌’ 합의 뒤집고
“내각제 안되면 연동형 비례 찬성 못해”
선거제 개혁 논의에 역주행 예고
민주·바른미래·정의당 “개혁 훼방안”
한국당, ‘선거제 합의’ 끝내 걷어차…
힘 받는 ‘패스트트랙’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0일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이 10일 현행 300석인 국회의원 정수를 270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없애는 내용의 선거제도 개편안을 내놨다. 또 의원내각제 개헌이 선행되지 않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방식) 도입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여야 5당 원내대표의 선거제 개편 합의를 파기한 것을 넘어, 정치권이 어렵사리 진전시킨 선거제 개혁 논의에 역주행을 예고한 것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0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내 손으로 뽑을 수 ‘없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폐지하는 것을 전세계 선진국들이 시행하고 있다”며 “내 손으로 뽑을 수 ‘있는’ 국회의원 수를 조정해서 10% 줄이는 270석을 제안하는 것이 우리의 (선거제도 개편)안”이라고 밝혔다. 현행 비례대표 의석(47석)을 없애는 방식으로 전체 의석수를 줄이고, 국회의원은 전부 지역구 의석으로 채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특히 “대통령 분권을 위한 내각제 개헌이 아니고선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선거제 개혁 논의에 앞서 ‘대통령제→의원내각제’로 개헌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제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윗도리는 한복, 아랫도리는 양복을 입는 격”이라고도 했다.

자유한국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모두 없애고 이를 지역구 의석으로 채우겠다는 발상은 지금껏 이어온 선거제 개혁 논의를 퇴행시키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지역구에서 최다 득표자 한명이 당선되는 현행 소선거구제는 ‘사표’를 양산하고 거대 정당이 과다 대표되는 고질적인 문제가 지적돼왔다. 또 소수정당의 국회 진입이 어려워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비례대표 의원 수를 확대하면서,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자유한국당의 비례대표 폐지 주장은 정치권 안팎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던 이런 선거제 개혁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리고, 나아가 현행 선거제를 ‘개악’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의원내각제 개헌’을 선거제 개혁의 선행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지난해 12월15일 나 원내대표를 포함한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서명한 합의 내용에도 어긋난다. 당시 합의문 문구는 “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 개정과 동시에 곧바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 논의를 시작한다”였다. 그러나 나 원내대표는 이날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의원내각제 요소를 도입해놓고 내각제 개헌을 하지 않으면 극심한 정치적 혼란이 있을 수 있다”며 선거제 개혁보다 개헌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권력의 무게중심을 대통령에서 의회로 옮기는 내각제는 국회에 대한 불신만큼이나 국민들의 거부감이 큰 게 현실이다. 또 대통령의 권한을 국회에 나누려면, 선거제 개혁을 통해 ‘민심’에 따라 의석수가 배분되는 비례성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왔다. 자유한국당이 이를 뒤집고 ‘내각제 개헌’을 전제조건으로 내건 것이 결국은 선거제 개혁 논의를 저지하려는 ‘꼼수’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자유한국당이 ‘의원 정수 10% 감축, 비례대표제 폐지, 개헌’을 제시한 이날은 여야 4당이 선거제 개혁안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에 앞서 자유한국당에 개편안을 내라고 요구한 최종 시한이었다. ‘형식적으로’ 선거제 개편 대안을 내놓았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 자유한국당은 이제 여야 4당의 선거제 개혁 패스트트랙에 강하게 반발할 태세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정의당은 자유한국당을 강하게 비판하며 패스트트랙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강병원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자유한국당이 선거제 개편안이랍시고 훼방안을 들고나왔다”고 말했고, 김수민 바른미래당 원내대변인은 “바른미래당은 자유한국당의 선거제 제안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패스트트랙을 위한 협의를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은 “정치개혁을 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거들떠보지 않고 정치불신을 부추기는 반정치 당론은 자유한국당의 수준을 드러낸 것”이라며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합법적 수단인 패스트트랙을 지체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안에서도 여야 합의를 뒤집은 원내지도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의원은 “이렇게 뒤집을 거면 지난해 12월에 나 원내대표가 합의안에 서명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김태규 정유경 기자 dokbul@hani.co.kr

[관련 영상] 한겨레TV 정치 논평 프로그램 ‘더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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