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28 10:57
수정 : 2019.12.2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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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맨 왼쪽)가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2016년 12월에 법원에 낸 손해배상 소송은 일본 정부의 외면으로 그동안 미뤄지다가 이날 첫 심리에 들어갔다. s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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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피해자 빠진 ‘위안부 합의’ 4년
국내서 일본 정부 상대 첫 소송 시작
일본은 ‘국가면제’ 내세워 재판 외면
변호인 “반인권범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 깨는 새 사례 만들 것”
‘2015 합의’ 뒤 일본쪽 왜곡 지속
국제적으로 껄끄러운 단어 ‘성노예’
사용 금지에 합의했다고 거짓 주장
일 우익, 소녀상을 혐한 대상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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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맨 왼쪽)가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2016년 12월에 법원에 낸 손해배상 소송은 일본 정부의 외면으로 그동안 미뤄지다가 이날 첫 심리에 들어갔다. s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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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철저하게 배제한 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선언(2015년 12월28일)한 지 4년이 지났다. 어설픈 합의문은 피해자들의 반발과 여론의 거센 비판에 따라 사실상 사문화됐다. 위안부 합의로 만들어진 화해·치유재단도 지난 7월 해산됐다. 위안부 합의 이후 지난 4년 동안 한·일 양국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본다.
2015년 12월28일 오후 3시30분 서울 세종로에 있는 외교부.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밝혔다. 발표는 약 16분 걸렸고, 질의응답은 없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뒤 24년 동안 이어진 투쟁은 일본의 법적 책임도 없이, 피해자들의 동의도 없이 합의란 이름으로 발표됐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20명, 모두 85살 이상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원한 건 그때도 지금도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후손들의 평화다. 피해자들이 빠진 ‘12·28 위안부 합의’ 뒤, 한-일 외교에선 위안부 문제가 사실상 사라졌다. 이런 가운데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의 죄를 묻기 위해 소송에 나섰고, 일본의 혐한과 왜곡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죄를 다시 묻다, 피고석 빈 채로 소송 시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유족 21명이 2016년 12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지난 11월13일 시작됐다. 3년 만이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법원 소장 접수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재판을 지연시켰는데, 한국 법원이 올해 5월 법원 게시판에 공지하는 공시송달을 통해 일본에 서류가 도달한 것으로 간주해 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일본 정부가 앉아야 할 피고석은 텅 비어 있었다.
80살이 넘은 고령의 피해자들이 재판 시작에만 3년이 걸렸는데도 소송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위안부 합의’ 탓이 크다. 이들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일본에 반인륜적 불법행위의 책임을 묻지 않는 등 ‘정치적 야합’에 불과하다”고 봤다. 피해자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일본 정부에 직접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92살의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법정에서 “일본에 죄가 있다. 현명한 재판장이 잘 살펴달라”고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한국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한 소송은 처음이다. 이번 소송의 큰 쟁점 중 하나는 재판이 성립하는지 여부다. 피고가 일본 정부인 만큼, 배상을 따지기 전에 일본의 국가면제(주권면제)가 인정되는지 판단이 필요하다. 국가면제란 한 국가의 공권력 행사는 다른 국가의 재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관습법이다. 일본 정부는 이 조항을 들어 “한국의 재판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 소송은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판에도 참여하지 않을 방침이다. 첫 재판에서 유석동 부장판사도 “국가면제라는 큰 장벽이 있다”며 “설득력 있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국제법이 불멸의 원칙은 아니다”라며 “위안부 피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사적인 반인권범죄다. 이탈리아(상자기사 참조)에 이어 국가면제에 균열을 만드는 또다른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 재판은 내년 2월5일이다.
노골적인 ‘위안부 합의’ 왜곡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에 반하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은 2015년 12월 일-한 합의 때 한국 쪽도 확인했으며 동 합의에서도 일절 사용되지 않았다.” 일본 외무성이 펴낸 2019년 <외교청서>의 ‘위안부 문제’ 항목에 있는 내용이다. <외교청서>는 우리의 <외교백서>와 같은 성격으로 해당 국가의 외교정책을 국내외적으로 알리는 공식 문서다. 일본 외교청서만 보면, 위안부가 성노예가 아니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한국 정부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실 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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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발간한 공식 책자인 2019년 <외교청서>에는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에 반하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은 2015년 12월 일-한 합의 때 한국 쪽도 확인했으며 동 합의에서도 일절 사용되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한국 외교부가 왜곡이라며 일본 외무성에 항의했다. <외교청서>의 관련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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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그동안 ‘성노예’라는 표현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성노예’는 1996년 유엔보고서에 등장한 이후 국제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용어다. 당시 유엔보고서에는 일본군 위안부를 성노예로 규정하고 일본 정부는 피해자에게 사죄·배상하라고 권고했다. 2015년 위안부 합의 당시에도 일본은 ‘성노예’라는 표현에 집착했다. 비공개 합의에서 일본은 한국 쪽에 성노예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성노예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인 점 등을 이유로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정부가 사용하는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뿐이라고 확인해줬다”고 한다. 일본에 자의적 해석을 할 명분을 주긴 했지만, ‘성노예’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합의한 것은 아니다. 한국 외교부가 왜곡이라며 일본 외무성에 항의를 했지만 아직까지 수정되지 않고 있다.
일본 외무성과 주한일본대사관 누리집에도 사실과 다른 내용이 올라와 있다. 역사문제만 따로 정리한 ‘묻고 답하기’(Q&A) 항목에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2015년 12월28일 합의 뒤 현재 일·한 양국 정부는 위안부 합의 실시에 노력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1월 “박근혜 정부 당시 합의는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고 공식 발표했고, 합의의 핵심인 화해·치유재단도 지난 7월 해산됐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합의 사항을 이행할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했는데도,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왜곡된 내용을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
혐한의 대상 ‘평화의 소녀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혐한도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10월27일 일본 나고야에 있는 공공시설 ‘윌 아이치’에서는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의 전직 회장이 이끄는 정치단체가 ‘혐한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 영상이 담긴 유튜브를 보면,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혐한이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직수입 기생’이란 제목의 그림에는 ‘소녀상’을 빗댄 여성이 그려져 있고 ‘날조된 종군 위안부’ ‘매춘’ 등이 언급돼 있다. 소녀상에 대한 모욕과 조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의 넷우익 인사인 사쿠라이 마코토는 흰색 저고리, 검은 치마, 검정 고깔모자 등 ‘소녀상’을 희화화한 모습을 하고 사람들과 사진을 찍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이 행사를 두고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발언)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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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27일 일본 나고야에 있는 공공시설 ‘윌 아이치’에서 일본의 넷우익 인사인 사쿠라이 마코토는 흰색 저고리, 검은 치마, 검정 고깔모자 등 ‘소녀상’을 희화화한 모습을 하고 사람들과 사진을 찍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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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27일 일본 나고야에 있는 공공시설 ‘윌 아이치’에 전시된 ‘직수입 기생’이란 제목의 그림에는 ‘소녀상’을 빗댄 여성이 그려져 있고 설명란에 ‘날조된 종군 위안부’ ‘매춘’ 등이 언급돼 있다. ‘소녀상’에 대한 혐한이 심각한 수준이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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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에 대한 혐오는 극우단체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캐릭터 디자인을 한 애니메이터 사다모토 요시유키는 지난 8월 자신의 트위터에 “더러운 소녀상, 천황의 사진을 불태운 후 발로 밟는 영화” “(소녀상은) 조형물로 매력이 없고, 지저분하다고 느꼈다”고 적었다. 사다모토의 발언은 일본계 미국인인 미키 데자키 감독이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주전장>과 일본 나고야의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을 겨냥한 것이다. 사다모토의 표현은 일본 안에서도 “선을 넘었다”는 반응이 나왔다.
지난 8월초 나고야 국제예술제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이 테러 예고 등 협박 전화와 메일이 빗발쳐 전시를 시작한 지 사흘 만에 중단된 것도 ‘혐한’과 관련이 있다. 협박 팩스를 보내 경찰에 체포된 용의자는 수년 전부터 한국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반복했다고 한다. 최근 출간된 <혐한의 계보>라는 책을 보면,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피해 증언이 있은 뒤 일본 최대 유력 종합월간지인 <문예춘추>(1992년 3월호)가 특집대담 기사를 실었고, 이를 통해 혐한 담론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혐한의 계보> 저자인 노윤선씨는 “혐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해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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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2015년 12월28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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