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0.30 21:08 수정 : 2019.10.31 08:01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한 초등학생이 쓴 편지를 들으며 눈물을 닦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 판결 1년
한-일 간극 크지만 1+1 제안 토대
변형된 아이디어 물밑에서 검토돼
일본도 ‘경협 기금’ 띄워 반응 살펴
연말 일 기업 자산 매각 중대 고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한 초등학생이 쓴 편지를 들으며 눈물을 닦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95살 고령의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는 30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이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연 기자회견 장에 나와 앉아 있었다.

1년 전 10월30일 한국 대법원은 일본제철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놓았다. 1년이 지났지만 배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개입으로 일본 기업들은 배상에 응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본의 보복성 수출 규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이어지며 한-일 관계는 역사, 경제, 안보가 뒤얽힌 갈등의 골짜기에 빠져 있다.

“할아버지가 뉴스에서 우리한테 미안하다고 했지만 할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강제징용(강제동원)을 한 일본이 잘못이에요. 나라와 나라끼리 사과를 한 것이지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지요. 그러니 울지 마시고 고맙다는 말도 하지 마세요. 건강하시고 기운 좀 내세요. 알겠죠?” 인천의 한 초등학생이 보낸 편지가 낭독되자, 이 할아버지는 계속 벌겋게 변해버린 눈가를 훔쳤다.

피해자들이 판결에 따른 위자료를 받고 복잡하게 얽힌 한-일 관계도 개선할 실마리는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을 이행할 방안에 대한 한·일 양쪽의 접점을 만들어내는 데서 찾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 존중’ 원칙을 지켜야 하고,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두 해결됐으니 일본 기업에 피해가 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완강하다. 지난 6월 한국이 ‘1+1’(한·일 기업의 자발적 기금 조성) 안을 제안하고 일본은 즉각 거부했지만, 최근 한-일 간에는 ‘1+1’ 제안을 변형한 여러 아이디어가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일본의 사과를 전제로 한국 쪽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지급’ △‘한국이 위자료를 지급한 뒤 일본 기업에 구상권 청구’ △일본 기업이 위자료를 지급한 뒤 한국이 보전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원고들에 대해 한·일 기업이 위자료를 지급하고, 재판 중이거나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피해자들에게 한국 쪽이 대안 마련 등의 아이디어가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이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 취지와 거리가 있거나 구상권 청구에 대한 법적 논란의 소지 등이 지적되고, 일본 쪽이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어, 한-일 간에 구체적인 제안과 논의로 진전된 단계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28일에는 한국 정부와 기업이 경제 협력 명목의 기금을 창설하고 일본 기업이 참가하는 방안의 초안을 일본 정부가 마련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강제동원 문제는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경제 협력’을 명목으로 한국 대법원 판결의 ‘배상’ 성격을 약화하려는 안을 공개하며, 한국 쪽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11월23일에는 지소미아가 정식 종료되고, 연말 무렵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압류한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매각)에 나설 예정이어서, 한-일 관계는 또다시 고비를 맞는다. 일본 기업들이 배상을 거부하자 피해자들은 자산 매각 절차를 진행해왔다. 이춘식 할아버지가 원고로 있는 일본제철 사건에서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일본제철의 피엔알(PNR) 주식 19만4794주(7억6500만원 상당)를 압류했다. 지난 7월에는 이 압류에 근거한 매각명령을 진행하기 위해 심문서를 송달했으나 현재까지 별다른 답을 받지 못했다. 대구지법 관계자는 “심문서는 일본 외무성에 이미 도착했지만 일본 내 송달 현황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3∼4개월이 지나 심문서가 반송된다면 (매각) 방어권을 포기한 걸로 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현금화로 일본 기업 자산의 손실이 일어나면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보복 조처를 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양국 관계가 더욱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있다. 하지만 한국이 시간에 쫓겨 서두른 미봉책으로 타협하기보다는 원칙을 지키며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대법원 판결 존중, 피해자 실질 구제, 한-일 관계 미래를 고려한 강제동원 해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한-일 간 간극은 여전히 크고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해법을 만들지 않으면 부작용이 더욱 클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희 장예지 기자, 도쿄/조기원 특파원 minggu@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