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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14 09:37 수정 : 2019.07.14 10:26

[토요판] 인터뷰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의 한일관계 해법
“일본 자산 매각조처도 안 됐는데
경제보복은 뒤에서 비수 꽂은 것
한국 때리기로 보수우파 결집 노려”

“협상 위해서는 더 진전된 안 필요
한미 안보협력 위해 미국 중재해야”

“과거사 일차 책임은 일본이지만
우리도 의식 전환해야 문제 풀려
‘제2 파트너십’등 과감한 발상을”

“과거사 문제는 한일관계이기도 하지만 절반은 국내문제다. 우리 정부가 풀어야 할 부분도 많다.” 양기호 성공회대학교 교수가 지난 10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악화하고 있는 한일관계 해법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강제 징용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 판결로 촉발된 한일관계의 갈등이 일본의 갑작스러운 경제 보복 조처로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하고 있다. 일본은 추가 조처를 만지작거리고 있고, 양국 간에는 가시 돋친 설전만 오가고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를 지난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갈등의 원인과 해법을 들어봤다.

“과거사 문제는 가해자인 일본 쪽에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우리도 의식 전환을 해야 한다.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현재와 미래로 나가겠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고는 한일 간의 문제는 안 풀린다. 지금의 경색국면을 완전히 뛰어넘을 수 있는 과감하고 대담한 제안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양기호(58) 성공회대 교수(일본학과)는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 등 일본의 행태에 대해서는 “뒤에서 비수를 꽂는 행위”라고 단호하게 비판했지만, 한일관계를 푸는 해법에 대해서는 우리 쪽의 변화를 촉구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등 과거 진보정권의 실용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도 했다.

양 교수는 한국정치학회 한일교류위원장·일본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한 일본 및 한일관계 전문가이다.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 자문기구인 동북아시대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문재인 정부 출범 초 ‘위안부 티에프(TF)’ 위원에 이어 현재는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으로 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제 식민지 때 강제 징용 당한 노동자들에 대한 배상금 문제로 일본이 사실상의 경제보복 조처를 하고 있는데.

“이건 일종의 진주만 공습이며, 뒤에서 비수를 꽂는 행위다. 우리 대법원에서 일본 기업에 대해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아직은 일본 기업이 손해난 것이 하나도 없다. 일본 기업에 대한 자산 압류는 사법적인 절차 때문에 내년 1월로 미뤄진 상태다. 대법원 판결로 일본이 걱정하는 것은 알겠는데 걱정을 하게 했다는 것만 가지고 이렇게 보복성 수출 규제를 하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비도덕적이다.”

수상 관저가 한국 때리기 주도

―일본이 왜 저렇게 무리하게 나온다고 보나.

“직접적인 원인은 그들이 느끼는 ‘역사 피로’다. 즉,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식민지 문제가 다 끝났는데 한국에서 위안부나 강제 징용 문제 등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징용문제는 특히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지난해 10월에 나온 뒤 여러 채널로 수없이 우리 정부한테 대책을 세워달라고 요청했음에도 한국이 여기에 응하지 않았다는 데 대한 불만이 있다. 그런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일본의 국내 정치적인 측면도 있지 않나.

“분명히 포퓰리즘이 작용하고 있다. 한국 때리기를 통해서 보수우파를 결집하려는 거다. 지난해 12월의 초계기 사건(동해상에서 북한 어선 구조를 하던 우리나라 광개토대왕함에 일본 해상자위대의 대잠 초계기가 초근접 비행을 했고, 이때 초계기를 향해 우리 쪽이 사격 통제용 레이더를 쐈다는 주장)만 해도 그렇다. 한국 함정이 일본 초계기를 위협한 게 아니라 서로 오해가 있었을 뿐이었다. 양국 실무자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데도 굳이 문제를 키웠다. 수상 관저가 주도한 기획 작품이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한국 때리기를 준비해왔고, 극적으로 나타난 게 이번 수출 규제다. 일본의 이번 행동이 너무 비상식적이어서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즉, 오는 10월쯤 한국경제에 타격이 나타나게 해서 내년 총선 때 보수정당이 과반을 획득하게 하고, 나아가 대선까지 노리는 계획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다목적적인 이유가 있다면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지 않겠나.

“앞으로 일본이 추가 조처를 감행할 가능성이 있고, 사태가 오래 갈 수 있다.”

지난달 19일 우리 정부는 강제 징용 배상문제와 관련해 일본 쪽에 해당 일본 기업뿐 아니라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수혜를 본 한국 기업이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일본 기업에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온 지 7개월 만의 대책이었지만, 일본 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라며 즉각 거부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일본은 우리 정부에게 대법원 판결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지 않았나. 그런데 지난달 우리 정부가 제시한 방안은 왜 거부했나.

“우리 대응이 늦은 측면이 있다. 일본 요구에 무대응하다가 지난 5월 이낙연 총리 발언을 통해 낸 첫 반응이 정부가 나서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일본에서 굉장히 반발했다. 그 한 달 뒤에 정부 방안이 나왔다. 정부가 내놓은 양국 기업의 공동기금 방안에 대해 일본은 우선 한국 정부가 빠진 점을 문제 삼는 것 같다. 정부가 빠지면 모금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고, 설령 모금되더라도 강제징용 노동자 배상문제가 그것으로 최종 종료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거다. 지금 법원에 계류 중인 강제 징용 피해자만 해도 900여명이며, 보상이 이뤄질 경우에는 강제 징용 피해자와 가족들이 대거 소송에 나설 텐데 그 감당을 할 수 없다고 보는 것 같다.”

강제 징용과 관련해서 노무현 정부는 2007년 국외강제동원피해자지원법을 만들어 사망자는 1인당 2천만원, 생존자는 1년에 80만원의 의료지원금을 지급했다. 당시 이 법에 따라 7만2천명이 금전적 보상을 받았다. 행정안전부 통계로는 일제 강점기에 강제동원 피해자는 약 21만명에 이른다.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지난해 10월30일 승소 판결을 받은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씨가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백색국가 제외’ 일단 막아야

―양국 간에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므로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도 방법 아니냐는 얘기도 있는데.

“국제적인 사법기구의 통제를 받지 않고 한일 양자 간에 해결한다는 게 우리의 기본 입장이다. 누가 이기든 간에 후폭풍이 있을 수밖에 없는 데다가 선례가 되면 독도 문제를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져가자고 할 때 거부할 논리가 옹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인도적인 문제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대부분 90대 중반인데 국제사법재판소 결과가 나오려면 3, 4년은 걸린다. 그동안 상당수 생존자가 돌아가실 수 있다.”

―일본이 주장하는, 청구권 협정에 따른 중재위는 어떤가?

“양자 간에 협상이 끝내 안 되면 중재위로 가야 하며, 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중재위 역시 구성 문제부터 난항에 부딪힐 것이다. 한일 양국 대표 외에 제3국의 중재위원을 누구로 할지, 중재 대상을 어떻게 정할지 등을 놓고 초반부터 깨질 가능성이 있다.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가 힘들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30대 기업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일본에 대해 ‘더는 막다른 길로 가지 않길 바란다’며 외교적 해결을 촉구했는데.

“일본을 외교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려면 일단 우리 정부가 먼저 지난번보다 진전된 새로운 안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 기업들에 해보라고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우리 정부가 적극 나서서 기금을 만들고 일본을 들어오라고 해야 한다. 외교적 협상으로 풀 수밖에 없다. 일본 안에서도 아베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 정도로 한국을 몰아대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중국 쪽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결국 일본이 손해이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지금 강대강으로 맞서더라도 결국 타협할 지점이 있다고 본다. 그러려면 일본 쪽에서 한국을 백색 국가(화이트 리스트·안보상 우방 국가)에서 제외하는 데까지는 가지 말아야 한다. 백색 국가 제외가 확정되면 양국이 타협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미국도 중재에 나서야 한다.”(지난 12일 도쿄에서 열린 양국 실무협의에서 일본은 다음 달 중순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할 방침을 밝혔다.)

―미국은 안 나설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일본이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피해를 주는 수출 규제를 하는 것은 한미 간 안보협력을 손상하는 중대한 일이다. 한국 반도체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 미국 기업인 지엠(GM)과 애플도 차량용 디스플레이나 핸드폰 생산에 타격을 받는 등 미국도 피해를 본다. 따라서 미국이 개입해야 하고, 조만간 개입하리라고 본다.” 정부는 지난 9일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를 긴급 안건으로 상정해 국제사회에 일본의 부당성을 알렸다. 나아가 WTO에 제소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국제 여론전이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과 김희상 외교부 양자경제외교국장을 미국 워싱턴에 급파한 것도 일본을 압박하기 위해서다.

―우리 정부도 강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 같다.

“제가 파악하는 바로는 청와대나 정부의 스탠스가 강경하다. 일본이 저렇게 나오니 지금으로써는 강하게 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과거에는 일본과 관계가 안 좋으면 막후교섭을 주로 했는데, 물밑 대화나 특사를 보내는 것은 어떤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물밑 대화를 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특사나 정상회담은 아직 아니라고 본다. 특사가 가서 상황 설명만 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 특사가 가면 중재위 수용이나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조처에 대한 유감 표명 등을 갖고 가야 할 것이다. 양국 정상도 지금은 만나봤자 성과가 나기 힘들다. 8월이나 9월쯤 돼서 한국 쪽도 본격적 대화가 아쉬워지고, 일본도 여론이 나빠져서 참의원 선거 뒤 정치적 부담이 된다고 판단하면 나설 수밖에 없다. 더구나 미국이 중재에 나서면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정상 간에 좀 더 극적인 게 있으면 좋겠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왼쪽)이 지난해 10월30일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이수훈 당시 주일 한국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 진보정권의 실용외교

―무슨 뜻인가.

“예를 들면 제2의 한일파트너십 같은 거다. 제2의 한일파트너십에 대한 얘기가 작년에 많았다. 한국이 역사문제에 대해 일정한 양보를 하고, 일본은 미래지향적 관계를 한국과 모색해나간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으로 종결지을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거다. 저는 한국이 지금의 경색국면을 완전히 뛰어넘을 수 있는 과감하고 대담한 제안을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일파트너십 선언(1998년)을 하면서 역사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뛰어넘었다. 일본도 그런 점을 높게 평가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과거사 문제의 절반은 한일관계이지만 절반은 국내문제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국내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과거사에 대해 기억하고 추모하고 보상하는 등 종합적으로 컨트롤해야 한다. 거기에는 법률도 있고, 제도와 기구도 있다. 대법원 판결로 운신의 폭이 좁아지긴 했지만, 정부가 나서서 할 부분이 많다. 그런 적극적 노력을 모색하면서 역사문제가 한일 간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역대 진보정권에서는 실용외교를 해서 큰 성과를 거뒀다. 지금도 가능하다고 본다. 과거사 문제는 가해자인 일본 쪽에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우리도 의식 전환을 해야 한다.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현재와 미래로 나가겠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고는 한일 간의 문제는 안 풀린다. 국민의 생각은 그동안 많이 바뀌었는데 진보 정부와 진보 지식인들의 의식은 잘 안 바뀌고 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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