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왼쪽)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애틀랜틱카운슬과 동아시아재단의 전략대화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시진핑 방북 맞춰 ‘대화·제재’ 메시지
북한에 유화적 신호
비건 대북특별대표, 대화 염두
“유연한 접근이 외교 유일한 길…
북 비핵화 관점 이해” 언급 눈길
시진핑 방북엔 “건설적” 기대감
중국에 ‘탈선 말라’ 경고
미 재무부, 제재 대상과 거래한
러시아 금융사 제재 추가 지정
‘북·중 상황 오판 말라’고 견제구
“트럼프, 협상력 높이려고 놔둬”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왼쪽)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애틀랜틱카운슬과 동아시아재단의 전략대화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방북을 시작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전의 새로운 막이 오른 20일 미국 행정부에서는 엇갈린 대북 메시지를 발신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유연한 접근의 필요성” 등을 거론하며 북한에 유화적인 신호를 보낼 때 미 재무부는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도운 혐의로 러시아 금융회사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19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미국 싱크탱크인 애틀랜틱카운슬이 동아시아재단과 연 전략대화 기조연설에서 “(북-미) 양쪽은 유연한 접근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다”며 “이게 외교에서 전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서로에게 분명히 이득이 되는 해법들을 알고 있다. 우리(미국)는 이 문제를 푸는 데 실패했던 지난 25년간의 공식을 넘어서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비핵화에서 의미있고 검증 가능한 조처들을 기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는 그것(비핵화 조처)에 대한 북한 쪽 관점도 이해한다”며 “그것이 가능하지만, 안전보장과 전면적인 관계 개선에 대한 폭넓은 협의라는 맥락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미국이 비핵화 조처뿐 아니라, 북한의 요구도 함께 논의할 수 있음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건 대표는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두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한 모든 약속을 협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그는 북한과 실무협상 재개에 전제 조건이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으나 “모든 걸 논의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교착에 빠진 이래 미국 쪽이 “유연한 접근”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발언은 비건 특별대표가 다음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조기 방한해 북쪽과 실무접촉을 꾀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어서 특히 눈길을 끌었다. 북쪽은 지난 4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정연설부터 미국에 “새로운 계산법”을 주문했으나, 미국 쪽에서는 “점진적 비핵화는 없다”는 강경 메시지로 일관한 터였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북한과의 대화를 염두에 둔 유화적인 메시지”라고 풀이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시 주석의 방북과 관련해서는 앞서 미 국무부와 마찬가지로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다려보자”며 “시 주석이 평양 방문 기간 북한의 비핵화에 건설적이면서도 적절한 메시지를 계속 보낼 것이라는 모든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중의 여러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대북정책에서) 중국은 100% 우리와 동의한다”며 중국의 ‘탈선’을 우회적으로 경계했다.
북-중 정상회담을 둘러싼 미국 내 우려와 대중 경고는 4시간 뒤 나타났다. 시 주석의 방북을 몇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북한이 국제금융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게 해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도왔다는 혐의로 러시아 회사 ‘러시안 파이낸셜 소사이어티’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고 밝힌 것이다.
재무부는 이 회사가 미국의 제재 대상인 ‘단둥중성 인더스트리 앤 트레이드’ 쪽에 은행 계좌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단둥중성은 이미 미국의 제재 목록에 오른 북한의 조선무역은행(FTB)이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거나 운영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제재로 러시안 파이낸셜 소사이어티의 미국 내 자산은 동결됐다. 조성렬 자문연구위원은 “중국이 북한 제재와 관련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세컨더리 보이콧”이라며 “재무부가 (시 주석의 방북과) 타이밍을 맞춰 (중국에) 오판하지 말라는 식으로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미 법무부가 지난달 9일 미국과 유엔의 제재를 위반해 석탄과 중장비를 운송한 혐의로 북한 화물선 와이즈 아니스트호의 압류·몰수 절차 돌입 사실을 발표한 것도 북한이 단거리 발사체를 쏜 직후였다. 미국은 이 발표가 북한의 발사(5월4, 9일)와 관련이 없다고 밝혔으나 시점상 분명한 대북 경고 메시지로 읽혔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미국이 강온 양면전략을 정교하게 전개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재무부 내부의 강경파들이 (대북 제재 문제를) 쥐고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쪽에서는 빅딜을 얘기하고 비건은 다른 얘기를 하며 신호를 어지럽게 보내는데 트럼프 입장에서는 다양한 신호를 보내 협상의 입지가 높아진다고 생각해서 놔두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한겨레 라이브] 뉴스룸톡 | 정세현의 시진핑 방북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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