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외교팀 기자 바야흐로 전직 외교관 백가쟁명 시대다. 신문지상에는 한국 외교에 대한 전직 외교관들의 품평이 넘쳐난다. 기명도 있고 익명도 있다. 익명일수록 말에 날이 서 있다. 단골 메뉴는 이른바 현 정부의 ‘외교 참사’다. 적폐로 몰린 외교부 내 대미·대일 외교 라인이 배제된 탓에 북핵 외교는 길을 잃고, 한-미 동맹은 균열했으며, 한-일 관계는 붕괴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외교부의 잇단 실수와 외교 결례 및 기강 해이 논란도 주요 소재다. 전직 외교관들은 “한-미 공조의 균열이 심화됐다”거나 “한-일 관계는 1965년 이래 최악”이라고 개탄한다. “외교는 밤낮이 없는 건데 ‘워라밸’보단 업무가 먼저 아니겠느냐”고 한 전직 고위 외교관도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대기성 야근과 주말 근무가 업무에 대한 헌신으로 평가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결과, 외교부 직원들의 ‘나사’가 풀렸다는 질타다. 이런 지적들에 일면의 진실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직후 ‘남북 철도 연결과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에 대해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미국 쪽이 불편해했다는 얘기도 있다. 청와대가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날 가능성을 막판까지도 인지하지 못한 점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과거사 문제와 일본 초계기 위협 비행 등이 겹친 한-일 관계 경색도 출구가 안 보인다. 그런데 이런 비판이 공감을 얻으려면 과거의 한국 외교는 훌륭했다는 평가가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정통’임을 자랑하는 북핵·북미통들이 외교부를 들었다 놨다 하던 시절, 북한은 5차례의 핵실험과 수십차례의 미사일 실험을 통해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했다. 당시 한 핵심 당국자는 사석에서 “솔직히 제재가 상황을 바꿀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의 ‘작위’에 대해 이들에게 책임을 지울 생각은 없다. 다만 ‘제재만으로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주장에 경기를 일으키는 이들이 지난 10년간 제재에 ‘올인’하는 동안 북한이 ‘국가 핵무력’을 완성한 것은 팩트다. 과거 정부든 현재 정부든 동맹이자 최강국인 미국과 가급적 마찰을 빚지 않고 호흡을 잘 맞추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무릇 동맹이란 공유하는 가치와 목표에 기반해 의견을 나누고 이견이 있으면 조율하는 사이다. 다른 나라들끼리 어떻게 100% 이해관계가 일치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대미 외교의 목표가 미국의 ‘심기 경호’는 아닐 것이다. 현재의 문제를 부각하려고 지난날은 태평성대였던 것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외교부에서 ‘재팬스쿨’이 잘나가던 시절, 이명박 대통령이 돌연 독도를 방문(2012년 8월)해 일본이 크게 반발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2년8개월 만에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선배들의 잦은 등판을 두고 현직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순수한 나라 걱정만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한 간부급 외교관은 “예전에도 (전직들이) 뒷담화를 했지만 주로 술자리였다. 지금은 언론을 통해 계속 기사화되는 차이가 있는데, 차기(다음 정권에서 기용되는 것)를 노리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한 중견 외교관은 “내가 그분들의 과거를 아는데, 갑자기 어디서 그런 구국의 충정이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심한 불신을 나타내기도 했다. 전직 외교관들의 우국지정이 만개한 근저에는 ‘북핵·북미통이 아닌 여성 상사(강 장관)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전직 외교관들의 비판에는 충정도, 후배들에 대한 질책도 들어 있을 것이다. 다만, 한반도의 운명을 둘러싼 외교라는 중대사를 논하는 데서 개인적 불만, 정치적 동기, 자리 욕심은 걷어내야 그 충정이 빛날 것이다. 과거의 실수 먼저 인정하고 반성하는 기색이라도 비친다면 ‘진정성’도 조금은 받아들여질 것이다.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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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전직 외교관 백가쟁명 시대 / 김지은 |
통일외교팀 기자 바야흐로 전직 외교관 백가쟁명 시대다. 신문지상에는 한국 외교에 대한 전직 외교관들의 품평이 넘쳐난다. 기명도 있고 익명도 있다. 익명일수록 말에 날이 서 있다. 단골 메뉴는 이른바 현 정부의 ‘외교 참사’다. 적폐로 몰린 외교부 내 대미·대일 외교 라인이 배제된 탓에 북핵 외교는 길을 잃고, 한-미 동맹은 균열했으며, 한-일 관계는 붕괴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외교부의 잇단 실수와 외교 결례 및 기강 해이 논란도 주요 소재다. 전직 외교관들은 “한-미 공조의 균열이 심화됐다”거나 “한-일 관계는 1965년 이래 최악”이라고 개탄한다. “외교는 밤낮이 없는 건데 ‘워라밸’보단 업무가 먼저 아니겠느냐”고 한 전직 고위 외교관도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대기성 야근과 주말 근무가 업무에 대한 헌신으로 평가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결과, 외교부 직원들의 ‘나사’가 풀렸다는 질타다. 이런 지적들에 일면의 진실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직후 ‘남북 철도 연결과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에 대해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미국 쪽이 불편해했다는 얘기도 있다. 청와대가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날 가능성을 막판까지도 인지하지 못한 점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과거사 문제와 일본 초계기 위협 비행 등이 겹친 한-일 관계 경색도 출구가 안 보인다. 그런데 이런 비판이 공감을 얻으려면 과거의 한국 외교는 훌륭했다는 평가가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정통’임을 자랑하는 북핵·북미통들이 외교부를 들었다 놨다 하던 시절, 북한은 5차례의 핵실험과 수십차례의 미사일 실험을 통해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했다. 당시 한 핵심 당국자는 사석에서 “솔직히 제재가 상황을 바꿀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의 ‘작위’에 대해 이들에게 책임을 지울 생각은 없다. 다만 ‘제재만으로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주장에 경기를 일으키는 이들이 지난 10년간 제재에 ‘올인’하는 동안 북한이 ‘국가 핵무력’을 완성한 것은 팩트다. 과거 정부든 현재 정부든 동맹이자 최강국인 미국과 가급적 마찰을 빚지 않고 호흡을 잘 맞추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무릇 동맹이란 공유하는 가치와 목표에 기반해 의견을 나누고 이견이 있으면 조율하는 사이다. 다른 나라들끼리 어떻게 100% 이해관계가 일치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대미 외교의 목표가 미국의 ‘심기 경호’는 아닐 것이다. 현재의 문제를 부각하려고 지난날은 태평성대였던 것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외교부에서 ‘재팬스쿨’이 잘나가던 시절, 이명박 대통령이 돌연 독도를 방문(2012년 8월)해 일본이 크게 반발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2년8개월 만에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선배들의 잦은 등판을 두고 현직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순수한 나라 걱정만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한 간부급 외교관은 “예전에도 (전직들이) 뒷담화를 했지만 주로 술자리였다. 지금은 언론을 통해 계속 기사화되는 차이가 있는데, 차기(다음 정권에서 기용되는 것)를 노리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한 중견 외교관은 “내가 그분들의 과거를 아는데, 갑자기 어디서 그런 구국의 충정이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심한 불신을 나타내기도 했다. 전직 외교관들의 우국지정이 만개한 근저에는 ‘북핵·북미통이 아닌 여성 상사(강 장관)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전직 외교관들의 비판에는 충정도, 후배들에 대한 질책도 들어 있을 것이다. 다만, 한반도의 운명을 둘러싼 외교라는 중대사를 논하는 데서 개인적 불만, 정치적 동기, 자리 욕심은 걷어내야 그 충정이 빛날 것이다. 과거의 실수 먼저 인정하고 반성하는 기색이라도 비친다면 ‘진정성’도 조금은 받아들여질 것이다.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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