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31 18:43
수정 : 2019.03.31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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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서울올림픽에 입장하는 중국 선수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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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31일 공개한 1988년 외교문서
“중, 북과 교섭했지만, 북 단호히 거부”
사마란치, 끈질기게 남북회담 중재했으나
비현실성 인지…소련 참가 유도 목적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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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서울올림픽에 입장하는 중국 선수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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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서울올림픽의 남북 분산 개최는 결국 무산됐지만, 논의 과정에서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북이 추진하고 있는 도로·철도·항로 연결, 자유왕래 보장 등 전향적 조처들이 협의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올림픽 선수단을 열차편으로 판문점을 거쳐 보내려고 북한과 교섭했던 것도 처음으로 확인됐다. 외교부는 31일 이런 내용을 포함한 30년 이상 경과 외교문서 1602권(약 25만쪽)을 공개했다.
1988년 8월 파키스탄 주재 한국 대사대리가 타전한 외교문서를 보면 중국 대사관 차석인 사오중추 참사관은 한국 쪽에 주요한 제보를 해왔다. 내용은 중국이 철도편으로 북한과 판문점을 경유해 자국 올림픽 선수단을 서울에 보낼 계획이었다는 것이었다. 사오 참사관은 “(중국이 이 문제로) 북한 쪽과 교섭”했지만 “북쪽이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고 전했다. 북-중 간 구체적 논의 일시나 협의 내용은 확인되지 않지만, 중국이 서울올림픽 참여를 공식 통보한 1988년 1월 중순 이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통보 이틀 전 북한은 올림픽 불참 선언을 한 터여서 중국 선수단의 경유 요청을 거부했을 개연성이 크다. 결국 중국은 서울올림픽에 300명에 가까운 선수단을 항공편을 통해 참가시켰다.
덩샤오핑 당시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그해 6월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을 통해 김일성 주석에게 개인 메시지를 전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문서였는지 구두 메시지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북한도 평화적인 올림픽 개최를 위한 세계적 노력에 동조할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이는 7월17일 미 국무부 관계관이 주미 한국대사관 쪽에 전한 정보다.
북한은 1981년 9월 24회 여름올림픽 개최지로 서울이 선정된 것에 반대해오다가 1985년 7월부터 남북 공동개최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1985~1987년 4차례에 걸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중재하에 진행된 로잔 남북체육회담에서는 서울~평양 간 도로 및 철도 연결과 남포항~인천항 여객 항로 개설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1986년 6월 로잔에서 진행된 3차 회담에서는 남북 양쪽이 자유왕래 방안을 수락하면서 북쪽이 기자·선수 임원·국제경기연맹 등 ‘올림픽 가족’ 2만5000명에게 국경을 개방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국경 개방 기간은 올림픽 대회 2주 전부터 대회 종료 때까지로 정하기도 했다.
다만 이 논의를 중재했던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북한이 국경을 개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들의 서울올림픽 참가를 유도하기 위해 남북회담을 고집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지은 박민희 노지원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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