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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01 21:29 수정 : 2019.02.01 21:29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31일(현지시각)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강연을 위해 걸어 들어오고 있다. 팰로앨토/연합뉴스

비건 특별대표 강연 뜯어보니

트럼프 ‘북 체제 보장’ 의지 명시
다음주 판문점 실무협상 의제로
비핵화-관계정상화 단계 병행 방침
‘선 비핵화’ 탈피 북미 회담 밑돌놓기

비핵화와 함께 다른 것들도 검토
상응조처로 투자·SOC·식량 거론
부분적 제재 완화 가능성 시사

외교 실패 대비 비상대책도 마련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31일(현지시각)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강연을 위해 걸어 들어오고 있다. 팰로앨토/연합뉴스
31일(현지시각) 미국의 대북 실무협상을 이끄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내놓은 메시지는 분명했다. “전쟁을 끝낼 준비가 돼 있다”거나 “북한 정권의 전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며, 과거 미국 지도자들과 달리 북-미가 이어온 70년간의 적대를 끝낼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비핵화-관계정상화의 ‘동시적·병행적’ 이행 방침을 내보였다. 2월 말로 예정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동력을 살리기 위한 밑작업으로 풀이된다.

비건 특별대표는 이날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 월터 쇼런스틴 아시아태평양연구소에서 다음주 초 열릴 것으로 보이는 북-미 실무회담을 앞두고 미국 쪽 구상을 비교적 상세히 드러냈다. 그는 질의응답에서 “(과거 우리 대북 정책은) 당신이 모든 것을 선행하면 우리가 그에 상응해 우리가 무엇을 할지 여부를 생각해보겠다는 식으로 해석됐다”며 “그것은 우리 정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앞선 강연에서도 그는 미국이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동시적이고 병행적인 이행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가 밝힌 ‘동시적·병행적’ 이행 방침은 ‘행동 대 행동’의 미국식 표현으로 보인다. ‘선 비핵화 후 상응조처’를 주장했던 태도에서 물러선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실제 비건 대표는 이날 미국 쪽이 취할 ‘행동’인 대북 상응조처에 대한 언급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만나 북한의 농축 우라늄 시설 폐기에 대한 대가로 미국이 제공할 “상응 조처들”을 논의할 계획이라며 “우리 쪽에서는 북·미 양쪽에 신뢰를 가져다줄 많은 행동을 실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핵화 완료 시점에는 국제 사회의 투자를 동원하고 사회기반시설(SOC)을 개선하며 식량안보를 강화할 가장 좋은 방안을 모색할 준비가 돼 있다고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차례 강조한 ‘밝은 미래’를 말한 것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핵심 상응조처인 ‘제재 해제나 완화’와 관련해 그는 “미국이 비핵화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대북 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했다. 다만 그 말의 행간을 잘 읽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우리는 북한이 모든 것을 하기 전까지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말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분적인 제재 완화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비건 특별대표는 대북 ‘압박’과 ‘외교’를 동시에 추진하는 지금, 둘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며 현시점에서 가능한 상응조처로 문화 교류 및 인적 교류 구상을 꼽았다.

비건 대표는 김혁철 대표와의 첫 실무협상 목표 및 의제도 제시했다. 그는 실무협상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일련의 조처 △협상 과정과 향후 신고 시점 등을 담은 로드맵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가 김 대표를 만나 김 위원장이 약속한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과 풍계리 핵실험장 사찰 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한 점에 비춰볼 때, 이것이 북-미가 가장 초보적인 단계에서 얻어낼 결과물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비건 대표는 김 위원장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점을 강조하며 최종적으로는 영변 이외 시설에 있는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도 폐기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비핵화 프로세스가 완결되기 전에 우리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미사일프로그램의 전체 규모에 대해 완전히 알아야 하며 어느 시점에는 포괄적 신고를 통해 받아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핵심 핵·미사일 시설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접근과 모니터링에 대해 북한과 합의에 도달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핵분열성 물질과 무기, 미사일, 발사대 및 다른 대량살상무기 재고에 대한 제거 및 파괴를 담보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과 풍계리 핵실험장 사찰→영변 핵시설 폐기→영변 이외 핵시설 폐기→핵무기 제거로 이어지는 큰 틀의 로드맵을 제시한 셈이다. 비건 특별대표가 ‘단계적 비핵화’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핵 신고’를 뒤로 돌린 점까지 종합적으로 볼 때 미국이 사실상 ‘단계적’ 접근의 불가피성을 인정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는 또 북한과의 외교적 과정에서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비상대책(컨틴전시 플랜)도 갖고 있다고 짤막하게 언급했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북-미 협상 대상인지를 묻는 청중의 질문에 “전혀 논의된 바 없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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