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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27 23:38 수정 : 2018.04.29 22:12

"김 위원장과 역사적인 악수를 하면서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의 질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럼 지금 넘어가볼까요?"라고 답했다. 두 사람이 5센티미터 높이의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가 되돌아오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세계를 뒤흔든 판문점 12시간 평화 드라마

북 지도자 첫 남한땅
평화의 집 전통의장대 사열
판문점 선언 서명
남북 정상 부부 첫 동반만찬

"김 위원장과 역사적인 악수를 하면서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의 질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럼 지금 넘어가볼까요?"라고 답했다. 두 사람이 5센티미터 높이의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가 되돌아오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저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럼, 지금 넘어가볼까요.”

27일 오전 9시30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에 파격적인 대화가 오갔다. 막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온 김 위원장에게 문 대통령이 농담처럼 부러움을 표시하자, 김 위원장이 기다렸다는 듯 선뜻 화답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웃으며 문 대통령의 손을 잡아끌었다. 두 정상은 손을 잡고 가볍게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북쪽에서 10초가량 머물며 대화를 나누다 다시 남쪽으로 건너왔다. 이날 판문점에서 12시간 동안 펼쳐진 ‘평화 드라마’를 예고하는 장면이었다.

드라마는 김 위원장이 9시27분께 판문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경호원들을 뒤로한 채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왔다. 허리를 세우고 두 팔을 힘차게 저었다. 군사분계선 앞에서 기다리던 문 대통령과 악수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정말 마음 설렘이 그치지 않는다. 이 역사적 장소에서 만나니까, 대통령께서 이렇게 분계선까지 나와서 맞이해주시니 정말 감동스럽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온 건 위원장님의 아주 큰 용단이었다”는 문 대통령의 말에, “아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순간은 극적이었다. 문 대통령이 왼손으로 군사분계선 남쪽을 가리키며 “이쪽으로 오실까요?”라고 권하자 주저하지 않고 왼발을 내밀어 훌쩍 넘어왔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남쪽 땅을 밟기는 분단 이후 처음이다.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도,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못했던 일이다. 김 위원장은 돌아서 북녘을 향했다. 잠시 감회에 빠진 듯했다. 김 위원장은 다시 돌아서 문 대통령의 손을 꼭 잡았다.

두 정상은 전통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자유의집’ 우회도로를 걸어 사열 장소를 지났다. 빨간 양탄자로 표시된 길을 걸으면서도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간간이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의장대를 사열하면서 중간중간 거수경례를 했고, 김 위원장은 앞을 응시했다. 굳은 표정이 비치기도 했다.

두 정상은 사열을 마치고선 수행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김 위원장이 “오늘 이 자리에 왔다가 사열 뒤 돌아가야 하는 분들이 있다”고 말하자, 문 대통령이 “그럼 가기 전에 수행원 모두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고 기념촬영을 제안했다. 역시 예정에 없던 행사였다.

9시41분. 두 정상이 회담장인 평화의집에 들어섰다. 김 위원장은 전통 해주소반을 본뜬 서명대 의자에 앉아 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건네준 펜으로 방명록을 작성했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력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 김정은 2018.4.27.”이라고 썼다. 김 위원장이 방명록을 쓰는 동안 문 대통령은 옆에 서서 진지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머리발언에서 남녘 땅을 밟은 감동을 꾸밈없이 전했다.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보니까 사람이 넘기 힘든 높이로 막힌 것도 아니고, 너무나 쉽게 넘어온 역사적인 이 자리까지 11년이 넘었는데, 왜 그렇게 오기 힘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잃어버린 11년이 아깝지 않게, 우리가 좋게 나가지 않겠나, 이런 생각도 하면서 200m를 걸어왔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정상회담을 마친 뒤 잠시 헤어졌다. 김 위원장은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차량을 타고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넘어갔다. 김 위원장으로선 네번째 군사분계선 통과였다. 두 정상은 오후 4시27분 기념식수를 하기 위해 다시 만났다. 기념식수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8년 6월 소 500마리를 트럭에 태워 방북할 때 지났던 ‘소떼길’ 옆에서 이뤄졌다. 김 위원장은 차량을 타고 남쪽으로 넘어와 문 대통령과 다시 만났다. 다섯번째 군사분계선 통과였다.

두 정상은 미리 심어놓은 1953년생 소나무 앞에 서서 잠시 대화를 나눴다. 소나무 앞에는 한라산 흙과 백두산 흙, 한강 물과 대동강 물이 놓여 있었다. 두 정상은 흰 장갑을 끼고 각자 삽을 잡았다. 문 대통령은 백두산 흙을, 김 위원장은 한라산 흙을 삽에 퍼서 나무에 세차례 뿌렸다. 문 대통령은 평양 대동강 물을, 김 위원장은 서울 한강 물을 나무에 뿌렸다. ‘합토합수’(合土合水)를 통해 남북 평화와 화합의 의지를 담은 것이다. 기념식수 표지석에는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는 글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서명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두 정상은 공동식수 뒤 판문점 안에 있는 도보다리에서 산책을 했다. 4시36분부터 이뤄진 두 정상의 산책은 이번 회담의 하이라이트 가운데 하나였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도보다리 쪽으로 나란히 걸으며 담소를 주고받았다. 손짓을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다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두 정상은 군사분계선 표지 왼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40분가량 배석자 없이 얘기를 나눴다. 자리에 앉자 김 위원장은 근접 촬영을 위해 따라붙은 북쪽 기자들에게 ‘잠시 비켜달라’는 듯 손짓을 해 주변을 물리쳤다. 책상을 앞에 두고 나란히 앉은 두 정상의 간격은 1m도 채 되지 않았다. 전세계가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외교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공개밀담’이 펼쳐진 것이다. 문 대통령이 말할 때 김 위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미소짓는 모습도 보였다.

두 정상은 5시40분께 판문점 선언에 서명하고 포옹했다. 문 대통령은 평화의집 앞마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대담하게 오늘의 상황을 만들어내고 통 큰 합의에 동의한 김 위원장의 용기와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고 김 위원장을 치켜세웠다. 이어 김 위원장은 “하나의 핏줄과 역사, 문화와 언어를 가진 북남은 본래처럼 하나가 돼 끝없는 번영을 누릴 것”이라며 “북남의 전체 인민과 세계가 보는 가운데 서명한 합의가 역대 합의처럼 시작만 뗀 불미스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두 사람이 무릎을 마주하고 소통 협력해 반드시 좋은 결실이 맺어지게 노력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부부동반 만남도 이어졌다. 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는 6시18분께 검은색 벤츠를 타고 평화의집 앞에 도착한 리설주 여사를 맞았다. 남북 정상의 부부동반 회동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리 여사에게 “매우 반갑다”고 인사를 건넸고, 리 여사는 “이렇게 만나뵙게 돼서 정말 반갑다”고 화답했다. 리 여사는 “오전에 남편이 회담을 갔다 와서 문 대통령님과 함께 좋은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회담도 잘 됐다고 해서 정말 기뻤다”고 했다. 문 대통령 부부와 김 위원장 부부는 기념촬영을 한 뒤 3층 연회장에서 열린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만찬장에는 해금과 옥류금의 합주로 남쪽에도 익숙한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가 울려 퍼졌다.

9시10분께 환송행사가 시작했다. 두 정상이 부부동반으로 나와 나란히 자리에 앉자 ‘평화의집’의 모든 불이 꺼졌다. 하얀색 그랜드피아노에 조명이 들어오더니 아리랑 연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물놀이패가 함께 장단을 맞췄다. 노란색 나비가 날아가는 장면이 건물 벽면에 비쳤다. 이어 ‘하나의 봄’이라는 글귀가 나타났다. 불이 다시 켜지고, 두 정상이 만나 악수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슬라이드처럼 벽면을 지나갔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손을 잡고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봤다.

9시24분 행사를 마친 김 위원장 부부가 문 대통령 부부의 배웅을 받으며 승용차에 올랐다. 김 위원장은 차가 달리자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문 대통령 부부에게 석별의 인사를 건넸다. 9시28분 김 위원장을 태운 차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으로 건너갔다. 12시간 동안 ‘세계를 뒤흔든’ 판문점 드라마가 끝났다. 유강문 선임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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