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표적집단좌담회의 원칙에 따라 참석자들은 서로 초면이었다. 각자 자기 소개를 시작하자 참석자 전원이 아이들을 하나 또는 둘씩 키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자는 성장과 분배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가치인가를 묻는 다소 추상적인 질문으로 좌담을 시작했다. 분배가 더 중요하다는 답변이 더 많았다. 특히 부와 가난의 세습이 이뤄지는 사회 구조에 대해 많은 불만들을 털어 놓았다. ◇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인식 도덕성 논란으로 물러나거나 물의를 빚은 장관들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주부들은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장상, 손숙 등 김대중 정부 시절 여론의 도마에 올랐던 여성들의 이름이 나왔다. 사회자가 이기준 교육 부총리, 이헌재 경제 부총리,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 등의 이름과 문제가 된 사건을 알려주자, 그제서야 일제히 “아, 맞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과 홍석현 주미대사는 도덕성 시비에 올랐지만 물러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고, 물러난 사람과 물러나지 않은 사람이 어떤 차이가 있겠느냐고 물었다. 정아무개씨는 “사퇴를 안 한 사람은 지금 현재 드러난 게 전부 다고, 사퇴를 한 사람들은 더 큰 것이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권아무개씨는 “사퇴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사람의 뒤에 인맥과 권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곽아무개씨도 ‘배후 세력’이 있는 사람은 사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덕성 시비의 구체적인 내용 및 비난 가능성의 차이보다는 정치적 역학 관계, 이를테면 ‘그들만의 속사정’에 의해 사퇴 여부가 결정됐을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다만 김아무개(36)씨는 “홍석현 대사나 진대제 장관은 국익 차원에서 활용도가 높았기 때문에 사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조금 다른 주장을 폈다. 주부들은 사회자가 제시한 6명의 고위 공직자들을 모두 ‘기득권층’이라고 단정했다. 그리고 그 기득권층에 대해 적대감에 가까울 정도의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김아무개(41)씨는 기득권층을 “확실한 부를 쌓은 계층과 정치적으로 권력을 쥔 계층, 그래서 정재계가 혼인하고 그런 사람들”이라고 그 나름대로 정의했다. ◇ 능력이냐, 도덕성이냐 고위 공직자들의 자격으로 능력과 도덕성 중에서 어느 쪽을 우선 고려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주부들의 의견은 팽팽히 갈렸다. 능력 우선이 5명, 도덕성 우선이 3명이었다. 능력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대답한 사람들에게 다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물었다. 곽아무개씨는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국민이 잘 살기 위해서는 능력이 우선”이라고 대답했다. 김아무개(41)씨는 “도덕성에서는 사실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능력이라도 뛰어나야 한다”며 “두 가지를 다 갖춘 ‘충신’같은 훌륭한 분들이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말로 능력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소극적이고 체념적인 인식이 배경으로 깔려 있는 것이다. 도덕적인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겠느냐고 물었다. 정아무개씨는 “외골수로 융통성이 없고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이라고 했고, 권아무개씨는 “남의 청탁을 안 받아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곽아무개씨는 “투기 안하는 사람”이라고 간명하게 대답했다. 윤아무개씨는 “전쟁이 났을 때 자기 자식을 군에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금 고위 공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덕목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답변은 부정적으로 돌아왔다. 김아무개(41)씨는 “이 경쟁사회에서 그런 분들은 고위 공직까지 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다른 참석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고위 공직자 전반에 대한 불신은 역시 강했다. 홍석현 주미대사가 사퇴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박아무개, 김아무개(41), 권아무개씨는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아무개씨는 “과거에 저지른 일 때문에 사퇴시키면 고위 공직자 중에 남아날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능력을 믿고 한번은 봐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아무개씨는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떳떳하게 일을 할 수 있다면 사퇴하지 않아도 좋다”고 ‘양심론’을 폈다. 도덕적 기준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윤아무개씨는 “그렇다”고 분명하게 대답했다. 곽아무개씨는 “이대로 계속가면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이유를 덧붙였다. 권아무개씨도 “젊은 세대들이 그 위치가 됐을 때 청렴결백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주부들도 동의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어머니로서 자식들에게 잘못된 세상을 물려줄 수 없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최아무개씨는 “몇십년 전의 과거까지 끄집어내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고 지나친 ‘과거 파헤치기’를 경계했다. 부동산 투기 “내가 하면 재산증식”이중성 잣대 더 염격히…후대 청렴세상 물려줘야 ◇ 남에 대한 잣대와 나에 대한 잣대 여유가 있다면 부동산 투기를 해서 돈을 벌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고위 공직자들에 대해 고도의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는데, 과연 당신 자신은 도덕적으로 살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좌담회장의 분위기는 아연 긴장하는 쪽으로 바뀌었고, 주부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대답은 솔직하게 나왔다. 최아무개씨는 “투기라기보다는 재산증식 차원에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고, 곽아무개씨는 “물으나마나 거의 다 할 것 같다”고 답변했다. 김아무개(41)씨는 “부동산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사회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자가 “주변에 있는 분들이 갑자기 큰 돈을 벌었다면 어떤 기분이 드냐”고 묻자, 곽아무개씨는 “부럽지요…. 좋겠다”고 대답했고, 최아무개씨는 “배도 좀 아프고, 어떻게 했는지 궁금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아무개씨는 “꼬박꼬박 저축해서 한 푼, 두 푼 모아 나가며 살다가 갑자기 옆집에서 투자를 해서 몇 억원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굉장히 허탈하다”며 “그런데 그 사람이 똑똑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주부들은 대체로 혼란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곽아무개씨는 “이상하게 그렇게 된다”고 곤혹스러워했다. 그 ‘이중성’의 원인이 무엇인지 질문이 계속됐다. 윤아무개씨는 ‘기회’의 차이로 설명을 시도했다. 고위 공직자들은 정보를 자기들만 공유해서 재산을 축적하는 경우가 많고 일반 서민들은 주변에서 듣거나 자기가 발로 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과 신도시에 사는 주부들이 자신들을 ‘서민’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그들이 보기에 ‘기득권층’인 고위 공직자들에게 지독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김아무개(41)씨는 “고위 공직자들은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책임이 있다”며 “고위 공직자부터 바른 룰을 만들어 가야 시민들이 보고 따라가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깨끗하기 때문에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은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니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권아무개씨는 “바늘도둑과 소도둑의 차이”라고 말했다. 역시 상대적 박탈감에 근거한 인식이었다. 결국 주부들은 고위 공직자와 자신에 대한 도덕적 잣대가 다른 ‘이중성’을 ‘사회 지도층의 책임’이라는 논리로 설명하고 있는 셈이다. 좌담회가 끝난 뒤 사회를 맡았던 임상렬 ㈜리서치플러스 대표의 분석을 별도로 들어 보았다. 임씨는 “문제는 평범한 개개인이 아니라 세상의 흐름이며 사회 지도층이 먼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며 “기득권층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이고 자신이 기득권층일 수 있다는 인식을 하지 않고 차별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우리 사회가 나아지고 있다는 인식은 공유하고 있지만 진행 과정이 불안정하다고 보고 있으며, 이런 환경이 옳고 그름을 떠나 대세에 편승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한용 기자 shy99@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