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05 20:47
수정 : 2019.12.06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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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회의실에서 열린 울산시장 부정선거 등 ‘친문게이트 진상조사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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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백 입증하려다 의혹 더 키운 발표
“김기현 첩보 생산 안했다” 발표 뒤
두시간 안돼 ‘제보자 송병기’ 드러나
송, 송철호 캠프에 있었는데도
“정당 소속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
제보자 감추기 말장난으로 비쳐
선거운동 뒤 부시장 승진했는데도
“송, 한국당과 가깝다” 시선 돌려
“백원우 전 비서관은 기억 못한다”
의혹 윗선 번지는 걸 막는데 급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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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회의실에서 열린 울산시장 부정선거 등 ‘친문게이트 진상조사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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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 첩보는 청와대가 자체 생산한 게 아니라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4일 조사 결과 발표가 거센 후폭풍에 휘말렸다. 발표한 지 두시간도 안 돼 첩보 제공자가 송철호 울산시장의 측근인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이란 사실이 드러나면서 가라앉히려던 ‘하명수사’ 의혹이 더 커졌다. 제보와 관련한 진실 공방까지 불거진 가운데, 발표 전 관련 수석실끼리 의견 조율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심각한 판단 미스”라는 탄식이 나온다.
전날 청와대 발표의 핵심은 청와대가 김 전 시장 관련 첩보를 자체 생산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고민정 대변인은 “민정비서관실 소속 행정관이 2017년 10월께 제보자로부터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제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제보자가 송 시장의 측근인 송 부시장임을 밝히지 않았다. 청와대는 나아가 그의 신분을 교묘히 가리는 듯한 브리핑을 하기까지 했다. 브리핑에 나선 청와대 관계자는 ‘제보자가 정치권과 관련있는 인물이냐’는 물음에 “정당 소속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제보가 이뤄졌던 2017년 말께 송 부시장이 송 시장 캠프의 요직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말장난에 가까운 대답이었던 셈이다. 제보자를 숨겼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5일 “제보자가 누구인지, 본인 동의 없이 밝혀선 안 되는 상황이었다. 제보자 신분을 밝혔다면 불법이 될 수도 있었다”며 수습에 나섰다.
발표 과정에서 민정수석실과 국민소통수석실이 첩보 제공자인 송 부시장의 존재에 대해 제대로 소통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여러 명의 청와대 관계자들은 “민정수석실이 송 부시장에 관해 소통수석실에 제대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충분히 소통이 됐다면 일부러 제보자를 감췄다는 오해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보자가 송 부시장이란 사실이 드러나 제보의 진정성이 의심받게 된 뒤에도 청와대는 그가 과거 자유한국당 출신 인사와 가까웠다는 점만 강조해 빈축을 샀다. 여러 명의 청와대 관계자들은 그가 박맹우 전 울산시장 시절 발탁돼 김 전 시장 때도 측근이었다고 강조했다. 그가 민주당 소속인 송철호 시장의 선거운동을 도운 뒤 경제부시장으로 파격 승진 기용된 사실에 대해선 애써 의미를 축소하면서 그의 제보에 정치적 의도가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선 해명하지 않은 것이다. 청와대는 해명 과정에서 서너차례에 걸쳐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은 제보받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이 없다”고 강조하며 의혹이 윗선으로 번지는 걸 막는 데 주력하는 인상이었다.
송 부시장에게 첩보를 제공받은 행정관이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고교 친구인 것도 청와대로선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이에 관해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어떤 것이 사실인지는 저희가 수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밝혀낼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누구의 말이 참말인지는 수사기관이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자체 조사 결과의 신뢰성에 흠집이 나면서 의혹은 경찰 이첩 과정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백원우 전 비서관은 전혀 기억을 못 했다”며 “그 계통 행정관들도 아주 크리티컬(중대한)한 이슈였으면 어떻게든 기억을 할 것인데, 전혀 기억을 못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현직 울산시장의 재선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은 오히려 설득력이 약하다.
청와대 안에서는 답답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어설프게 혹을 떼려다 혹만 더 키웠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정무적으로 중대한 판단 미스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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