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29 21:04
수정 : 2019.05.29 22:11
“기밀 유출, 국민께 사과” 입장 밝혀
한국당 작심 비판 “당리당략을 국익에 앞세워”
정상 통화 유출을 ‘공익제보 두둔’
국정 근간 흔든 중대 사태로 인식
“외교 기밀까지 정쟁 소재로 삼아…
국정 담당했던 정당, 상식 지켜라”
한미 외교적 파장 확산될까 우려
‘신뢰 손상 차단’ 엄중 대응 성격도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3급 비밀’인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이 최근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유출된 것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강 의원의 외교기밀 유출을 두둔하는 한국당의 태도를 두고선 “당리당략을 국익과 국가안보에 앞세우는 정치”라며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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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을지태극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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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연 을지태극 국무회의에서 “국가의 외교상 기밀이 유출되고, 이를 정치권에서 정쟁의 소재로 이용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변명의 여지 없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공직자의 기밀 유출에 대해 국민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건을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고, 철저한 점검과 보안 관리에 더욱 노력하겠다”며 “각 부처와 공직자들도 공직자세를 새롭게 일신하는 계기로 삼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곧이어 자유한국당을 직접 겨냥했다. 그는 “외교적으로 극히 민감할 수 있는 정상끼리의 통화 내용까지 유출하면서 정쟁의 소재로 삼고, 이를 국민의 알권리라거나 공익 제보라는 식으로 두둔하고 비호하는 정당의 행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또 “국정을 담당해봤고, 앞으로도 국민의 지지를 얻어 국정을 담당하고자 하는 정당이라면 적어도 국가 운영의 근본에 관한 문제만큼은 기본과 상식을 지켜줄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외교기밀 유출을 국정의 근본을 흔드는 중대 사태로 규정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과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공직 기강’ 문제가 아니라 ‘정치 기강’의 문제로 보고 있다. 국가와 국민을 우선에 두어야 하는 정치의 근본이 무너진 것이라는 게 문 대통령의 시각”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 공무원의 기밀 누설보다, 유출한 기밀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자유한국당의 행위를 더 위중한 문제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공직 기강’ 문제로 몰아가며 조윤제 주미대사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책임론을 확산시키려는 한국당의 계산에 일찌감치 쐐기를 박겠다는 의중을 내비친 셈이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외교적 파장에 대한 문 대통령의 우려가 매우 크다고 전했다. 그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신뢰를 쌓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문 대통령 입장에선, 이런 일이 자꾸 발생할 경우 양국 간 신뢰에 심각한 손상이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엄중 대응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강경화 장관의 사과 발언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무회의 참석자들은 강 장관이 회의가 마무리될 무렵 “문 대통령께서 이번 일에 관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말씀했다. 심려와 누를 끼친 것에 국민과 문 대통령께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강 장관은 기밀 유출에 관여한 외교부 직원들에게 엄한 책임을 묻겠다는 뜻도 거듭 밝혔다고 한다.
청와대는 일단 강 장관과 조윤제 주미대사에게까지 책임을 물을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 관계자는 “일단은 (기밀을 유출한 공무원들에 대해) 징계위에서 어느 정도까지 징계를 할지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외교부 장관 등의 책임에 대해선) 그것이 결정되고 난 뒤 생각해볼 일”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전날 이번 외교기밀 유출 과정에 연루된 주미대사관 직원 3명의 중징계 의결을 요구하기로 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리비아 납치 교민의 송환을 위해 노력한 외교부 관계자들을 치하하는 메시지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리비아에서 납치됐다가 300여일 만에 풀려난 주아무개씨 가족이 보내온 편지 내용을 전하며 “아버지의 무사 귀환에 수고해주신 외교부 공직자들에 대한 감사 인사가 이분들께 큰 격려와 위로가 될 것 같아 이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전날 북유럽 순방 관련 현안을 보고하러 청와대에 온 강경화 장관과 외교부 직원 10여명에게 직접 편지를 읽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완 성연철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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