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18 21:04
수정 : 2019.12.19 17:21
야4당 ‘연동률 캡’ 받아들이며
“석패율제 유지” 타협안 냈지만
민주 “재고하라” 다시 공 넘겨
4월 선거법 합의 땐 찬성해놓고
수도권 반발로 막판 번복 비판
“석패율제가 진짜 ‘숨은 폭탄’이다. 석패율제 때문에 다 깨질 수 있다.”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의 선거제 개편 논의가 본격화하던 이달 초, 협상에 오래 관여해온 민주당 의원이 ‘석패율제’가 갈등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당시는 패스트트랙 원안에 담긴 225(지역구)-75(비례) 의석비와 연동률 50%를 어떻게 재조정하느냐가 관심사여서 주목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로부터 보름 남짓 지난 지금, 그의 말은 현실이 됐다. ‘4+1 협의체’가 18일 핵심 쟁점 중 하나인 ‘연동제 적용 의석 상한제’(연동률 캡)까지 합의해놓고도, ‘석패율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막판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민주당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석패율제는 재고해달라’며 공을 다시 소수 야당들에 넘겼다. 민주당은 왜 ‘석패율제 불가’를 고수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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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가 1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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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패스트트랙 합의 때 석패율제 찬성 석패율제는 지역구에서 아깝게 낙선한 후보자를 ‘당선자 대비 득표율’이 높은 순서로 권역에서 1명씩 구제해 비례대표로 당선시키는 제도다. 민주당은 지난 4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협상 때 패스트트랙에 올릴 선거법안에 합의하면서 석패율제에 따른 당선자 배출을 권역별로 2명까지 허용하는 데 동의한 바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선거법 협상 재개 뒤 비례대표를 ‘75석 → 50석’으로 조정하는 과정에서 ‘연동률 캡’과 ‘석패율제 삭제’를 추가 조건으로 들고나왔다.
민주당이 석패율제가 ‘소수정당의 중진 재선용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했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도 ‘선거법 협상 전체를 흔들 만한 중요한 이유로 보기는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악용될 우려가 존재하지만, 석패율제는 지역구도 완화에 기여한다는 장점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인 2015년 2월 “현행 선거제도는 제대로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서 지난 총선에서 야당은 부산에서 40% 득표했지만 의석은 전체 18석 중 단 2개에 불과했다. 우리 당은 그 해결 방안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 도입을 줄곧 주장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도 “당이 이미 4월 패스트트랙 원안 합의 때 석패율제에 동의한 적이 있는데, 이제 와서 ‘소수정당 중진의 재선’이 결사반대의 이유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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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출마 경합지역 의원들 반대가 핵심18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석패율제는 절대 안 된다’는 의견을 낸 의원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출신 당선자가 많이 배출됐으니 굳이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석패율제에 반대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면면을 보면 이유는 다른 곳에 있는 듯하다.
이날 의총에서 석패율제 삭제를 요구한 의원들 대부분은 서울과 수도권을 지역구로 둔 의원이었다. 지난 총선에서 한국당 후보와 불과 수백표 차이로 당선된 의원도 있었다. 이들은 ‘석패율 당선’을 노린 정의당 등 군소정당 후보들이 득표율을 높이려고 총력전을 펼 경우 자신들의 당선이 어려워진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가뜩이나 자유한국당과 박빙인 지역구에서, 정의당이 후보를 내 5% 득표율을 가져가면 당선이 어렵다는 불만이다. 과거 총선 때마다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에서 벌어지던 해묵은 논쟁이 이번엔 석패율제를 통해 다시 불거진 셈이다. 4월 선거법 합의 때는 문제 삼지 않다가, 실제 총선이 다가오고 법안 처리가 임박하자 선거제 개혁이라는 대의보다 개별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더 강한 요구로 쏟아져 나온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의원들의 이런 반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과거에도 수도권은 늘 접전 지역이 많았고, 민주당이 1당이 됐던 20대 총선에서도 당시 국민의당이 ‘제3정당’으로서 수도권 대부분 지역에서 최소 10% 이상 득표율을 가져갔다. 이날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도 ‘석패율 때문에 정의당이 열심히 뛰어 우리 선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건 너무 과도한 우려’라는 지적이 나왔다고 한다. ‘게임의 룰 때문에 승패가 결정되는 게 아니라, 집권 여당으로서 선거 때까지 국민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는 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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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미래당은 왜? ‘4+1 협의체’가 석패율 갈등을 빚게 된 데에는 바른미래당의 이해관계도 작용했다. 정의당은 민주당이 지난 15일 석패율제 대신 제시한 ‘이중등록제’를 수용했지만, 이후 바른미래당의 강력한 요구로 석패율제 도입 조항은 살아남았다.
바른미래당이 ‘석패율제 유지’를 주장하는 것을 두고 당 안팎에선 손학규 대표가 ‘석패율제’를 통해 당에 남아 있는 당권파(9명) 의원들을 챙겨줘야 한다는 부채의식이 작용하지 않았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당권파 의원들의 지역구는 김성식(서울), 이찬열·임재훈(경기), 김관영(호남) 등으로 지역이 고르게 분포돼 있다. 손 대표 입장에서 이중등록제로 이들을 ‘콕’ 찍어 지역구와 비례대표로 동시 등록하기에는 부담이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인지도 있는 현역 의원들을 석패율제로 구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서영지 황금비 김원철 기자
yj@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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