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회의실에서 지역혁신 전문가들이 혁신도시 평가 등 지역혁신 의제를 놓고 좌담을 벌이고 있다. 맨 왼쪽부터 류세선 전남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장, 김영수 산업연구원 국가균형발전연구센터장, 정성훈 강원대 지리교육과 교수.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더 나은 사회] 지역혁신 전문가 좌담회
김영수
“가장 효과적인 건 앵커 기업의 이전
지역에 성과관리 재량 좀 더 줘야”
류세선
“중앙정부 정책은 공급과잉 상태
중소·중견 기업 중심 생태계 만들자”
정성훈
“광역시·도 내 불균형도 고려할 시점
첨단산업 판타지에서 벗어나야”
|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회의실에서 지역혁신 전문가들이 혁신도시 평가 등 지역혁신 의제를 놓고 좌담을 벌이고 있다. 맨 왼쪽부터 류세선 전남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장, 김영수 산업연구원 국가균형발전연구센터장, 정성훈 강원대 지리교육과 교수.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수도권과 지방 간의 지역불균형 문제 해결과 교착상태에 빠진 성장의 돌파구로 지역혁신 정책이 주목받고 있다. 쇠락하는 지역의 산업구조 개편을 통해 자생력을 키우고 혁신 동력을 만들어 성장의 계기를 확보하자는 정책이 바로 지역혁신이다. 이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지역혁신에 대한 관심 제고와 활발한 논의를 위해 심층기획을 마련해 몇차례 연속 보도한다. 첫번째로 지역혁신 전문가들을 모아 좌담회를 열었다. 이후에는 국내외 다양한 현장사례 취재를 통해 논의를 이어갈 참이다. 이번 좌담회는 김영수 산업연구원 국가균형발전연구센터장, 정성훈 강원대 지리교육과 교수, 류세선 전남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장이 참여했다. 모두 20년 이상 지역혁신 정책에 관여해온 전문가들이다. 좌담은 11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회의실에서 연구원의 한귀영 사회정책센터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혁신도시에 대한 평가로 지역혁신 논의를 시작해보자. 공공기관 이전을 통한 혁신도시는 참여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지역혁신의 핵심 정책이다.
김영수(이하 김) 혁신도시를 ‘공공기관을 집단 이전하기 위한 거점’으로 규정한다면 성공적이다. 하지만 혁신도시를 지역혁신의 거점으로 보는 건 과도하다. 혁신도시가 독립적인 도시로 기능하기에는 인구도 적을뿐더러 공공기관은 (안정성을 지향하기 때문에) 혁신의 주체가 되기 어렵다. 지역혁신은 지역의 기업·대학·연구소가 주체가 돼야 한다.
류세선(이하 류) 혁신도시는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정책이고 시간은 걸리겠지만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의 혁신도시는 주거와 상업 기능만 있고 생산과 산업 기능이 부족해 인구의 집적도 약하고 규모의 경제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성훈(이하 정) 지금 우리가 직면한 지역 간 불균형 발전은 재난에 가깝다. 혁신도시는 균형발전의 마중물이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균형발전 정책 이후에도 수도권 인구 집중은 계속된다.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가 혁신도시에 과도하게 집중하다 보니 특정 지역의 땅값이 오르거나 다른 지역의 참여 기회가 제한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광역시·도 내의 불균형도 고려해야 한다.
|
김영수 산업연구원 국가균형발전연구센터 센터장.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일자리 창출 기여도 크지 않아”
―혁신도시의 성과와 한계를 평가한다면?
류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은 중요하지만, 막상 지역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 기여도가 크진 않다. 전남의 경우 역이주하는 청년 수가 1년에 수천명인데 공공기관 채용으로 얼마나 감당할 수 있겠나. 지역이 자체적으로 공공기관의 역량을 활용한 일자리 창출 노력을 해야 한다.
김 ‘신의 직장’이라 부르는 공공기관은 지역 입장에선 굉장히 좋은 일자리다.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은 올해 18%에서 매년 3%씩 목표치를 올려 2022년도에는 30% 이상 지역인재를 채용해야 한다. 하지만 지역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앵커 기업의 이전이다. 공공기관이 투자하는 자회사·협력회사 등이 이전하도록 해야 한다.
―혁신도시 시즌2를 추진할 때 어떤 점을 염두에 둬야 하나.
김 지역 이기주의를 넘어서 주변 지역과 협력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광주는 전라남도와 때론 경쟁하고 때론 협력하면서 복합산업단지를 만들었고 성공 모델로 평가된다. 반면 전라북도는 국민연금공단 이전을 계기로 금융타워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타당성이 없다. 연구소나 기업이 협력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면 혁신도시의 영향 반경도 넓어진다.
류 이전할 공공기관을 선정할 때 통합적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지금은 중소벤처기업부·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 등 여러 부처가 혁신도시를 담당하다 보니 정책 효율성이 떨어진다.
김 지역이 스스로 마스터플랜을 만들어야 한다.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연구개발특구·산업단지·경제자유구역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어떤 기관이 필요한지, 어디에 입지하면 좋을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국토부가 혁신도시에 나눠주기식으로 공공기관 이전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
정성훈 강원대 지리교육과 교수.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그들만의 리그 형성된 듯”
―균형발전 정책에 많은 예산을 투입했는데도 수도권 집중도가 커지고 있다.
김 균형발전의 실패가 아니라 시장의 힘이 크기 때문이라 봐야 한다. 그나마 정책적 노력 덕분에 이 정도라 생각한다. 지역의 위기는 산업구조 변화 요인도 크다. 지역 산업의 경우, 생산 기능 중심으로 형성됐으나 산업구조 고도화로 기획·설계·디자인 등 두뇌 역할이 훨씬 중요해졌다.
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잘 갖춰져 있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지역혁신을 추진할 전문가가 없다. 지역혁신의 주체가 관료화·정치화되고 있는 현실을 지역도 반성해야 한다.
정 지역혁신이 20년 정도 이뤄지면서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된 듯하다. 수혜 대상이 정해져 있다. 이른 시일 안에 성과를 내야 하다 보니 새로운 시도를 못 하고 멈춰 있다. 평가의 문제도 크다고 본다. 평가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 지향적이어야 한다. 과정에서 실패를 통한 학습이 쌓여야 진짜 혁신이 일어난다. 한국에서는 정책 평가가 3박4일 동안 이뤄지지만, 영국에서는 3~4개월 걸린다.
류 결과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활동 성공률은 100%라고 한다. 그런데 왜 한국에는 실리콘밸리가 만들어지지 않는가? 성공한 사례를 만들기보다는 실패하지 않는 데에다 에너지를 쏟기 때문이다. 벤처는 10개 중 1개만 성공해도 된다. 감사·증빙·규제 등 행정 업무에 드는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김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 정도를 연구개발 활동에 투자한다. 세계 2위에 해당할 정도로 작은 규모가 아닌데 획기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국가 차원에서 반성해야 한다. 지역에 성과관리의 재량을 좀 더 줘야 한다. 클러스터는 지역 내 다양한 혁신 주체들이 신뢰를 기반으로 네트워킹하는 것이다.
|
류세선 전남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장.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지역도 상시적 구조조정 대비해야”
―러스트벨트와 산업위기 지역도 지역혁신과 관련해 중요한 현안이다.
류 전남은 여수산업단지가 있어서 지역 총생산이 높지만, 그 이득이 지역에 남는 게 아니라 다 본사로 들어간다. 현재 지역엔 주로 대기업의 1차 하청업체가 있다. 중소·중견 기업이 중심이 되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소수 대기업에 의존하면 러스트벨트 발생은 필연적이다.
김 국내 성장이 정체기에 돌입한 이상 지역도 상시적인 구조조정에 대비해야 한다. 기업의 경영전략이 바뀌면 언제든 이전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지역이 주체적으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정 좀 다른 각도에서 말씀드리겠다. 지역에 위기가 올 때 가계경제 파탄에 따른 가족 붕괴를 막는 정책이 최우선으로 되어야 한다. 경제위기는 학교의 위기, 청소년들의 위기, 빈곤의 재생산으로 이어진다. 청소년이 성장할 시기에 교육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정책 지원이 긴급하게 들어가야 한다. 지역 교육체계의 혁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약 20년 동안의 지역혁신 정책에 비춰볼 때, 우리가 가야 할 지역혁신의 방향은 어떤 것인가.
류 중앙정부의 정책은 과잉공급 상태다. 문제는 지역의 역량과 의지다. 결국 혁신의 주체, 사람이 중요하다.
정 ‘첨단산업 판타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구에서도 위기 산업지역이 금융·서비스업 등 업종 전환을 추진했지만 실패한 사례가 부지기수다. 당장의 대안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과감한 시도, 작은 실패를 통한 학습, 더디더라도 공동체에 기반을 둔 혁신이 중요하다.
김 앞으로 지역의 성장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국가 전체의 성장이 어려울 것이다. 포용 성장을 위해서라도 잠재력이 있는 주체를 발굴해 성장시켜야 한다.
정리 송진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연구원 jysong@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