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11 16:05
수정 : 2018.04.1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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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이 1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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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기자간담회
야당 ‘문재인 정부판 블랙리스트’ 주장에
“정부보조금 사업은 상세한 회계보고 하게 돼있어”
SAIS-대외연 2006년 초기 협약 문서에
보조금인지 기부금인지 등 성격 명시 안 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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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이 1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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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사연) 이사장이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사이스) 산하 한미연구소(USKI)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이 연구소가 한국 정부에 제출한 회계 보고서가 한 장짜리에 불과했음을 재확인하며 “어떤 사업도 종이 한 장에 (보고를) 했다고 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경사연은 한미연구소에 재정을 지원하는 국책연구기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대외연)의 상급 기관으로 대외연의 재정 지출을 관리·감독한다.
성 이사장은 11일 낮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최근 논란이 된 한미연구소에 대해 “한국 정부, 대외연이 한미연구소에 (재정을) 지원할 때는 ‘보조금 사업’의 하나로 지원했다. 우리 정부의 기본 회계 제도가 항목별 제도를 채택하고, 정부가 진행하는 보조금 사업은 상세한 회계 보고를 하게 돼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한미연구소는 2006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 설립된 뒤 지난해까지 12년 동안 모두 2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한국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한미연구소는 매년 수십억원의 예산을 받으면서도 정작 예산 결산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그 결과 한국 정부는 올해부터 이 기관에 대한 예산 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 등이 구재회 한미연구소 소장 등을 인용해 한국 정부가 ‘문재인 정부판 블랙리스트다’,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반발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날 성 이사장은 그동안 논란이 됐던 내용을 짚으며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는 “영수증 첨부, 심지어 식사, 교통 등 우리 (정부) 직원은 세종(청사)에서 서울로 출장을 올 때 케이티엑스(KTX) 영수증까지 다 첨부한다. 이게 대한민국 회계 제도의 특징이다”라며 “그런데 미국 쪽에서 나오는 보도를 보면 보조금 사업이 아니고 ‘기부금’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한국 쪽에서는 미국 쪽에서 기부금 사업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듣고 상호 간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하는데, (재정 지원의 성격이 보조금인지 기부금인지) 핵심적 문제에 대해서 오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한미연구소 재정 지원을 정부 보조금 사업으로 생각하고, 사이스와 한미연구소 쪽에서는 한국 정부의 돈을 ‘기부금’으로 생각하는 등 인식의 차이가 논란을 키웠다는 얘기다. 기부금 사업에 대한 재정 지출 계획은 기부를 받는 기관에 전적으로 일임한다는 점에서 정부 보조금 사업과 다르다.
문제는 2006년 한국 정부가 한미연구소와 협약을 맺으면서 지원하는 재정의 성격에 대해 제대로 밝혀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11일 <한겨레>가 입수한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학대학원(SAIS·사이스)와 대외연이 2006년 맺은 3장짜리 초기 협약 문서에는 그러한 문제점이 나타나 있다. 이 협약 문서에는 한미연구소와 사이스가 한국 정부에 제출해야 할 최종 보고서가 “한미연구소-사이스 소속의 적절한 임원의 사인이 있어야 한다”며 “프로젝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진전에 관한 설명을 포함해 기금 지출로 이룬 성과에 대한 서술, 한미연구소-사이스의 재무 책임자가 인증한 재무 회계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 나와있다. 하지만 문서 어디에도 재정의 성격이 정부 보조금 또는 기부금인지 여부, 재무 회계 보고서가 담고 있어야 할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지 등은 담기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이 연구소에 매년 수십억원의 혈세를 지원하면서도 재정의 성격, 재무 보고서에 담겨야 할 사실관계 등을 제대로 밝혀 놓지 않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성 이사장은 일반 대학들의 대학의 보조금 지원을 받을 때 “(대학이) 매우 세밀한 결산, 회계보고까지 해야 한다. 차비, 숙박비, 식사비 등 지나칠 정도로 다 보고해야하는데, 해외직에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국내 대학에 재정을 지원할 때 지출 항목이 낱낱이 나열된 철저한 회계 보고서를 요구하는데 이는 미국 대학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오늘 간담회장에) 오면서 확인했는데, 한미연구소가 1년에 회계보고를 1장 정도 했다”면서 “(지적을 받은 이유가) 다른 요인보다 회계 부분이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 이사장을 말을 들어보면 대외연, 경사연 쪽에서는 국회의 제도 개선 권고에 따라 한미연구소 쪽에 회계 보고와 관련해 투명성을 요구했지만, 한미연구소 쪽에서는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 ‘왜 자율성을 침해하느냐’는 입장을 고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 이사장은 “이 문제를 제기하면 (일각에서) ‘이건 학문의 자유 침해다’, ‘인사 개입이다’라고 대응을 해서 실제로는 훨씬 더 건설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논의가) 제대로 못 갔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미연구소가 운영해 온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성 이사장은 “개인적 의견은 <38노스>를 운영하고 앞으로 책임질 분들과 우리 경사연이 좀 더 진전된 토의를 할 수 있다면, <38노스>와 지속적 협력관계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한편, 한미연구소 소장의 인사 문제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청와대에 보고하거나 협의하는 것은 대개 새로운 정책 방향을 설정할 때, 중요한 이슈가 발생했을 때, 어떤 까다로운 갈등 사안이 발생했을 때 등이다”라며 “몇가지 경우는 청와대가 요청하기도 하고, 해당기관이 청와대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요청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와 협의했다는 건 예외적인 일이 아니고, 통상적인 업무 수행의 한 과정이라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북관계를 풀어야 하고, 북-미 관계에 진전이 필요한데 그런 문제를 연구하고 조언하는 연구기관(대외연)에 갈등이 발생해 있으면 누구라고 그렇게 하지 않겠나. 그걸 보고 인사에 개입했다고 추론하거나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피감기관인 대외연의 지원을 받아 출장을 다녀왔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이사장으로 취임하기) 전에 일어났던 일이라 상세하게 모른다”면서도 “대외연이 예산을 지원했고, 그게 적절했는지, 우리가 더 조심하고 챙겨야 할 게 있는지, 어떤 기준을 적용할 지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필요한 제도나 기준이 미비하면 제대로 세우겠다”고 말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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