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꾼’으로 변질된 농업법인들…농림부는 수수방관

농업법인이 농사를 짓겠다며 농지를 사들인 뒤 단기간에 되팔아 시세차익을 얻는 등 부동산 투기를 일삼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농지 거래가 잦은 상위 5개 농업법인은 2년7개월간 시세차익 118억원을 거뒀고 하루 만에 농지를 사고팔아 1억6000만원 차익을 낸 경우까지 있었는데도, 주무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는 손을 놓고 있었다.

감사원은 10일 농업법인의 사업 운영 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를 벌여 이런 문제 15건을 찾아내고 1명을 징계요구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보면, 상위 20개 농업법인은 2013년 1월부터 지난해 7월 사이에 776필지 141만6000㎡의 농지를 사들인 뒤 분할해 법인당 최대 151차례에 걸쳐 모두 2618명에게 되팔았다. 이런 방식으로 팔아넘긴 농지는 구매 농지의 74%에 이르는 767필지 104만9000㎡나 됐다. 사실상 농업법인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업자였던 셈이다. 농업법인은 영세 소농의 한계를 넘어 대규모 농업 경영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농지를 취득할 수 있고 보조금 지원과 세제 감면 등의 혜택을 받는데, 이런 점을 노린 것이다.

이들의 행태는 부동산 투기 자체였다. 한 농업법인은 경북 영천시 등에 있는 농지 150필지 16만1600㎡를 사들여 이 중 96.7％인 15만6000㎡를 155명에게 팔아넘겼다. 농지 거래가 빈번한 5개 농업법인은 이 기간 농지 매매로 118억여 원의 차익을 얻었는데, 취득 농지의 92％를 1년 안에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20개 법인 가운데 16곳은 법인세 신고서에 ‘부동산업 및 임대업’ 또는 ‘건설업’으로 신고했고, ‘농업’으로 신고한 나머지 4개 법인도 부동산 매매업 외에 다른 사업 매출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농업법인의 부동산 투기는 공무원들이 비호했다. 충남 서산시의 한 농업법인은 지난해 7월 1억3500만원에 밭 1129㎡를 사들여 같은 날 3억원에 팔아 1억6500만원의 차익을 거두는 등 7월 한 달 간 5차례 농지 매매를 통해 4억8100만원의 차익을 남겼고, 2013년 2월∼2015년 5월 서산시 9개 필지 9678㎡를 7억6000만원에 사들여 6일에서 124일 뒤 16억4000여만원에 팔아 차익 8억8000여만원을 남겼다. 이 과정에서 이 법인은 ‘자기 노동력으로 채소·잡곡을 재배하겠다’는 내용의 허위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했지만 서산시는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내줬다. 심지어 서산시 공무원은 허위라는 의심을 피하려면 같은 날 2건의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신청하지 말라고 조언까지 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김진철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