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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박근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형님’ 영향력 줄겠지만 핫라인 살아 있을 듯
청와대 수석과 내각의 총사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으면서 여권의 권력 지형도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인사 실패의 ‘주범’으로 공격받았던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이 물러난 것은 앞으로 권력투쟁의 대폭풍이 불어닥칠 것을 예고하는 전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해 대선과 총선을 거치며, 여권의 권력은 ‘형님’인 이상득 의원이 접수한 것처럼 보였다. ‘모든 인사는 형님으로 통한다’(만사형통)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였다.
‘형님’의 힘 한쪽엔 류우익 대통령실장도 있었다. 류 실장은 정치 권력의 생리에 밝지 않은 교수 출신임에도 청와대 입성 직후부터 특유의 장악력으로 명실상부한 ‘2인자’ 구실을 해 왔다.
‘형님’의 대리인인 박 비서관의 사퇴에 이어 류 실장도 경질될 경우 청와대는 당분간 권력의 진공 상태가 돼 버린다. ‘형님의 남자’가 물러난 자리에 또다시 ‘형님 사람’을 심기는 쉽지 않을 뿐더러, 쇠고기 파동 이후 권력의 기반이 허약해진 상황에서 누구든 당분간 ‘근신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겪으며 확인된 사실은, 역시 이명박 대통령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형님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박 비서관이 물러난 지난 9일 아침에도 형인 이 의원과 아침을 함께 들며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적인 ‘형님의 끈’으로 알려진 박 비서관이 공직에서 물러나면서, 이 의원의 영향력은 줄겠지만, 더욱 은밀한 방법으로 이 대통령과의 핫라인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4인방’을 비난하며 박 비서관을 물러나게 한 정두언 의원은 지난해 선거 때처럼 대통령의 총애를 회복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정 의원은 이 대통령의 핏줄인 이 의원과 척을 지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다. 이미 지난 3월 이상득 의원의 총선 불출마를 촉구하는 서명을 주도하다 이 대통령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정 의원이 판정승을 거둔 것도, 정 의원의 ‘개인기’라기보다는 적극적인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당내 여론에 힘입은 덕분이었다.
정 의원의 발언이 알려지기 직전, 이명박계의 핵심 측근인 권택기·정태근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을 찾아가 박 비서관 사퇴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으로서는 이번에 이 대통령으로부터 총애는 잃었으되, 자신과 함께 뜻을 함께할 수 있는 세력을 얻은 것이 나름의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정 의원은 앞으로 당내 비주류로서 독자적인 노선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은 이날 몇몇 의원들과 만나 “청와대가 첫 조각과 같은 인선을 해선 안 된다”며 “대통령과 당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당이 적극적인 구실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대안도 없는 상황이다. 권력의 쌍벽을 이루던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미국으로 떠나고, 박근혜 전 대표 또한 서둘러 당권 장악에 나서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은 상황이다.
결국, 청와대와 당은 홍준표 원내대표와 임태희 정책위의장 등 공식적인 지도부 라인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 원내대표는 특유의 ‘돈키호테 리더십’으로 친박 복당 등 당내 현안을 적극적으로 풀어왔다. 청와대의 신임이 두터운 임 의장도 기름값 대책 등을 주도하며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청와대의 장악력이 쇠한 공백을 이들이 메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친박복당이 이뤄질 경우 한나라당은 170~180석의 공룡 여당이 된다. 홍준표-임태희 두 사람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한겨레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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