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01 18:10
수정 : 2019.11.02 02:32
지난달 세계 32개국이 공조해 2년간 벌인 ‘웰컴투비디오’ 수사 발표는 한국이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에 얼마나 ‘관대한’ 사회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나아가 요즘엔 누구나 쉽게 접근하는 랜덤채팅 앱을 통해서도 10대 성착취 영상의 거래가 확산되고 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의 제작·보유는 매우 중대한 반인권 범죄다. 이런 현실이 수사기관의 느린 대응, 사법부의 무른 처벌과 무관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적발된 337명 중 223명이 한국인으로 드러난 다크웹의 최대 아동·청소년 성착취 누리집 ‘웰컴투비디오’의 한국인 운영자는 지난해 1년6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미국·영국 등에선 이 누리집의 성착취 영상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중대한 범죄로 처벌받는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수위다. 외국에선 회원이 영상을 올리면 누리집 운영자에게 공모 혐의를 적용하는 데 비해 한국에선 운영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낮은 법정형도 문제지만, 최대 가능한 형량이 있는데도 이런저런 이유로 감해주는 사법부의 판단이 정말 파괴당한 피해자의 인격과 삶을 고려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분야 누리집의 ‘원조’인 소라넷의 공동운영자에게 추징금 없이 징역 4년 원심을 확정한 최근 대법원의 판결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동영상은 플랫폼의 ‘혁신’ 속에 나날이 확산되고 있다. 다크웹처럼 여러차례 암호 입력도 필요없다. 누구나 익명으로 대화할 수 있는 어느 랜덤채팅 앱에선 ‘중딩·고딩들 영상’이란 제목 아래 1개에 150원에도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관련 시민단체가 경찰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모니터링 신고해도 별 반응이 없어 직접 구매자를 가장해 구체적 혐의를 잡아 신고했다는 <한겨레> 1일치 기사는 공권력에 대한 깊은 절망감이 들게 한다.
웰컴투비디오 수사 발표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의 관련 게시판에선 ‘최대한 가벼운 처벌을 받기 위한’ 요령이 공유되는가 하면, 응원과 위로의 글이 범람했다고 한다. 초범 등에 대해 양형 이유가 있는 것은 죄를 뉘우치고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착취 영상 소지자는 물론 누리집 운영자에게까지 ‘무른’ 처벌이 반복되는 사회에선 ‘걸리는 이만 재수 없는 놈’이라는 잘못된 인식만 강화할 뿐이다. 한국은 계속 ‘야만의 사회’로 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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