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10 18:37
수정 : 2019.10.10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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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왼쪽),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오른쪽).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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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을 방문한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8일(현지시각)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특별대표를 만나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 이후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이 본부장은 “어떻게 하면 북-미 대화 모멘텀을 살려나갈지에 대해 얘기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에는 입을 닫았다. 보안 유지 차원일 수도 있지만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북-미 협상의 조속한 재개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방증이다.
다만 미국의 태도에서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분명히 드러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한-미 협의 뒤 미국 국무부가 내놓은 설명 자료를 보면, 그동안 북한 비핵화에 대해 써온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표현 대신에 ‘완전한 비핵화’라는 다소 완화된 포괄적 표현을 사용한 것이 눈에 띈다. 북한이 거부감을 느끼는 표현을 삼가는 모습이다.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6개국이 채택한 ‘북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규탄 성명’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북한을 압박하지 않고 어떻게든 협상장에 불러내겠다는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은 스톡홀름 협상장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놨다고 했지만, 북한은 미국의 제안이 ‘선 핵포기, 후 보상’의 변종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중단 등 선제적 조처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처가 있어야만 협상을 이어갈 수 있다는 입장도 굽히지 않고 있다. 북한은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 내놓은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스톡홀름 협상 결렬 직후 북한에 ‘2주 안’에 다시 만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북한이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안전권 보장’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협상이 재개되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말로 제시한 협상 시한을 넘길 경우, 북한은 중단했던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북-미 협상은 파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재앙이 될 뿐이다.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면 양국 모두 ‘스톡홀름 결렬’을 털어버리고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다시 마주앉아야 한다. 상대가 양보할 때까지 줄다리기만 하고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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