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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0 17:31 수정 : 2005.01.10 17:31

(좌로부터) 이론물리학자 양전닝, 쉐더진 장시중의학원 교수, 주쉐친 상하이대 교수.



이론물리학자 양전닝 “연역적 사고 방해”
쉐더진등 “주석부분이 문제될 뿐” 반격
네티즌 중국 전통문화 찬-반 논쟁 비화

지난해 82살의 나이에 28살의 대학원생과 결혼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던 중국의 이론물리학자 양전닝(83)이 이번엔 “<역경>이 중국에서 근대과학의 발달을 가로막았다”고 주장해 해묵은 논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지난해 11월20일 양전닝은 중국 하이난성 징하이시의 보아오 아시아논단 회의센터에서 열린 중국과학기술협회 연례학술토론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왜 중국에서 근대과학이 싹트지 않았는지에 대해 토론해왔는데, 나는 <역경>과 큰 관계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서방의 근대 과학은 귀납법과 연역법 두 가지를 통해 발전할 수 있었다. 고대 중국문화에는 귀납법만 있을 뿐 연역법은 없었다. 중국에서 귀납법은 <역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역경>의 ‘천인합일’(하늘과 사람은 하나라는 사상) 관념은 중국에 연역적 논리가 생겨나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유클리드 기하학이 나타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양전닝의 발언이 알려지자 <역경> 연구 전문가들은 즉각 크게 반발했다.

먼저 류다쥔(61) 중국주역학회 회장(산둥대 교수)은 “양전닝은 <주역>에 관한 상식이 부족하다”며 “<주역>엔 귀납법도 있지만 연역적 방법론도 있다는 게 연구자들의 공통된 견해”라고 주장했다. 주쉐친(52) 상하이대 교수(역사학)는 지난해 말 <남방주말>에 발표한 ‘2004년 전통문화에 닥친 파란’이란 글을 통해 “양전닝이 중국 전통문화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 교수에 따르면 양은 지난해 말 중화문화의 부흥을 선언한 ‘갑신문화선언’에 서명했으면서 다른 한편으론 <역경>을 비롯한 중국 전통적 사유가 근대과학의 발전을 가로막았다고 비판했다는 것이다. 중국 전통문화의 가치를 찬양하던 입으로 다른 곳에선 중국 전통문화를 깎아내렸다는 것이다.

그는 양전닝이 중국에서 근대과학이 발전하지 않은 원인을 중국의 고대문화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는 데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유럽의 근대과학은 고대 그리스의 과학체계를 부정한 결과다. 유럽 근세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체계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체체계 등 고대 그리스 과학체계의 속박을 벗어던짐으로써 갈릴레오 물리체계와 코페르니쿠스 천체체계 등 근대 자연과학을 개척할 수 있었다. 근대 수학의 표지인 미적분 역시 유클리드 기하학을 벗어던진 결과 탄생할 수 있었다.”

쉐더진 장시중의학원 교수는 “양전닝의 발언은 충격적이었으나 주역 연구자들로 하여금 분발하도록 만드는 좋은 결과를 낳았다”며 “양전닝이 말한 ‘역경의 영향’이란 사실은 ‘역전의 영향’이라고 해야 옳다”고 수정했다. 서기전 1000년 전에 형성된 <역경>에는 ‘천인합일’의 관념이 없으나, 그에 대한 전국시대 철학자들의 해석인 <역전>에 와서 비로소 ‘천인합일’ 관념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신분의 존엄과 비천함을 긍정하고 미신을 선양하는 사상이 있어 중국 과학기술의 발전에 걸림돌이 됐다”는 것이다.

이런 논란이 일자 양전닝은 다시 “중국에서 근대과학이 발전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인터넷에는 <역경>을 연구하는 많은 늙은 학자들이 <역경> 비판을 막으려 하고 있지만 나는 내 논리를 견지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양전닝의 관점에 찬성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았다.

‘젠단’이란 네티즌은 <신화망>에 올린 글을 통해 “<역경>은 엄격한 논리적 추리 없이 감성적인 이해와 갑작스런 깨달음(돈오)에 의지하도록 하는 면이 있다”며 “이런 면모는 근현대과학과 전혀 다른 길”이라고 주장했다. ‘즈지에’란 네티즌은 “중국 문화의 가장 큰 결점 가운데 하나는 스승의 길을 존중한다는 명분 아래 사람들의 비판정신을 가리고 과학정신의 발전을 가로막아온 것”이라며 “이 전통사상의 속박을 벗어나지 못해 현대 중국인은 아직까지도 권위를 숭배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논쟁은 이제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찬반으로 비화해갔다. ‘추르셩춘차오’란 네티즌은 “오늘날 우리의 낙후성을 우리 문화에 돌리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며 “우리가 우리 조상에게 죄송하게 생각해야 하는가, 아니면 우리 조상이 우리에게 죄송하게 생각해야 하는가”고 반문했다. ‘부시지저우’란 네티즌은 “중국 전통철학은 한마디로 잘라 말해 노예철학”이라며 “좋은 철학이 없으면 좋은 과학도 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쉐더진은 “양전닝의 발언이 불지른 논쟁은 중국 사회가 아직도 전통문화의 가치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얻지 못했음을 보여준다”며, “사회가 개방해감에 따라 전통문화에 대한 막연한 고수나 서방가치에 대한 막연한 추종은 모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주역>이란 무엇인가

주역=점술서 ‘역경’+ 주석서‘역전’
전국시대 거치며 ‘철학’ 으로 발전

<주역>은 <역경>과 <역전>이라는 생성 연대가 다른 두 가지 책이 합쳐진 것이다. <역경>은 서기전 1000년 무렵 주나라 때 점을 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자연과 사회현상을 ‘하늘’ ‘땅’ ‘불’ ‘물’ 등 여덟가지 자연 원소로 환원시킨 뒤 64가지의 상황에 따라 길흉화복을 점치도록 만든 교본이다. 여기에 서기 전 200년께 전국시기 철학자들이 주석을 덧붙인 게 <역전>이다. <역전>은 ‘상전’ ‘계사전’ ‘설괘전’ ‘서괘전’ 등 관점이 조금씩 서로 다른 문헌이 종합된 것이다.

<역경>은 처음엔 점치는 책으로 등장했지만, 전국시기 일부 선진적인 <역경> 연구자들은 이를 단순히 길흉화복을 점치기 위한 책으로 보지 않고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어떤 길한 사태도 영원히 길할 수는 없고 어떤 흉한 사태도 영원히 흉할 수 없으므로 길한 점괘가 나오면 오히려 삼가야 하고 흉한 점괘가 나오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게 주역학파의 관점이다. 이 때문에 전국시기 유학자인 순자는 “<주역>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점을 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주역>의 체계가 길흉·화복이 서로 보완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점을 들어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현대물리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같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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