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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5 20:32 수정 : 2005.01.05 20:32

“지난 10년 간은 최악의 역경을 뚫고 위대한 승리와 기적을 이룩한 불멸의 연대기로 빛나고 있다.” “우리는 올해 농사를 잘 짓는 데 모든 역량을 총집중, 총동원하여야 한다.”

새해 신문 공동사설 형식으로 발표된 북한 쪽의 신년사는 어느 때보다도 수세적이다. ‘최악의 역경’을 이겨냈다고 하면서도 모든 역량을 농사에 쏟자고 외친다. 어떻게든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처절함이 느껴진다. 우리도 보릿고개를 넘어선 게 불과 한 세대 전이니, 강건너 불 보듯 할 일이 아니다.

세밑새해 모임에 가면 뜸했던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된다. 이번에는 예년과 달리 화끈한 공통 주제가 없었다는 게 특징이었다. 짜증나는 정치 얘기를 하고 경제를 걱정하다가 개인적인 관심사로 돌아가는 식이다. 그런 와중에 북한 문제가 빠지지 않은 것은 정말 모두 궁금하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두 가지다. 지금의 북한 체제는 유지될 수 있는가. 북한의 변화는 가능한가?

근사치이긴 하나 답은 있다. 우선 지금의 북한 체제가 곧 붕괴될 거라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다. 신년사가 주장하듯이, 지난 10년은 북한의 역사에서 한국전쟁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냉전 시기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옛 소련과 중국이 지원을 끊으면서 자력갱생의 길을 찾아야 했고, 연이은 가뭄과 홍수로 먹고 살기조차 쉽지 않았다.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숨지고 난 뒤 정치·군사적 지도력도 불확실했다. 그때에 견주면 지금은 모든 면에서 안정돼 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이라는 외부의 위협이 큰 몫을 한 사실은 역설적이다.

북한은 이미 바뀌고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가장 큰 계기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다. 1995년 초부터 최고 집권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몇 해 지나지 않아 변화를 선택했다. 이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위축되긴 했어도 북한의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중국의 개혁·개방 성과를 목격한 뒤 2002년 7월 제한적 시장경제 도입을 뜻하는 ‘경제관리 개선조처’를 취했다. 금강산이 개방되고 개성공단이 가동되기 시작했으며, 일단 좌절되긴 했으나 신의주 특구도 시도됐다. 이 정도면 북한의 변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대세라고 봐도 좋다.

많은 한국인이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묻는 것은 지금의 체제가 여러 부정적인 유산을 갖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너무 조급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도 독재체제에서 벗어나 지구촌의 일원이 되는 데 수십 년이 걸리지 않았는가? 북한에 가 보고 실망했다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지금의 북한은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80년대 초반보다 훨씬 낫다는 데 다수 학자들은 동의한다.

올해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이 있은 지 5돌이 되는 해다. 노무현 대통령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하고 있는 ‘셔틀 정상회담’이 남북 사이에 계속됐으면 지금쯤 구체적인 통일 방안을 논의하고 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다르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과 남북 당국 접촉조차 반년 넘게 중단되고 있다. 두세 달 안에 6자 회담이 열려 진전을 보지 못하면 회담 틀 자체가 깨질 수도 있다. 전망만 하고 있기에는 상황이 팍팍하다.

북한의 변화는 늘 우리의 선택과 함께한다. 가장 생생한 사례가 남북 정상회담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배타적인 민족 공조는 아니더라도 ‘한반도와 관련된 문제는 우리가 주도한다’는 자세는 옳다. 그때그때 생기는 현안에만 집중하다 보면 큰흐름을 놓치고 곁길로 빠지기 쉽다. “북한 핵문제, 남북 관계는 당장 우리에게 닥친 중요한 문제들이지만 제3국 사람에게는 급할 것이 없다”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인식은 타당하다.


새로운 출발점은 2차 정상회담 또는 그에 맞먹는 결단이 될 수밖에 없다. 핵문제 해결 이후에 회담을 하는 것이 낫다는 ‘출구론’도 일리가 있지만, 정상회담을 통해 핵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열지 못할 뚜렷한 이유도 없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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