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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6 19:26 수정 : 2019.09.06 19:35

출근길 지하철에 곱게 단장한 어르신이 노약자석에 앉아 연신 고개를 들어 안내방송에 따라 바뀌는 역이름을 확인하며 작은 수첩에 적고 있다. 여든이 넘은 그 분께 “무얼 그렇게 열심히 적나요?” 여쭤보니, 지하철 역이름을 공부하는 중이라고 한다. “우리 때는 다 그랬어요. 형편이 어려워서 학교를 제대로 못 다닌 탓에 공부를 다 못 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지하철 이름을 베껴 쓰다 보니 영어도 읽고 참 좋더라고요.” 수줍은 미소가 모나미 볼펜을 꼭 쥔 주름진 손끝에서도 묻어나는 듯하다. 공연한 질문에 답하느라 오늘은 왕십리부터 청구까지 네 역의 영어 이름을 못 쓰셨다. 죄송하다고 하자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노인네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주는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해요.” 기분 좋은 하루가 지하철 객실에 번졌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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