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목 끝 전봇대 위 어지럽게 뒤엉킨 전깃줄 사이로 휙 하고 검은 물체 하나가 지나간다. 도대체 뭐지 하는 마음에 올려다본다. 곁에 달린 감시카메라(CCTV)도 그 물체에 반응하는지 뛰리릭 돌아간다. 청설모였다. 어쩌다 청설모가 여기까지 왔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이내 사라지고 만다. 그날 이후 사흘을 그곳에서 기다렸다. 왔구나…!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청설모를 쫓아 뛰었다. 골목 사이를 지그재그로 뒤엉킨 전선을 타고 청설모가 달렸다. 산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청설모가 숲에서 오는 길도, 다시 숲으로 돌아가는 길도, 어지럽고 끊임없이 뒤엉킨 도시의 전선이었다.
렌즈세상 |
숲으로 가는 길 좀 알려주세요 |
며칠째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과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 아침. 청설모 한 마리가 어지럽게 엉킨 도심 전깃줄 위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서울 광장동과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아차산 등산로 입구에서 만난 놀란 눈망울의 청설모.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동네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내려온 것을 보니, 산속 마을도 꽁꽁 얼어붙어 먹이를 구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 정도 한파가 여러 날 지속되면 야생동물들도 춥고 배고플 게 틀림없다. 어떤 녀석은 마을 입구 감나무 끝에 달린 언 감을 따 먹고, 어떤 녀석은 감을 입에 문 채 전깃줄 위를 달음질한다. 숲에 두고 온 자식들에게 주려는 걸까, 아니면 자신만 알고 있는 비밀의 장소에 숨기려는 걸까. 실은 가으내 등산객들에게 다람쥐와 청설모를 비롯한 숲속 친구들의 먹이가 될 수 있도록 도토리와 밤을 주워 가지 말라고 일러줬건만, 사람들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영국에서는 해마다 1월21일을 ‘청설모를 위한 날’로 정해 도토리 등 먹이를 뿌려주는 행사를 한다니, 우리는 도토리를 산에 그대로 두고 오는 작은 실천이라도 제대로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사진·글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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