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05 19:26
수정 : 2020.01.06 02:37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뻔한 얘기지만 양반과 상민을 구별하는 사회는 능력과 상관없이 날 때부터 한 사람이 가게 될 삶의 방향이 얼추 정해져 있다. 인류사는 삶의 향배가 미리 정해진 사람의 수를 줄여온 역사다.
그런데 태생부터 꼬리표를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말에 여러 ‘가치’를 부여하는데, 보통은 부정 또는 긍정의 꼬리표를 달아 놓는다. 사전의 뜻보다 이렇게 은근히 달아 놓은 가치의 꼬리표가 영향력이 더 크다. 인간의 소통은 정보 공유보다는 감정과 평가의 교류가 목적인지도 모른다. 낙인은 은밀하되 노골적이다. 나도 ‘똑똑하다’는 말보다 ‘잘난 척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그러거나 말거나). 비슷한 모습이어도 ‘검소한’ 사람과 ‘인색한’ 사람은 전혀 다르다. ‘당당하다, 늠름하다, 굳세다’와 ‘도도하다, 되바라지다, 건방지다, 드세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차별의 강이 놓여 있다.
‘저지르다’는 ‘죄를 짓거나 잘못을 범한다’는 뜻이다. 아예 단어 자체에 ‘죄나 잘못’이 적혀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저지르다’ 앞에는 ‘범죄, 범행, 죄, 잘못’ 따위의 낱말이 드글거린다. 부정적인 힘이 하도 강해 ‘일’처럼 중립적인 말도 전염시켜 ‘일을 저지르다’라고 하면 뭔가 잘못을 범한 것 같다.
말의 교란과 삶의 확장은 이렇게 달린 꼬리표를 ‘분연히’ 떼어낼 때 일어난다. 아이들은 ‘저지레’를 하며 자란다. ‘저지르다’가 새로운 시도나 도전의 의미로, 궁극에 가서는 ‘감행’과 ‘전복’의 의미를 얻을 때까지 올해는 전에 없던 의지로 일을 저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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