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23 18:23
수정 : 2019.12.24 02:36
양이원영 ㅣ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
2020년을 앞둔 지금 1983년에 설치된 설비로 운영되는 시설을 신뢰할 수 있을까. 월성원전 1호기 얘기다. 7천억원을 들여서 ‘새것’처럼 수리했다고 하는데,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니 핵분열이 일어나는 원자로(압력관)와 제어용 전산기 교체에 5380억원을 썼고 일본 후쿠시마 후속 조처로 257억원을 썼다.
월성원전은 캐나다가 개발한 중수로 원전이다. 냉각재로 중성자가 하나 더 있는 중수소의 중수(무거운 물)를 쓰다 보니,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가 액체와 기체로 주변에 방출되는 양이 경수로 원전보다 10배가 많다. 비농축 천연우라늄을 연료로 쓰다 보니 고준위 핵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가 경수로 원전보다 5배 더 나온다. 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안전상의 이유로 더 넓은 땅이 필요해 경제성이 떨어진다. 이 원전은 전세계에서 약 10%밖에 되지 않는다.
원전 경제성은 곧 안전성의 척도다. 일반적으로 기술은 개발된 이후 반복된 생산활동으로 단가(비용)가 낮아진다. 원전은 반대다. 전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전 449
기까지 늘어났지만 원자력발전 단가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안전개선 비용이 계속 늘어났기 때문이다.
월성원전 1호기 이전에 수명을 연장한 캐나다의 포인트레프로 원전은 수명 연장을 위한 개선 비용으로 1조6천억원을 썼다. 그 후 사업자는 월성원전 1호기와 같은 노형으로 1983년에 같이 상업 가동한 젠틸리 2호기 수명 연장 가동을 위해 약 1조원을 쓰겠다고 평가했다.
캐나다원자력안전위원회 생각은 달랐다. 캐나다원자력안전위원회는 노후 원전을 수명 연장해서 가동하려면 신규 원전에 적용되는 기술 기준으로 통합안전성평가를 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에 따른 설비 개선 계획을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이 보고서를 비롯해 수명 연장하려는 원전의 안전성 자료는 공청회 참여자들에게 제공되고, 시민들에게 전문가 자문비를 지원해준다. 캐나다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공청회와 직접 의견 수렴을 통해 확인된 안전개선 사항을 사업자가 반영하도록 명한다
. 결국 젠틸리 2호기 수명 연장 총비용은 4조원으로 계산되었고 사업자는 수명 연장을 포기했다.
4조원의 내용은 다양하다. 그중 설비 개선 비용만 보면, 원자로 설비 교체로 8630억원, 터빈 교체 2030억원, 컴퓨터시스템 교체 780억원, 기타 관련 시스템 교체 3540억원, 주 시스템 외 개선 850억원으로
총 1조5천억원이다. 사업자가 처음부터 이렇게 안전개선 비용을 쓸 거라고 계획하지 않았다. 애초
사업자가 제출한 직접적인 안전개선 비용은 4500억원에 불과
했다. 안전성 연구 비용, 사전평가 비용 등에도 2300억원가량을 썼는데 설비 개선 때 생기는 노동자 피폭 영향까지 평가했다.
월성원전 1호기는 체르노빌 원전사고(1986년) 후 세계적으로 강화된 안전기준도 적용되지 않은 채 30년을 가동해온 원전이다. 그런 원전을 2022년까지 수명을 연장해 가동하려는 한국수력원자력(주)는 대한민국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신규 원전에 적용하는 안전기준에 따라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받지 못했다. 대한민국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월성원전 1호기 안전성에 관한 기본 자료를 위원들에게조차 열람만 허용했으며 외부 자문도 금지했다. 제대로 된 공청회도 없었고 직접 의견 수렴은 거부했다. 사업자는 월성원전 1호기 수명 연장을 위해 원자로 교체 비용 등으로 5600억원을 쓰고, 애초 계획된 터빈발전기 교체 비용 1347억원은 취소했다. 대신에 주민들에게 월성원전 1호기 수명 연장에 동의해달라며 뿌린 돈이 1300억원이다.
지금 월성원전 1호기는 설비 컴퓨터조차도 1983년 것 그대로다.
대한민국원자력안전위원회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사업자의 경제성을 확보하는 것인가, 국민의 안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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