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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6 17:28 수정 : 2019.12.07 02:33

이명석 ㅣ 문화비평가

기술이라는 승차권은 우리를 놀라운 미래로 데려간다. 어젯밤 나는 나사가 에스엔에스로 생중계하는 우주인의 유영을 보며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대화했다. 그런데 기술은 뜻밖에도 정반대의 방향, 과거로의 여행을 제안하기도 한다. 요즘의 나는 그 재미에 푹 빠졌다.

진눈깨비가 겨울을 재촉하던 날, 성의 없는 캐럴이 이어지는 상점가를 걸었다. 그러다 카페 앞에서 어떤 노래에 붙잡혔다. 마치 먼 고향, 하지만 내가 거기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곳에서 보내온 전파 같았다. 나는 가사 한 소절, 멜로디 한 마디라도 붙잡아보려 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내겐 무시무시한 기계가 있지. 스마트폰의 앱을 누르고 3초 정도 기다렸다. 잉크 스파츠의 ‘메이비’. 나는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고 유튜브로 들어갔다.

잉크 스파츠는 1940년대 전성기를 보낸 흑인 보컬 밴드다. 그런데 그 촌스러운 곡들이 굉장한 조회수를 얻고 있었다. 댓글을 읽자 알 수 있었다. 그 90% 이상은 ‘폴 아웃’이라는 게임 덕분이었다. 서기 2077년 핵전쟁으로 황폐해진 지구가 배경인데, 생존자들의 라디오에서 2차대전 전후의 곡이 흘러나온다. 어느 청년이 이 게임을 하는데 할머니가 놀란 얼굴로 다가왔단다. “네가 왜 이 노래를 듣니?” 그때부터 청년은 할머니와 음악 친구가 되어 옛 노래를 찾아 듣는다고.

국내에선 얼마 전 ‘온라인 탑골공원’이 화제가 되었다. 1990년대 후반 <에스비에스 인기가요>의 라이브 스트리밍에 사람들이 몰려와 채팅 파티를 한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복고 취향의 놀이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차원의 고고학이 만들어내는 현상이라 여긴다.

스윙댄스는 1930~40년대 크게 유행한 뒤 사그라들었다. 그러다 1980년대 세계 곳곳에서 스윙 리바이벌이 이루어졌다. 여기엔 가정용 브이티아르(VTR)의 보급이 큰 몫을 했다. 댄서들은 말로만 듣던 할리우드 영화 속 춤 장면을 보고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조그셔틀의 등장도 그들을 열광시켰다. 유튜브 시대엔 희뿌연 비디오를 알음알음 구해 복제할 필요가 없다. 풍성한 질과 양의 고전 영상을 어디서나 접속해 볼 수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미8군 무대의 노래와 춤이 어땠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얼마 전 한국영상자료원의 디지털 복원작인 영화 <워커힐에서 만납시다>를 찾았다. 아주 깨끗한 화질로 1960년대 최고 예능인들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미국 블루스 음악의 역사는 앨런 로맥스를 빼고선 상상할 수 없다. 그는 무거운 녹음장비를 들고 시골을 돌아다니며 소리꾼들을 찾았고, 우디 거스리와 머디 워터스를 세상에 알렸다. 포크와 블루스 붐이 일었던 1960년대만이 아니라 21세기에도 그의 곳간을 뒤지는 사람이 많다. 그래미상을 받은 영화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의 주제곡 ‘포 라자러스’도 그렇게 찾은 것이다.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엠비시> 라디오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도 이와 흡사한 프로젝트다. 나는 팟캐스트로 그 곳간을 뒤지며 생각한다. 이들 중 무엇이 지금 우리의 마음을 흔들 노래의 밑천이 될 수는 없을까? 내가 올해 들었던 가장 세련된 노래는 판소리 ‘수궁가’를 베이스 리듬 위에 올려놓은 이날치의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였다.

기술은 우리를 어떤 바다에 데려다놓았다. 눈앞의 바닷가엔 펭수 같은 반짝이는 파라솔, 개인방송의 어지러운 좌판, 가짜뉴스라는 쓰레기 더미가 있다. 나는 더 깊은 바다로 가자고 제안한다. 어딘가 분명 당신이 사랑할 만한 오래된 보물 더미가 있으리라. 그런 보물을 찾기에 우린 참 적절한 때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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