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27 18:21
수정 : 2019.11.28 13:23
전병유 ㅣ 한신대 교수·경제학
지난주에 통계청의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소득 하위 1분위(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가장 크게 늘어, 2015년 이래 악화하던 분배가 개선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가구 소득은 삶의 질과 행복, 그리고 사회적 후생 수준을 보여주는 일차 지표다. 노동시장·상품시장·자본시장의 변화와 더불어 인구·가족 구조의 변화와 정부 정책까지 반영된다.
하지만 가계동향조사는 표본조사인 만큼 당연히 표본 오차가 발생한다. 이전 분기 수치가 낮으면 다음 분기에 높아지는 기저효과(기준 시점에 따라 경제지표가 실제보다 위축되거나 부풀려진 현상)도 종종 나타난다. 2017년 조사를 폐지하기로 했다가 다시 되돌리는 과정에서 시계열(시간순으로 늘어놓는 계열)의 신뢰성도 훼손됐다. 조사 방법과 모집단 변경까지 겹치면서 해석의 불확실성을 키웠다. 언론과 정치권, 학계조차 각기 자기 필요에 맞게 해석하는 ‘통계의 정치화’가 과도했다. 지난해부터 자료가 안정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단기적 변화에 과도한 해석과 의미 부여는 자제해야 한다.
이런 한계에도 두 가지 사실은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정부의 재분배 기능이 강화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영업자의 사업소득이 줄어드는 것이다. 우선 인구 고령화, 자영업 침체, 일자리 기회 감소로 줄어들던 1분위 소득이 가장 크게 늘었다. 2015년 이래 악화하던 5분위 배율(하위 1분위 대비 상위 5분위 소득 비율)이 5.37로 떨어졌다. 가장 큰 기여가 11.4% 늘어난 이전소득(보조금·보험금·연금 등)이다. 지난 9월부터 5조원대 규모로 확대 지급되기 시작한 근로장려금(EITC)과 하위 1분위에 대한 기초연금 인상(25만원→30만원) 덕분이다. 그런데 1분위의 근로소득은 7분기 연속 줄었다. 정부 재정으로 저소득 가구의 소득을 보전했을 뿐이라는 비판 보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하위 1분위는 이전소득 비중이 약 49%다. 사적 이전소득을 뺀 순수 공적 이전소득은 30%대다. 복지가 취약하다는 미국도 이 비율이 60%가 넘고 유럽연합(EU) 28개국에서도 평균 55% 수준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저소득 가구는 이전소득에 의존하기보다 저임금 일자리를 얻어서 시장소득을 벌충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이런 개인과 가구의 경제적 행위 양식이 바뀌고 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과거 시스템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전소득은 지난해 평균 17% 늘었고, 올해도 평균 12% 가까이 늘고 있다. 그동안은 이 수치가 한 번도 10%를 넘긴 적이 없었다. 복지제도를 도입하면서도 복지 예산은 보수적으로 편성·집행했던 과거 정부와는 다른 모습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적 사회지출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 수준이지만, 증가율은 회원국 평균의 두 배다. 고령화에 따라 늘고 있는 정부의 복지 지출이 더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형태로 사용될 수 있도록 정교한 제도 조정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자영업자 소득인 사업소득은 5% 줄었고 5분기 연속 감소 추세다. 근로자 외 가구(자영업 가구·무직 가구)가 상위 분위에서 줄어들고 하위 분위에서 늘어나는 ‘자영업의 영세화’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2010년 이래 2017년만 빼고 거의 해마다 이어지는 현상이다. 다만 2018년 이후 더 두드러진다. 임금주도성장에 그치지 않고 소득주도성장을 강조해온 현 정부에게는 아픈 대목이다. 온라인 거래와 플랫폼 비즈니스 확대와 같은 새로운 도전과 임대료나 카드 수수료 같은 과거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자영업에 대한 미래 비전은 물론이고 자영업 정책은 한마디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잉 자영업 구조조정과 사회안전망 확충도 필요하겠지만, 현대적인 자영업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정책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피케티는 한 사회의 불평등 수준은 기술 변화나 글로벌화와 같은 경제 변화의 결과라기보다는 사회가 정치적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임금노동 내부의 격차는 줄어들고 있다. 저임금노동자 비율도 오이시디 평균에 근접해가고 있다. 더 평등한 사회로 접근 방법은 재정을 통한 국가 복지의 확충과 시장에서 자영업 살리기를 어떻게 잘 결합해서 설계하는가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0여 년에 걸친 정책 실험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도입하기로 한 ‘국민취업지원제도’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예산 삭감 주장부터 철회됐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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