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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9 18:51 수정 : 2019.10.30 02:37

전교조와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등 71개 교육단체 회원들이 28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정시 확대 반대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전교조와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등 71개 교육단체 회원들이 28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정시 확대 반대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전신인 입학사정관제는 1920년대 미국에서 유대인의 입학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어찌 보면 ‘인종차별’을 위한 제도였던 셈이다. 하지만 점차 성적뿐 아니라 인성, 운동실력, 지역 등 기준을 요소로 포함시키면서 다양한 인재를 선발하는 통로가 됐다. 입시제도는 그 사회가 쓰는 것에 따라 변하는 것이지, 100% 선악으로 볼 일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시 확대’ 발언이 몰고온 평지풍파에 비하면, 지난 25일 정부의 발표는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어리둥절할 정도다. 자사고·특목고의 일반고 전환이 실제 이뤄지는 건 2025년 다음 정권의 일이다. 서울 소재 몇몇 대학만 타깃이지만, 그곳들이 이른바 상위권 대학이고 ‘정시 비중 상향’ 언급만 도드라진 상황이니 당분간 자사고 등은 ‘대입에 유리하다’는 정부 인증을 받았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6년 뒤 전환이 순조로울까. 완전 도입을 다음 정권으로 미룬 고교학점제 역시 마찬가지다. “입시가 민원처리인가” “정치적 계산만 하다가 엉거주춤”. 통화한 교육전문가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런데 냉정하게 돌아보면 한국의 교육정책이 ‘정치적’이지 않을 때는 별로 없었다. 당장 자유한국당의 정시 확대 당론도 이명박 정부가 입학사정관제의 전도사였음을 떠올리면 이런 모순이 없다. 대학의 선발자율권을 노래해온 이들인지라 정시 50% 이상 ‘강제’가 진지한 말인지조차 의문이다. ‘그러니 피장파장’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전문가들과 국민 여론이 갈리는 지점에서 종종 정치는 여론 편에 서왔다. 정치권이 교육철학이 없고 비겁한 탓이라고 말하긴 쉽다. 하지만 국민 공감대가 적은 정책은 선의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 또한 외면할 수 없다.

정시-수시 논쟁이 대표적이다. 최근 수능에 더 부모의 경제력이 작용한다든지 학종 도입 뒤 서울대에 진학시킨 고교가 증가했다든지 하는 ‘학종 옹호론’이 교육계에 거셌다. 적어도 학교가 살아난 효과는 분명히 있다. 그런데 이런 온갖 통계를 들이대도 ‘정시가 공정하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과외를 받든 암기에 올인하든 수능은 내가 시험쳐서 받는 성적이지만 학종은 교사와 대학이 ‘생살여탈권’을 쥔 전형이라 느낀다. 1~3등급 밖 아이들도 챙겨주는 헌신적인 교사를 만나는 일은 ‘로또’에 가깝다. 교육평론가 이범씨는 “격차가 심해진 사회에서 ‘공정’에 대해 계층까지 고려하는 형평성이 아니라 개인의 실력에 따른 비례성의 요구가 강해진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많은 국민들이 설령 정시가 확대돼 부유한 가정에서 상위권 대학에 더 많이 가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학종에서 나오는 불공정성보다 더 공정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는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은, 참담하지만 틀린 진단은 아니다.

물론 입시제도 변경이 조국 전 장관 의혹이 드러낸 교육불평등의 민낯을 덮을 순 없다. 해결책의 전부도 아니다. 하지만 입시 논의는 무의미하다거나 지적 학습을 무시하는 듯한 방향은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국민수용성을 고려하되 지금을 이행기로 삼아 공교육 정상화의 방향을 잃지 않아야 한다. 유성룡 1318진학연구소 소장은 “만일 수능이 아주 어렵거나 아주 쉽게 나오면 당장 여론이 바뀔 거다. 여론에 따르는 건 너무 불안한 정책이고 학부모만 의식한 것”이라며 “학생들을 중심으로 놔달라”고 말한다.

정부는 새달 구체안을 내놓을 예정인데, 첫째 위장된 ‘고교등급제’를 한다는 의심을 받는 서울 소재 대학에 ‘정시 상향’이 아니라 ‘한 전형의 특정 비율 이상 금지’ 방식을 검토했으면 한다. 정시 비율만 정할 경우, 정시만 어느정도 올리고 지금 서울대처럼 나머지는 학생부 교과 없이 100% 학종으로만 뽑는 곳이 잇따를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학종 개선과 관련해선 ‘항목 폐지’ 방식만으론 이제 한계에 달했음을 인식했으면 한다. 한 학생이 100개 동아리를 하거나 제1저자 소논문을 제출할 여지는 차단된 지 오래다. 자기소개서나 자율·동아리·봉사·진로활동 등 폐지도 언급되는데 무조건 없애는 게 능사가 아니라 학종이 작동하지 않는 지점이 뭔지, 교사의 업무량이나 질은 어떤지, 상위 20%가 아닌 아이들도 적성과 희망대로 동아리 등 활동이 보장되는지 분석과 대안 마련이 먼저다. 마지막으로 지역균형·기회균등 전형은 ‘현상유지’가 아니라 더 과감한 확대가 필요하다. 비례성 요구가 높은 상황에서 형평성은 정책으로 보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악’이더라도 여기서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는가.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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