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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23 17:56 수정 : 2019.09.23 19:36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일본은 아기보다 노인용 기저귀가 더 많이 팔리는 나라다. 한국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출산율은 일본보다 낮고 고령화의 속도는 더 빠르다. 우리에게도 곧 닥쳐올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에 대응하여 얼마 전 정부가 생산연령인구 확충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특히 2022년부터 65살까지 정년 연장을 위한 계속고용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기로 했다. 노인빈곤이 심각한데 국민연금 수급 연령이 2033년부터 65살로 높아지는 것도 한 배경일 것이다.

이 제도는 일본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1998년 60살 정년을 의무화한 뒤, 2006년부터 단계적으로 정년을 연장하여 2013년 65살로 높였다. 일본 기업은 정년 연장, 계속고용제도 또는 정년 폐지를 선택할 수 있는데, 60살 퇴직 이후 계약직 등으로 더 낮은 임금을 주며 계속고용제도를 채택한 기업이 약 80%다. 이제 70살 정년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정년 연장은 별다른 사회적 갈등을 낳지 않았다. 일손부족 문제도 심각했지만, 정부가 오랫동안 준비를 했고 노사의 이해가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2013년 이후 아베노믹스를 배경으로 경기가 회복되어 청년실업률이 뚝 떨어진 것도 도움이 됐다.

일본과 정책은 같지만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기업계는 비용 부담을 들어 반발하고 있지만, 가장 큰 우려는 정년 연장이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공공부문이나 대기업의 정규직 등 일부 노동자들에게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직장에서 수십년을 일하고 정년을 맞는 노동자가 적다. 전체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약 6년으로 일본의 절반에 불과하며 중소기업 노동자의 근속연수는 훨씬 더 낮다.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청년들이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중년 노동자들에게 정년 연장은 신규 고용을 줄여 오히려 나쁜 소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노동시장에는 임금의 연공성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 문제다. 국제적으로 비교해보면 한국에서 30년 이상 근속한 노동자들의 연봉은 입사 때와 비교할 때 3.3배로 높아지는데, 일본은 2.5배 유럽은 1.7배로 낮다. 연공급은 근속연수가 높을수록 임금이 생산성에 비해 높아져 기업들은 노동자들이 50대가 되기도 전에 퇴직 압력을 넣고, 정년 연장의 부담도 더욱 커진다. 연공급의 원조인 일본은 오랫동안 임금체계를 개편해왔고 2000년대 이후에는 일본식 직무급인 역할급이 확산됐다.

한국의 정년 연장이 기득권층에게만 이득이 되지 않으려면 연공급 개혁 혹은 임금피크제 실시가 필요할 것이다. 특히 정년이 보장되면서도 처우가 좋은 공공부문의 솔선수범이 요구되고 있다. 일반공무원 하급직은 그리 높지 않지만, 작년 전체 공무원의 평균 연봉은 약 6264만원이었고 공기업 전체의 평균 연봉은 7843만원에 이르렀다. 반면 전체 노동자들의 평균 연봉은 3634만원이었고 상위 10%의 하한은 6950만원이었다. 공무원시험 경쟁률이 엄청나다고 하지만 청년들은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셈이다.

물론 공공부문의 고용 비중이 다른 선진국들보다 낮으며 소방관이나 집배원 등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생각하면, 정부도 추진하듯 공공부문의 고용 확대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호봉이 높은 장기 근속자들의 임금을 억제하는 등 기득권을 줄이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만 공공부문 개혁이 말만 무성한 것은 아마도 잘 조직된 공공부문의 표를 의식하는 정치적 이유 때문일 것이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는 교육을 통해 부가 대물림되는 세습자본주의의 기회의 불평등 문제를 제기했다. 기회의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결국 부와 소득의 불평등 문제와 맞서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는 또한 자본과 권력 그리고 언론의 결탁에 기초한 법제도의 포획 문제도 돌아보게 만든다. 이러한 부정부패가 불공정과 불평등의 뿌리가 됐으니 사법과 검찰개혁도 물론 필요한 과제다.

그러나 기득권은 금수저나 재벌 혹은 검찰의 권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상위 10%의 높은 소득집중도로 대표되는 한국의 불평등은 공공부문이나 대기업 정규직 노조 등 상층 노동자들의 기득권과 관련이 작지 않다. 정년 연장이 불평등의 심화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진정으로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득권을 억제하는 노동시장의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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