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우리 시대 중요한 정치적 의제는 남북 간 평화, 권력기관의 개혁 등인 것 같다. 전쟁 상태를 종식하거나 대립 관계를 해소하는 것, 검찰로 대표되는 특정 권력 집단의 권력 남용을 방지하는 효과적인 시스템을 모색하는 일은 분명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 외에 최근 다른 어떤 정치 의제가 정치권과 언론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것이 많지 않다. 지난 한달여는 사실상 단 하나의 의제가 지배하기도 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은 검찰개혁이라는 자신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각종 정치적, 법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장관으로서의 역할을 맡겠다고 말했고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만큼 많은 이들이 그를 지지하고 있다. 그 가운데 나는 조 장관이 청문회에서 박지원 의원의 질문에 답하면서 “동성혼은 아직 이르다”는 의견을 밝힐 때만 아주 살짝, (적어도 나에게는) 중요한 의제가 제도정치에 잠시 등장했다 사라진 순간을 보았을 뿐이다. 우리는 각자 놓여 있는 사회적 위치에서 사태를 바라보고 그 중요성을 평가하기 마련이다. 내 시점에서는 ‘동성혼’이 전혀 시기상조의 정치적 의제가 아니다. 여성과 남성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기르는 ‘정상가족’ 시스템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그래서 다른 대안을 찾고자 하는 사회적 욕구를 주위에서 빈번히 확인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꿈꾸는 동성애자 지인들이 있음은 물론이고, 비혼공동체를 실험하는 사람들, 여성들끼리 새로운 가족 형태를 구성하려는 노력도 쉽게 발견한다. 가족에 대한 관념이 급변하고 있음을 느끼기에 ‘정상가족’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가족제도를 고민하는 일은 정치공동체가 다뤄야 할 시급한 의제로 보인다. 찬반을 떠나 일단 중요한 ‘의제’가 되는 일 자체가 정치권력을 지닌 사람들에게 의존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그리고 국가의 주요 정책과 자원 배분을 결정하는 관료들이 지배하는 정치적 공론장은 최근 잘 알려졌듯 특정 인구 집단, 즉 50대에서 60대, 1980년대 전후 고시에 합격했거나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로서 재산은 평균 37억원 정도를 보유하고 아이와 남편, 아내로 구성된 ‘정상가족’ 구성원들이다. 자유한국당 정권보다는 큰 기대를 걸었던 노동과 일자리 분야를 보자.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와 달리 노동조차 최근에는 관심에서 멀어지는 듯하다. 이주노동자와 스무살 청년을 포함한 수많은 노동자들을 죽인 산업재해와 톨게이트 수납원들의 처절한 시위도, 일본에 대한 대응이나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논란의 100분의 1도 조명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노동과 일의 개념 자체가 완전히 변하는 전환기에 있음에도 그에 대한 대비가 정치적 의제로 거의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가 주장하듯 “고용이 구조적으로 완전히 소멸하는” 현실 앞에서, 모든 것이 자동화되는 미래를 코앞에 두고 ‘일’의 의미 자체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 것인가? 아쉽게도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위원회’는 누리집에 가야 찾아볼 수 있는 회의록에서나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늘 시끄러운 정치권이지만 정작 그 논란의 다수가 북한이나 일본, 검찰이나 사법부라는 키워드로 수렴된다는 점은 우리 정치의 빈곤을 말해준다.(최근 어떤 정치인들은 법무부 장관의 키가 185㎝인지를 가지고도 논란 중이다.) 권력기관 개혁이나 남북 관계를 둘러싼 정치 의제들은 우리의 삶에 매우 중요하지만, 지금 모든 언론과 정치인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한국 정치의 주요 의제가 나를 비롯한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들이 50대쯤 겪게 될 엄청난 ‘해일’을 대비하는 데에도 과연 적절할지 확신이 없다. 37억원의 재산과 대개 다른 나라의 시민권을 동시에 가진 자녀들로 구성된 ‘정상가족’의 가부장 정치인들과 달리, 거대한 해일을 (실리콘밸리나 베이징이 아닌) 한국에서 그대로 맞이할 대다수의 한국 청년들에게는 조국, 윤석열, 아베, 김정은, 트럼프라는 이름들만큼이나 중요한 의제들이 있을 것이다.
칼럼 |
[공감세상] 검찰, 북한, 일본만큼이나 중요한 / 김원영 |
변호사·<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우리 시대 중요한 정치적 의제는 남북 간 평화, 권력기관의 개혁 등인 것 같다. 전쟁 상태를 종식하거나 대립 관계를 해소하는 것, 검찰로 대표되는 특정 권력 집단의 권력 남용을 방지하는 효과적인 시스템을 모색하는 일은 분명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 외에 최근 다른 어떤 정치 의제가 정치권과 언론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것이 많지 않다. 지난 한달여는 사실상 단 하나의 의제가 지배하기도 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은 검찰개혁이라는 자신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각종 정치적, 법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장관으로서의 역할을 맡겠다고 말했고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만큼 많은 이들이 그를 지지하고 있다. 그 가운데 나는 조 장관이 청문회에서 박지원 의원의 질문에 답하면서 “동성혼은 아직 이르다”는 의견을 밝힐 때만 아주 살짝, (적어도 나에게는) 중요한 의제가 제도정치에 잠시 등장했다 사라진 순간을 보았을 뿐이다. 우리는 각자 놓여 있는 사회적 위치에서 사태를 바라보고 그 중요성을 평가하기 마련이다. 내 시점에서는 ‘동성혼’이 전혀 시기상조의 정치적 의제가 아니다. 여성과 남성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기르는 ‘정상가족’ 시스템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그래서 다른 대안을 찾고자 하는 사회적 욕구를 주위에서 빈번히 확인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꿈꾸는 동성애자 지인들이 있음은 물론이고, 비혼공동체를 실험하는 사람들, 여성들끼리 새로운 가족 형태를 구성하려는 노력도 쉽게 발견한다. 가족에 대한 관념이 급변하고 있음을 느끼기에 ‘정상가족’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가족제도를 고민하는 일은 정치공동체가 다뤄야 할 시급한 의제로 보인다. 찬반을 떠나 일단 중요한 ‘의제’가 되는 일 자체가 정치권력을 지닌 사람들에게 의존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그리고 국가의 주요 정책과 자원 배분을 결정하는 관료들이 지배하는 정치적 공론장은 최근 잘 알려졌듯 특정 인구 집단, 즉 50대에서 60대, 1980년대 전후 고시에 합격했거나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로서 재산은 평균 37억원 정도를 보유하고 아이와 남편, 아내로 구성된 ‘정상가족’ 구성원들이다. 자유한국당 정권보다는 큰 기대를 걸었던 노동과 일자리 분야를 보자.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와 달리 노동조차 최근에는 관심에서 멀어지는 듯하다. 이주노동자와 스무살 청년을 포함한 수많은 노동자들을 죽인 산업재해와 톨게이트 수납원들의 처절한 시위도, 일본에 대한 대응이나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논란의 100분의 1도 조명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노동과 일의 개념 자체가 완전히 변하는 전환기에 있음에도 그에 대한 대비가 정치적 의제로 거의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가 주장하듯 “고용이 구조적으로 완전히 소멸하는” 현실 앞에서, 모든 것이 자동화되는 미래를 코앞에 두고 ‘일’의 의미 자체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 것인가? 아쉽게도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위원회’는 누리집에 가야 찾아볼 수 있는 회의록에서나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늘 시끄러운 정치권이지만 정작 그 논란의 다수가 북한이나 일본, 검찰이나 사법부라는 키워드로 수렴된다는 점은 우리 정치의 빈곤을 말해준다.(최근 어떤 정치인들은 법무부 장관의 키가 185㎝인지를 가지고도 논란 중이다.) 권력기관 개혁이나 남북 관계를 둘러싼 정치 의제들은 우리의 삶에 매우 중요하지만, 지금 모든 언론과 정치인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한국 정치의 주요 의제가 나를 비롯한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들이 50대쯤 겪게 될 엄청난 ‘해일’을 대비하는 데에도 과연 적절할지 확신이 없다. 37억원의 재산과 대개 다른 나라의 시민권을 동시에 가진 자녀들로 구성된 ‘정상가족’의 가부장 정치인들과 달리, 거대한 해일을 (실리콘밸리나 베이징이 아닌) 한국에서 그대로 맞이할 대다수의 한국 청년들에게는 조국, 윤석열, 아베, 김정은, 트럼프라는 이름들만큼이나 중요한 의제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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