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종북좌빨이니 강남좌파니 극우꼴통이니 하는 말을 동원하며, 그 말을 듣는 본인이 수긍하지 않을 분류법을 남에게 들씌우는 사람들의 의도는 뭘까. 특히나 강남좌파라는 말에서는, 흑인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는 백인을 ‘니거러버’(깜둥이를 좋아하는 자라는 뜻의 비칭)라고 부르며 빈정대던 인종주의자들의 음험한 악성을 떠올리게 된다.” 약 한달 전 정인진 변호사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내게 ‘보수냐 진보냐’ 묻는 이들에게”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 말이다. 이분법과 진영논리에 반대하면서 회색지대의 가치를 역설하는 그의 주장엔 뜨거운 지지를 보낸다. 다만 ‘강남좌파’라는 말에 대해선 좀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싶다. ‘강남좌파’를 정 변호사처럼 강한 반감을 느낄 만한 용도로 쓰는 사람이 적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강남좌파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의 ‘리무진 진보주의자’, 영국의 ‘샴페인 사회주의자’, 프랑스의 ‘캐비어 좌파’, 캐나다의 ‘구찌 사회주의자’, 오스트레일리아의 ‘샤르도네 사회주의자’ 등에 상응하는 게 바로 강남좌파다. 모두 다 좋은 뜻으로 쓰는 말은 아니지만, ‘엘리트 독식’이라는 서구 정치의 딜레마를 가리키는 용어로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 우파가 좌파를 폄하하기 위한 용도로 쓴다고 하더라도, 좌파는 그런 폄하에 상당한 근거가 있음을 인정하고 성찰과 변화의 근거로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국 국회의원의 재산은 1인당 평균 37억2800만원(2017년 기준)으로 일반 가구 평균의 12.6배에 달한다. 여야, 진보-보수의 차이는 별로 없다. 민주화 투쟁을 하던 시절과는 달리 오늘날엔 주로 먹고사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사람들이 정계 진출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경험에 비춰보자면, 앞으로 한국에서도 부자들이 정치를 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강남좌파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강남좌파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일단 감사를 드려 마땅한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걸 인정할 필요가 있다. 부자들이 서민을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하지 않은가. 대부분 학벌권력도 막강한 그들이 진보적 가치를 역설하는 건 한국과 같은 ‘학벌 공화국’에선 서민에게 큰 힘이 된다. 상층에도 진보가 있고 하층에도 보수가 있다는 건 사회적 갈등의 양극화를 막는 데에도 기여한다. 물론 강남좌파의 부정적인 면도 있다. “강남좌파여, 얼굴에 기름기 넘치면서 명예마저 가지려는 ‘심보’는 뭐냐”는 식의 비판도 있지만, 이런 비판엔 동의하기 어렵다. 명예가 정당하게 얻어지는 것이라면 얼굴의 기름기 여부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강남좌파의 문제는 좀 더 큰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가용성 편향’의 문제다. 가용성 편향은 우리가 흔히 쓰는 “노는 물이 어떻다”는 식의 표현을 원용하자면, ‘물 편향’이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계급의 사람들이 끼리끼리 어울리는 물의 영향을 받다보면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의 사정을 헤아리기 어렵다. 강남좌파는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진보의 가치를 역설하는 데엔 능하지만, 서민의 절박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엔 무관심하거나 무능할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론, ‘도덕적 면허 효과’의 문제를 들 수 있다. 도덕적 면허는 사회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그런 경력으로 갖게 되는 도덕적 우월감을 말한다. 그 정도가 지나치면 독선과 오만을 낳고, 공감 능력을 퇴화시켜 자기 객관화를 방해한다. 강남좌파의 화려한 경제자본과 학벌자본은 이런 문제를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 강남좌파 논쟁은 이 두가지 문제의 해결이나 완화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강남좌파라는 용어 자체가 음험한 느낌을 준다면 다른 용어로 바꿔도 무방하겠지만, 흔히 대체어로 쓰이는 ‘위선 좌파’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2018년 3월 기준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과 행정부의 차관급 이상 공직자 206명 가운데 65명(32%), 국회의원 287명 중 74명(26%)이 강남 3구에 집을 갖고 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겠다. 많은 유권자의 입장에서 정치는 좌우의 싸움도 아니고, 진보-보수의 싸움도 아니다. 기득권 엘리트가 보다 나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그들만의 싸움일 뿐이다. 강남좌파론은 정치가 출세와 입신양명의 도구로 기능하는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해하는 게 옳다. 강남좌파를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의 용도로만 쓰는 건 너무 비생산적이며, 강남좌파론에 대한 심각한 오해다. 강남좌파를 긍정적 의미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힘은 바로 강남좌파에게 있다.
칼럼 |
[강준만 칼럼] ‘강남좌파’에 대한 오해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종북좌빨이니 강남좌파니 극우꼴통이니 하는 말을 동원하며, 그 말을 듣는 본인이 수긍하지 않을 분류법을 남에게 들씌우는 사람들의 의도는 뭘까. 특히나 강남좌파라는 말에서는, 흑인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는 백인을 ‘니거러버’(깜둥이를 좋아하는 자라는 뜻의 비칭)라고 부르며 빈정대던 인종주의자들의 음험한 악성을 떠올리게 된다.” 약 한달 전 정인진 변호사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내게 ‘보수냐 진보냐’ 묻는 이들에게”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 말이다. 이분법과 진영논리에 반대하면서 회색지대의 가치를 역설하는 그의 주장엔 뜨거운 지지를 보낸다. 다만 ‘강남좌파’라는 말에 대해선 좀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싶다. ‘강남좌파’를 정 변호사처럼 강한 반감을 느낄 만한 용도로 쓰는 사람이 적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강남좌파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의 ‘리무진 진보주의자’, 영국의 ‘샴페인 사회주의자’, 프랑스의 ‘캐비어 좌파’, 캐나다의 ‘구찌 사회주의자’, 오스트레일리아의 ‘샤르도네 사회주의자’ 등에 상응하는 게 바로 강남좌파다. 모두 다 좋은 뜻으로 쓰는 말은 아니지만, ‘엘리트 독식’이라는 서구 정치의 딜레마를 가리키는 용어로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 우파가 좌파를 폄하하기 위한 용도로 쓴다고 하더라도, 좌파는 그런 폄하에 상당한 근거가 있음을 인정하고 성찰과 변화의 근거로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국 국회의원의 재산은 1인당 평균 37억2800만원(2017년 기준)으로 일반 가구 평균의 12.6배에 달한다. 여야, 진보-보수의 차이는 별로 없다. 민주화 투쟁을 하던 시절과는 달리 오늘날엔 주로 먹고사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사람들이 정계 진출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경험에 비춰보자면, 앞으로 한국에서도 부자들이 정치를 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강남좌파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강남좌파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일단 감사를 드려 마땅한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걸 인정할 필요가 있다. 부자들이 서민을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하지 않은가. 대부분 학벌권력도 막강한 그들이 진보적 가치를 역설하는 건 한국과 같은 ‘학벌 공화국’에선 서민에게 큰 힘이 된다. 상층에도 진보가 있고 하층에도 보수가 있다는 건 사회적 갈등의 양극화를 막는 데에도 기여한다. 물론 강남좌파의 부정적인 면도 있다. “강남좌파여, 얼굴에 기름기 넘치면서 명예마저 가지려는 ‘심보’는 뭐냐”는 식의 비판도 있지만, 이런 비판엔 동의하기 어렵다. 명예가 정당하게 얻어지는 것이라면 얼굴의 기름기 여부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강남좌파의 문제는 좀 더 큰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가용성 편향’의 문제다. 가용성 편향은 우리가 흔히 쓰는 “노는 물이 어떻다”는 식의 표현을 원용하자면, ‘물 편향’이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계급의 사람들이 끼리끼리 어울리는 물의 영향을 받다보면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의 사정을 헤아리기 어렵다. 강남좌파는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진보의 가치를 역설하는 데엔 능하지만, 서민의 절박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엔 무관심하거나 무능할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론, ‘도덕적 면허 효과’의 문제를 들 수 있다. 도덕적 면허는 사회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그런 경력으로 갖게 되는 도덕적 우월감을 말한다. 그 정도가 지나치면 독선과 오만을 낳고, 공감 능력을 퇴화시켜 자기 객관화를 방해한다. 강남좌파의 화려한 경제자본과 학벌자본은 이런 문제를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 강남좌파 논쟁은 이 두가지 문제의 해결이나 완화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강남좌파라는 용어 자체가 음험한 느낌을 준다면 다른 용어로 바꿔도 무방하겠지만, 흔히 대체어로 쓰이는 ‘위선 좌파’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2018년 3월 기준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과 행정부의 차관급 이상 공직자 206명 가운데 65명(32%), 국회의원 287명 중 74명(26%)이 강남 3구에 집을 갖고 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겠다. 많은 유권자의 입장에서 정치는 좌우의 싸움도 아니고, 진보-보수의 싸움도 아니다. 기득권 엘리트가 보다 나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그들만의 싸움일 뿐이다. 강남좌파론은 정치가 출세와 입신양명의 도구로 기능하는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해하는 게 옳다. 강남좌파를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의 용도로만 쓰는 건 너무 비생산적이며, 강남좌파론에 대한 심각한 오해다. 강남좌파를 긍정적 의미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힘은 바로 강남좌파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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