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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04 16:19 수정 : 2005.02.04 16:19

이번 설은 월요일이란 낀 하루를 쉬게 되면 일주일 정도의 연휴가 되는 셈이니 겨레의 명절을 맞는 느낌은 훨씬 더 여유로울듯 싶다.

고향길을 앞둔 설레는 마음과 가족들과의 오붓한 시간을 앞두고 핵 문제가 어울릴 리 만무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다시 꺼내드는 ‘눈치없음’을 용서하길 바란다.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닐 뿐더러 설만 지나면 곧바로 부닥치게 될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스콧 매클렐런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할 준비가 됐다고 북한 <중앙통신>이 보도했다는데, 미국의 입장은 뭔가?” 물론 <중앙통신>은 그런 보도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고, 그 질문은 결국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이 문제는 북한을 포함해 6자 회담 참가국 두루 부닥뜨릴지도 모를 심각한 문제이자 올해 한반도 최대의 ‘화두’가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지난 1월11~14일 북한을 방문했던 커트 웰던 미국 하원의원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말이라면서 “북한은 핵무기 보유 국가라고 선언했다”고 전했다. 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웰던 의원에게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사례에서 우리(북한)가 깨달은 것은 핵무기를 보유할 때에야 비로소 외부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고 말한 사실도 함께 공개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임을 선언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북한이 아예 핵실험으로 핵무기 보유국을 선포한다면 남북관계는 물론, 한반도의 정치·군사·안보 지형은 예측 불능의 지각변동에 휩싸일 것이다. 이는 북한에도 되돌이킬 수 없는 매우 어려운 선택임이 틀림없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셀리그 해리슨은 자신의 수십년에 걸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연구 성과를 모아 <코리안 엔드게임>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엔드게임이란 서양장기인 체스에서 말들이 거의 죽어 단 몇 수만에 승부를 가릴 수 있는 최후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를 말한다. 큰 흐름에서 한반도는 결정적인 국면을 맞았다는 뜻인데, 북한 핵이야말로 지금 ‘엔드게임’에 와 있다. 1970년대 국제정치를 좌우했던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과 이란의 핵 확산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까지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가?”고 물었다. 8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오르면 북핵을 둘러싼 공방은 이제 20년 가까이 된다. 한반도의 탈냉전이라는 관점에서도 이제 마지막 관문에 와 있는 것이다.

늦어도 3월 중에는 열릴 것으로 보이는 4차 6자 회담은 그냥 네번째 회담은 아닐 것이다. “모든 논쟁은 시간의 긴급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탁상공론이 될 수 있다”는 키신저의 말은 6자 회담에도 해당된다. 전문가들은 4차 회담에서도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 6자 회담은 완전히 무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조지 부시의 2기 행정부는 두 가지 선택뿐이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 하나는 대결전략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의 핵무기에 맞서 제재의 채찍을 드는 것일 텐데, 이는 필경 뒷북을 치는 일이거니와 그 효과 또한 의문일 수밖에 없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핵무기 보유국 발언은 최후통첩성 협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체스에서처럼 승부를 가릴 시간이 온 것이다. 그건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느냐가 아니라 협상이냐 극한 대결이냐의 선택이다. 지난 94년에도 한반도는 갈림길에 있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가 있었지만 당시 김일성 주석의 핵 동결 결정은 전쟁 위기를 남북 정상회담과 제네바 합의로 바꾸는 실마리가 됐다. 북한은 이미 ‘(핵) 동결 대 (에너지) 보상’을 내놓았다. 동결에서 핵 폐기를, 에너지 지원에서 대북 적대정책의 해소로 이어지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 어딘가에서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길잡이가 필요한 건 아닐까.

강태호/정치부 차장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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