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1.30 16:43 수정 : 2005.01.30 16:43

유지은씨의 ‘책임 공방으론 끝나지 않을 악순환의 고리’를 읽고

연예인 문건 파동이 시사하는 바가 ‘연예계 내 체제 개선’이 되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사건의 진짜 도화선은 인터넷망을 매개로 해 ‘익명’의 탈을 쓴 채 행해지는 무책임한 행동들, 사적인 정보를 별 생각 없이 누출시킨 이들의 사생활 존중 의식의 부재다.

1월24일치 ‘왜냐면’에 실린 유지은씨의 ‘책임 공방으론 끝나지 않을 악순환의 고리’를 읽었다. 유씨는 연예계에 깊이 뿌리내린 시스템상의 잘못된 관행을 중심으로 비판하며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관리가 연예계에도 자리잡아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연예인 문건 파동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연예계 내 체제 개선’이 중심이 되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어떤 직업이건 도덕성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 직업은 없다. 교사, 경영인, 공무원, 기자 등에서부터 개인 사업을 하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업무 수행 능력뿐 아니라, 사회가 제시하는 기본적인 도덕성을 요구받는다. 물론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비중이 클수록 도덕성은 많은 사람에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고, 그런 점에서 연예인은 직업이 요구하는 능력과는 관계없이 개인의 도덕성이 가장 크게 도마 위에 오르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노래를 잘하거나 연기력이 뛰어난 연예인이라 하더라도, 일단 대중에게 건전하지 못한 사생활로 비난받기 시작하면 연예인으로서의 수명이 끝난 것이라 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번 연예인 문건 파동은 한 개인이 고의 없이 유출한 정보가 순식간에 인터넷을 통해 퍼짐으로써 수많은 연예인을 위기에 빠뜨린 사건이다.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인에게 이번 사건은 치명적이다. 유씨의 주장대로 그 책임의 일부는 분명 사생활을 잘 관리하지 못한 연예인에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야 할 더 큰 진실은 그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사생활이 건전하건 문란하건 그것을 이토록 쉽게 접해서 제멋대로 감상할 권리가 그 누구에게도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이 공인인 연예인들에 대한 것이며 주로 이성교제에 관한 것이나 성격상의 문제점 등 구설에 오르내리기 쉬운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초점은 그 정보가 사실이냐 거짓이냐에 맞춰져 있고 정작 그것을 평가할 자격이 있느냐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터지기까지 가장 큰 문제가 된 배경은 연예인의 문란한 사생활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이전부터 있어 온 문제다. 진짜 도화선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인터넷이라는 초고속 통신망, 둘째, 그 매개를 통해 ‘익명’의 탈을 쓴 채 행해지는 무책임한 행동들(혹은 네티켓의 부재), 셋째, 그런 사적인 정보를 별 생각 없이 누출시킨 이들의 사생활 존중 의식의 부재가 그것들이다.


첫째 요인은 가치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기술의 발전은 분명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자격이 제대로 갖추어질 때의 얘기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는 소문으로만 듣던 연예인 사생활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문명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그것을 이용하는 비물질문명의 속도가 그것에 상응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문화지체 현상의 부정적 면모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인터넷 매체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도 멀다. 인터넷의 속도만 따질 것이 아니라 이쯤에서 우리 의식의 속도도 따져볼 때다.

김진경/연세대학교 국문과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